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유통기한인 복제인간, 왜 비정규직이 떠오를까

2009. 12. 6.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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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박호열 기자]

SF 영화로는 보기 드물게 복제인간을 소재로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유전공학을 날줄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모습을 씨줄로 교직한 수작 < 더 문 > 의 포스터.

ⓒ 리버티 필름

가까운 미래, 인류는 에너지가 고갈된 지구 대신 달에서 에너지원을 얻습니다. 샘 벨(샘 록웰 분)은 한미 합작 청정에너지 기업 루나 인더스트리사에서 3년 기한으로 달에 파견한 임시직 노동자로, 달기지 '사랑(SARANG)'에서 혼자 일하며 새로운 에너지원인 헬륨3을 채굴해 지구로 보내고 있습니다.

통신위성 고장으로 외부와 완벽하게 단절된 '사랑'에서 자신을 돕는 컴퓨터 거티(케빈 스페이시 목소리)와 말동무를 하며 외롭게 지내는 샘에게 위안거리라곤 가끔 목성 위성을 통해 아내 테스가 보내는 영상 메시지가 전부입니다. 2주 후면 지구로 돌아가 테스와 사랑하는 딸 이브를 만날 기대에 벅차오르는 샘. 그러나 시도 때도 없이 격심한 두통이 밀려오고 잠자리에 들면 신비로운 여인과 사랑을 나누는 이상한 일들이 되풀이 됩니다.

그런 어느 날, 월면 작업차로 순찰을 나간 샘은 사고를 당하지만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자신을 기지 안에 가두려는 거티를 속이고 몰래 밖으로 나간 샘은 사고 현장에서 세상에나! 자신과 똑같은 모습의 샘을 발견합니다. 사고를 당한 샘을 구해 기지로 돌아온 샘. 누가 진짜 샘인지 알 수 없는 혼란 속에서 두 명의 샘은 티격태격 다투며 지내다 거티로부터 놀라운 진실을 듣고, 거대한 비밀은 하나 둘씩 베일을 벗습니다.

무한한 상상과 우주개척의 문을 열어 준 '달'

현란한 컴퓨터 그래픽이나 흉측한 몰골의 에이리언이 등장해 피범벅을 만드는 극단적인 액션 장면 하나 없이 달 기지라는 우주 공간에서 한 사람의 배우가 1인 2역을 하는 가운데 유일한 대화상대라곤 인공지능 컴퓨터가 전부인 영화 < 더 문 > 입니다. 총 제작비 500만 달러(50억 원)에 아날로그적 감성이 물씬 배어나오는 영화는 일견 초라하고 지루해 보이나 정작 스크린을 들여다보면 SF 영화로는 보기 드물게 선 굵은 문제의식을 제기합니다.

모든 것을 집어 삼킬 듯이 이글거리는 태양과 달리 수줍은 듯 태고의 비밀을 간직한 달은 예나 지금이나 인류에게 무한한 상상과 함께 우주개척의 문을 열어 준 경이의 대상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동요로 어린 시절 달에서 절구 찧는 토끼를 상상하며 즐겨 불렀던 '반달'은 달에 대한 동경을 다음과 같은 예쁜 노랫말로 스케치 했습니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그런데 반달은 단순한 동요가 아닙니다. 고려시대 불교조각의 백미로 우리나라 부도를 통틀어 가장 화려하다는 평가를 받는 국보 제101호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法泉寺智光國師玄妙塔) 상단에는 신과 우주의 세계인 도솔천이 그려져 있고 계수나무와 절구통 그리고 토끼가 절구를 찧는 문양들이 정교하게 음각돼 있습니다. 즉, 동요 반달의 시원이 최소한 고려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뜻이지요.

복제인간 샘이 3년간 일하는 달기지 사랑(SARANG)의 내부 모습. 영화에서는 드문드문 한글이 보이고 "안녕히 계셰요"라는 우리말도 들린다.

