시민들이 일으켜세운 '26년'..시사회 3만명 초대

2012. 11. 2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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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5·18 그후 '26년' 29일 개봉

제작비 7억 모금해준 시민뜻 기려엔딩크레디트 11분에 잔잔히 담아유족 아픔과 학살자의 뻔뻔함 대조액션복수극 넘은 뭉클한 감동 전해속도감 느슨해 완성도엔 아쉬움도

배우 이경영이 "영화에서도 끝내 사죄를 받아내지 못했으니 이 자리에서라도 장광 선배님한테 사과를 받고 싶다"고 부탁했다. 22일 <26년> 시사회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 역을 맡은 장광은 "미안합니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26년>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들에게 '미안합니다'라고, 그들의 원통함에 반의 반만이라도 아파하는 척은커녕, 폭도라고 규정하며 여전히 떵떵거리는 한 전직 대통령을 향해 유족들이 복수에 나선다는 내용이다.

어찌 보면 만화가 강풀씨한테서 원작 판권을 구입한 지 6년 만에 개봉에 이른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26년>은 2008년 촬영 열흘을 남기고 한 기업이 투자를 돌연 철회하며 제작이 무산됐다. 당시 정부 윗선에서 투자자들에게 외압을 행사했다는 말이 무성했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고 결심한 제작진은 포기하지 않았고, 1만5000여명의 시민들이 순제작비 46억원 중 7억원을 모금해줘 올해 7월 촬영에 들어갔다. 국내 장편 상업영화가 '제작두레' 형식으로 이렇게 많은 후원자를 모은 건 처음이며, 시민투자금도 역대 최고액이다. 영화가 끝난 뒤 화면에 후원자들의 이름까지 소개하는 엔딩크레디트 시간만 11분이다.

극장을 가진 대기업에 의존하지 않고, 중소배급사 '인벤트 디'와 이 영화 제작사 '청어람'이 직접 배급한다. 4년 전에 미술감독으로 합류했다가 연출을 맡은 조근현 감독은 "우리 사회가 잘못됐다고 (영화로도) 얘기할 수 없다면, 그것 자체가 문제라는 제작사 대표의 말을 듣고 연출에 용기를 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이 스스로 사과하지 않는다면 단죄를 받는 상식적인 사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고 이 영화의 가치를 설명했다.

<26년>의 개봉을 기다린 사람들은, 특히 이 작품의 흥행을 바라는 이들은, 영화가 탄탄한 완성도까지 갖추기를 원할 것이다. 그런 기대치가 높았다면, 만듦새에서 아쉬움을 느낄 수도 있다. 영화는 '5·18' 때 아버지·어머니·누나를 각각 잃은 건달 '곽진배'(진구)·국가대표 사격선수 '심미진'(한혜진)·경찰관 '권정혁'(임슬옹)이, 계엄군을 했다는 죄책감으로 살아온 '김갑세'(이경영)와 그의 양아들인 '김주안'(배수빈)의 주도로 모여 유혈진압 책임자를 처단하려는 준비과정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극의 속도감을 빠르게 높여가지 못한 채 느슨하게 풀어지기도 해 안타까움을 준다.

하지만 영화는 '그 사람'의 집으로 돌진해 저격을 시도하는 마지막 핵심장면에서 끝나지 않은 5·18의 아픔과 유족들의 울분을 전하는 목표점에 다다른다. "요즘 젊은이들은 날 너무 싫어해. 나한테 당해보지도 않고 말이야"라고 말하는 전직 대통령에게 "우리 엄마·아버지는 빨갱이가 아니었다"고 절규하는 '김주안'과, '그 사람'에게 총을 겨누며 눈물을 흘리는 '심미진'과 '곽진배'를 보며 관객의 심장은 뜨거워질 것이다. 텔레비전에서 '그 사람'의 얼굴만 봐도 몸을 떠는 유족들의 분노와, 교통통제 호위까지 받으며 배드민턴을 치러 가고 "만수무강하라"는 큰절을 받는 전직 대통령의 호사가 영화에 함께 스쳐갈 때, 이런 비상식적인 행세를 방조하는 사회 시스템에 울화도 치밀 것이다.

'심미진'이 도로변에서 총을 들고 첫 번째 암살을 노리는 장면과, 영화 마지막 저격 시도에선 뭉클한 울림과 함께, '액션복수극'이란 대중적 장르에 충실한 화면을 보여준다. 제작진은 군인들의 총에 맞아 창자까지 쏟아내는 여학생의 죽음 등 '5·18 당시'의 장면을 <마당을 나온 암탉>을 연출한 오성윤 감독에게 맡겨 애니메이션으로 처리했다. 비극성을 담아낸 이 애니메이션은 유족들이 직접 단죄에 나설 수밖에 없는 동기를 부여하는 장치가 된다.

영화 공개 이전까지 언론의 관심은 대개 한혜진의 출연 결정에 쏠렸지만, 또다른 주인공인 진구는 아버지를 처참하게 떠나보낸 슬픔과 건달의 껄렁함을 오가는 연기로 극을 이끈다. 한혜진은 "5·18 희생자와 가족들이 우리가 잊혀가는 것은 아니었구나라고 위로받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26년>은 29일 개봉 전까지 3만1000명 초대 시사회를 먼저 진행한다. 특히 27일엔 광주 트라우마 센터 참여자들을 초청해 시사회를 연다. 5·18 이후 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려온 이들이 치료받고 있는 곳이다. 최용배 청어람 대표는 "올해 전두환 전 대통령이 (육사 사열 논란 등으로) 언론에 자주 얼굴을 비치면서, 트라우마센터 참가자들의 상태가 좀더 나빠졌다고 한다"고 전했다. 제작진은 이들이 <26년>의 영화적 판타지를 보는 것으로 그나마 위안을 얻을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 현실이 서글픈 코미디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사진 청어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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