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 왜 선행학습을 조장했나

최명희 2011. 11. 8.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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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한-수능특집', 자녀들과 함께 보기 민망했던 이유

[엔터미디어=최명희의 대거리] "공부도 과속을 하면 사고가 납니다." 지난 1일부터 서울시교육청이 지하철 TV광고에 집행하고 있는 광고 문구다. 이 광고에서 학생들은 마치 운전을 하듯 경쟁적으로 책상을 타고 달리다 급기야 속도를 제어하지 못하고 쓰러지는 모습을 연출한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선행학습을 받은 아이들의 경우 '이미 알고 있다'는 생각에 빠져, 학습에 대한 흥미를 잃고 집중도가 낮아져 선행학습을 하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성적이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교육청이 예산 2억 원을 투입해 만든 이 광고에 학부모들은 반신반의하는 모양새다. '전기료를 내러 학원 다닌다'는 비야냥을 듣더라도 무턱대고 사교육을 끊기란 쉽지 않다. 조사결과에 대한 신뢰도 문제일 수도 있겠다. 또 어디까지가 '과도한' 선행학습인지에 대한 기준점 잡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더구나 '옆집 누구는 어느 학원 다녀서 성적이 올랐다더라' 같은 달콤한 소문에 귀를 막기란 쉽지 않다. 어쩌면 더 큰 문제는 선행학습 자체가 아이를 위한다는 미명하에 학부모의 자기 만족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서울시교육청의 예산투입이 긍정적 효과를 창출하길 진심으로 기대한다.

서울시교육청의 광고가 집행을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아 MBC TV '무한도전-수능특집편'이 전파를 탔다. 지난 2006년 11월 방영된 '수능특집'이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바 있기 때문에 5년 만에 부활한 '수능특집'은 관심을 모으기 충분했다. 뻔한 결과가 예측되기도 하고, 또 그다지 궁금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과연 '무도' 멤버들의 지적수준이 어느 정도 향상되었을까 하는 호기심도 발동된 게 사실이다. 그게 바로 '무도'가 '시즌2' 형식의 포맷을 내놓는 매력이 아닐까.

하지만 이번 '수능특집편'에 대해서는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다는 지적이 많다. 아이들과 함께 '무도'를 시청한 학부모들의 마음은 불경기가 깊어가는 가을 저녁 날씨 만큼이나 유독 더 씁쓸해 보인다. 먼저 '무도' 멤버들과 대결을 벌여 줄줄이 승리를 거머쥔 서울대 학생들, 외고생들, 국제중 학생들, 사립 초등학생들, 특별교육을 받았다는 유치원생들의 등장이 거슬린다. 방송 출연을 감안한다면 그들은 특별한 학교에서도 아주 특별한 존재들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런 사실은 별다른 것은 아니다. '무도' 멤버들이 최고급 실력자들과 대결을 벌이는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출제된 문제의 수준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대학생, 고등학생들과의 대결에서는 학부모들도 맞추기 어려운 문제가 심심치 않게 나왔다. 문제의 난이도가 높았음에도 학생들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척척 정답을 내놓았다. 자기 차례를 당기기 위해 '제발 틀리라'고 부탁하는 모습도 보였다. 더 큰 문제는 '무도' 멤버들이 대학생, 고등학생, 중학생, 초등학생, 유치원생들과의 연전연패를 하는 동안 학부모들과 함께 시청한 또래의 아이들은 TV에 나온 동연배의 아이들과 호흡을 함께 한 게 아니라 오히려 '무도' 멤버들과 동질감을 느끼게 됐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현재 대한민국 초등학교 2학년 정규 교과과정에 영어과목은 아예 편성돼 있지 않다. 하지만 이날 초등학교 2학년과 '무도' 멤버들과의 대결에서는 버젓이 영어문제가 출제됐다. 더구나 '무도' 제작진은 '강아지가 영어로 뭘까?' 같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듣기평가 문제를 출제했다. 공교육을 충실히 수행해서 학교성적이 우수한 아이라도 사교육이나 선행학습을 하지 않았다면 도저히 맞출 수 없는 문제라는 얘기다. 하지만 '무도'에 출연한 초등학교 2학년생은 잠시 고민하더니 정답을 알아냈다.

방송을 지켜본 학부모나 아이의 심정은 어땠을까. 온가족이 둘러앉아 재미있게 문제를 풀며 '무도' 멤버들의 무지함을 살짝 비웃을 수 있는 시간을 기대했던 마음은 순식간에 사그러들지 않았을까. 아이들 입장에서는 때로는 '전지전능'한 존재인 우리 아빠 엄마에게 실망했을 수도 있다. 부모들은 나름 학교성적이 우수한 것으로 알고 있었던 우리 아이가 몇 문제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것을 보고 좌절했을 수도 있다. 중학생에게는 중학생에 맞는 문제를, 초등학생에게 초등학생에 맞는 문제를 출제하고 대결을 벌였어야 정당한 대결이 아니었을까. 굳이 유치원생과의 대결까지 진행해야 더 굴욕적이라거나, 더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말이다.

대중들이 '무도'에 열광하는 이유는 대한민국 '평균 이하'의 멤버들이 항상 무언가를 고군분투하며 도전하는 모습 때문이다. 그게 '기차와 달리기 시합' 처럼 말도 안되는 도전일 경우도 있고, '레슬링특집' 처럼 결과보다는 도전 과정이 너무 소중한 경우도 있다. 때로는 진한 패러디와 조롱으로 승부를 보기도 한다. 물론 단순하게 웃음을 주는 경우도 많다. 그 과정에서 대중들은 '무도' 멤버들의 편이 되어 함께 웃고 울기도 하고, 때로는 '무도' 멤버들의 반대편에서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하지만 이번 '수능특집'편은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 모양새다. 무모한 도전도 아니고 과정이 소중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패러디도 아니다. 웃음을 주긴 했으나 이것이 '엘리트특집'이 아니라 '수능특집'이라는 타이틀로 방송됐기에 입으로는 웃으면서도 마음 속에는 이질감이 더 증폭된 게 문제다. 이번 방송 때문에 사교육과 선행학습, 그리고 특수학교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늘어나지 않길 기대한다. 선행학습의 효과가 크지 않다고 하지 않았나. 방송에 나온 학생들이 당장은 뛰어나 보여도 미래는 알 수 없다. 그게 '무도 정신'과 맥이 통하는 것 아닌가. 아울러 '무도'가 선행학습을 조장한 게 아니라 조롱한 것 이길 진심으로 바란다.

최명희 기자 enter@entermedia.co.kr

[사진=MBC,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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