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으로 영화찍기? 단점 넘는 게 맛이죠!

2010. 9. 27.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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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홍경표·봉만대 감독 등 12명 아이폰4 프로젝트 참여

초단편 영화 다양한 방식 접근…배우들 "신기해요"

26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 한 건물 3층 좁은 복도. 입을 악다문 흰색 짧은 원피스 차림의 배우 김윤서가 권총을 쏘며 걸어간다. "탕! 탕! 탕!" 불꽃이 튄다. 길을 막고 서 있던 두 남자 배우는 맞서 총을 쏘다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초연한 얼굴의 김윤서는 주검을 지나 복도 끝까지 걸어간다. 찰나의 침묵 끝에 "컷!", 홍경표 감독 입에서 오케이 사인이 나왔다.

복도 끝에 쪼그리고 있던 홍 감독이 일어섰다. 조명기구, 마이크 등을 든 스태프들이 길을 비켜선다. 그런데 뭔가 빠졌다. 배우들을 응시하며 서 있어야 할 카메라가 없다. 홍 감독은 손에 쥐고 뚫어져라 쳐다보던 걸 들어 보인다. "이거예요. 아이폰4. 이걸로 찍어요." 홍 감독의 아이폰은 비디오게임 조작기 같은 손잡이에 끼워져 있다. 아이폰 카메라를 흔들리지 않게 해주는 액세서리로, 렌즈가 달려 있다. 촬영 현장 한복판을 차지하던 커다란 카메라 대신 작은 스마트폰이 촬영을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현장 옆 사무실 전원 콘센트에는 아이폰 충전기 3개가 나란히 꽂혀 있었다.

제작진은 곧바로 아이폰을 노트북 컴퓨터에 연결했다. 방금 찍은 장면을 노트북으로 이리저리 돌리며 편집에 들어갔다. 홍 감독은 '아이무비'라는 동영상 편집 유료 애플리케이션 대신 시간이 덜 걸리는 '파이널 컷 프리'를 쓴다.

다음 촬영 장소는 같은 건물 4층. 붉게 빛나는 장막 앞 가죽 소파에 배우 김재욱과 김윤서가 나란히 앉아 있다. 김윤서가 기타를 든 김재욱에게 권총을 겨누는 장면. 홍 감독은 아이폰을 들고 배우 앞으로 서서히 다가갔다 물러선다. 그는 "줌 기능이 없는 게 가장 불편하다"며 웃었다.

홍 감독은 <태극기 휘날리며> <반칙왕> <시월애> <마더> 등의 영화에서 촬영감독을 맡았다. 이번에 직접 연출하며 찍고 있는 영화는 오래된 연인들의 짜릿한 상상을 담은 <블루진>(가제). 권태와 애증이 서로를 향해 총을 쏘는 공상으로 이어지는 판타지 영화다. 아이폰4로 찍는 실험적인 영화로, 5분짜리 초단편이다. 제작 기간은 단 하루. 찍고 바로 편집이 가능한 덕분이다. 밤새워 촬영과 편집을 거의 실시간으로 해내면 제작 끝.

홍 감독은 왜 제대로 된 영화 카메라 대신 아이폰을 선택했을까? 아이폰은 너무 작아 흔들리기 쉽고 줌 기능도 없다. 전원도 빨리 닳고 오디오 기능도 약하다. 그렇지만 홍 감독은 "재미있다"고 했다. 휴대전화로 영화를 찍는다는 발상 자체의 신선함에 더해, '720P HD급'(중간 정도 해상도) 영상이어서 극장에 걸어도 큰 무리가 없다고 한다. 홍 감독은 "단점을 극복하는 게 맛"이라고 덧붙였다. 흔들림은 손잡이 액세서리로, 배터리 문제는 아이폰 2개를 번갈아 쓰는 것으로 해결했다. 오디오의 약점은 대사 대신 내레이션을 활용했다. "이거 사실 장난감이죠. 휴대폰이지 카메라가 아니잖아요. 전화기로 감히 영화를 찍는다는 건데, 한계를 뛰어넘는 게 의미입니다."

홍 감독의 휴대폰 촬영 실험에는 드라마 <나쁜남자>로 주목받은 김재욱과 영화 <악마를 보았다>에서 처참히 살해된 약혼녀로 나왔던 김윤서가 동참했다. 김재욱은 "현장에서 그 정도 퀄리티로 편집할 수 있는 걸 보고 놀랐다"고 말했고, 김윤서는 "이 자체가 신기하고 영화가 어떻게 나올지 기대된다"고 흥미로워 했다.

아이폰 영화 촬영 프로젝트는 홍 감독 등 12명의 유명 감독들이 함께 진행중이다. 정윤철·봉만대·윤종석·이호재·임필성 감독, 아트디렉터 이현하, 뮤직비디오감독 홍원기, 촬영감독 김병서·김지용·정정훈·조용규 등이 참여했다. 모두 작업 기간은 하루이틀이고 저마다 다양한 방식을 실험한다. 홍 감독처럼 카메라만 아이폰으로 쓰고 나머지는 다른 영화작업과 똑같이 진행하기도 하고, 편집 등 후반작업과 오디오까지 모두 아이폰으로 해결하는 감독도 있다. 영화 내용들도 다양하다. 아이폰4 자체가 소재인 경우가 있는가 하면, <블루진>이나 <좀비헌터> 같은 판타지물도 많다. 내년 개봉예정인 <평양성>의 촬영감독인 정정훈 감독은 <평양성>을 연출하고 있는 이준익 감독을 출연시킨 <나는 부지런하다>를 아이폰 영화로 만들었다.

이번 프로젝트는 아이폰4로 영화를 만들되 여러가지 방식으로 하는 것이 취지다. 작업을 기획한 김호성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는 "아이폰4가 촬영기능이 강화돼 새로운 형식과 내용으로 영화를 찍어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제안했다"며 "무엇보다 각 감독의 여러가지 형식과 내용으로 영화가 만들어지면 아이폰에 잘 맞는 (형식과 내용을 갖춘) 영화가 나올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아이폰으로 찍은 작은 영화 12편은 다음달 6~31일 '아이폰4 필름 페스티벌'에서 상영한다. 행사를 후원한 케이티 광화문 올레스퀘어 상영관과 페스티벌 공식 누리집(iphone4filmfestival.co.kr), 아이폰4 전용 애플리케이션으로 무료로 볼 수 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특별 상영된다.

글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사진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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