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海'라 쓰고 '미쳤다'고 읽는다(김범석의 사이드미러)
[뉴스엔 김범석 기자]
요즘 만나는 사람들에게 가장 자주 듣는 질문은 "'황해' 어떠냐"는 말이다.
'배우들 연기는 압권인데 너무 잔인하다고 해 망설여진다'부터 '스토리가 복잡하다는데 봐도 되겠냐' '관람 후 평점이 왜 이렇게 엇갈리냐'는 사람까지, 이미 알아볼 만큼 알아본 다음 영화 담당 기자에게까지 확인사살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기자의 대답은 한 줄을 넘지 않는다. "보세요. 이왕이면 큰 상영관에서."
'볼까 말까' 고민 때리는 사람에게 이렇게 답할 수 있는 이유는 이 영화가 단지 잘 빠진 웰메이드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런 장르의 영화를 선호하지 않는 관객도 엄연히 있는 만큼 잘 만들었다는 주관적인 이유로 관람을 강권할 순 없는 일. 기자가 자신있게 '황해'를 보라고 말하는 지점은 따로 있다. 크게 두 가지다.
첫째 '황해'는 나중에 다운 받아서 보면 실망할 확률이 매우 높은 영화이기 때문이다. 15인치 모니터나 HD TV로 본다 해도 스크린에서 느낄 수 있는 웅장함과 시각적 쾌감에는 10분의 1도 못 미칠 게 불 보듯 뻔하다. 본전 생각나는 허접한 영화가 분명히 있고, 다운받아 봐도 무방한 영화가 있게 마련이지만 '황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황해'는 기구한 운명의 조선족 연변 남자 구남(하정우)의 이야기를 그린 극사실주의 영화. 구남은 눈 딱 감고 사람 하나만 죽이면 빚을 갚고 한국에 돈 벌러 간 아내를 찾을 수 있다. 그렇게만 되면 자신의 구겨진 인생을 다시 펼 수 있다고 믿지만 눈앞에서 제거 대상인 교수가 다른 괴한에게 살해당하는 걸 보고 누명을 쓴 채 도망자 신세가 된다.
경찰과 살인 오더를 내린 연변 청부살인업자 면가(김윤석), 그리고 일을 그르치게 될까 봐 사색이 된 조폭 태원(조성하) 일당에게 쫓기게 된 구남은 총까지 맞으며 토끼몰이 당한다. 이 과정에서 지금껏 한국 영상물에서 볼 수 없었던 자동차 추격신이 나온다.
주인공의 불안한 심정을 반영하는 핸드 헬드(들고 찍기) 기법으로 촬영된 카체이싱 장면은 손에 땀이 나는 수위를 넘어 다리에 잔뜩 힘이 들어갈 정도로 긴박하게 벌어진다. 특히 부산항 6부두 앞에서 펼쳐진 구남의 대형 컨테이너 전복 장면은 제리 브룩하이머가 "형님"이라고 부를 만큼 압권이었다. 이 촬영에 동원된 50여대의 차량 중 20대가 반파 또는 완파됐을 만큼 사실적이었다.
강추 두 번째 이유는 '황해'를 끝으로 당분간 스릴러가 자취를 감출 것이기 때문이다. '세븐데이즈' '추격자'가 나오기 전까지 한국 영화계에서 스릴러는 황무지에 가까웠다. 두 영화의 성공은 스릴러 열풍의 마중물 구실을 했고, 이후 20~30편의 유사 장르 영화가 쏟아졌지만 '추격자'를 뛰어넘는 후속작은 전무했다.
100억원이 넘는 제작비, 여기에 충무로 흥행 보증수표로 불리는 하정우 김윤석의 가세로 완성된 '황해'가 나온 마당에 당분간 누구도 쉽게 스릴러를 기획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투자배급사 쇼박스의 한 관계자는 "'추격자'로 스릴러 열풍을 시작한 나홍진 감독이 자신의 차기작 '황해'로 그 열기를 마무리하는 모양새가 됐다"고 말했다.
'황해'가 500만명을 동원할지, 1000만명을 끌어모을지, 아니면 한국 영화가 아직 밟지 못한 정상에 새롭게 깃발을 꽂을지는 확언하기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건 '황해'가 '미친 영화'라는 소리를 들으며 올 겨울 극장가의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김범석 kbs@news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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