ⓒ 리버티 필름

이 절구 찧는 토끼 이야기의 진위(?) 여부를 확인시켜 준 역사적 사건이 있었으니 아폴로 11호의 달 탐사였습니다. 1969년 7월 16일 밤 10시 32분 케이프케네디 기지를 이륙. 5일 뒤인 7월 21일 오전 11시 56분 20초(한국시간)에 달에 선 최초의 인간, 닐 암스트롱. "인간을 위한 하나의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를 위해선 거대한 도약의 한 걸음"이라고 한 그의 말처럼 이 날은 지구를 박차고 우주개척의 신기원을 이룬 일대 전환기였습니다.

그렇게 인간의 발을 허락한 달은 지구의 유일한 자연위성으로 약 38만4400㎞ 떨어진 거리에서 지구 주위를 서에서 동으로 공전합니다. 크기는 지구의 1/3보다 작고 질량은 지구의 1/81.3에 불과하며 적도지름은 약 3476㎞에 이르는 달은 자전축을 중심으로 29.5일 만에 1바퀴씩 자전하는데, 이 주기는 달이 지구 주위를 1바퀴 공전하는 시간과 같지요. 그래서 지구에서 달을 볼 때 같은 면만 보이는 것입니다.

SF 영화 < 더 문 > , '인간을 중심에 놓다'

그런 달이 인류의 마지막 에너지원이라는 SF적 상상력에서 출발하는 < 더 문 > 은 기존의 SF 영화와 질을 달리합니다. 3년 만에 다가온 지구로의 귀환을 손꼽아 기다리는 샘 앞에 나타난 또 다른 샘을 통해 과연 '나는 누구인지'라는 의문, 즉 미래 사회의 모습을 그린 SF 영화이면서도 존재에 대한 근원적 고찰이라는 철학적 테마가 더해지면서 "이 영화 정말 SF 맞아?"라는 경탄을 자아내게 하기 때문입니다.

복제인간 샘이 잠자리에서 알 수 없는 여인과 사랑을 나누는 장면으로 샘과 사랑을 나누는 여자는 체세포 복제를 하기 전 본래 샘의 아내로 복제와 함께 주입된 기억의 파편이 되살아난 것이다.

ⓒ 리버티 필름

< 더 문 > 은 SF 영화임에도 한사코 '인간'을 중심에 놓습니다. 일반적인 SF 영화들이 재난과 액션으로 도배한 스펙터클을 강조하면서 미국식 휴머니즘을 삽입해 억지 감동을 자아내는 것과는 분명하게 선을 긋습니다. 달기지 사랑에서 샘은 정체불명의 여인과 사랑을 나누고, 분재와 식물을 키우고, 헬스기구 위에서 매일 운동을 하고, VOD 서비스로 20세기 지구의 흘러간 TV쇼들을 보다 혼자 낄낄대고, 지구의 고향 마을을 본뜬 미니어처를 만듭니다. 샘의 단조로운 일상을 통해 주제를 각인시켜 나가는 셈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영화 속의 달기지 이름을 아예 '사랑(SARANG)'이라고 짓고, 태극기와 우리말도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영화를 연출한 던컨 존스 감독이 박찬욱 감독의 < 올드 보이 > 의 열혈 팬임을 자처한지라 생뚱맞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한국을 남달리 사모한 것은 아닙니다. 고독한 달기지 생활에 지친 샘의 그리움과 가족의 사랑을 대변하는 장치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영화가 여기까지는 별다른 징후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슨 SF 영화가 이래?" 하는 낯섦에 당혹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샘이 사고 난 채굴 현장에서 또 다른 샘을 만나면서 영화는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진입하게 됩니다. 달기지 사랑의 '샘'은 복제된 '샘들'이기 때문입니다. 체세포 복제라는 유전공학의 윤리적 문제를 영화는 복제된 샘의 내면적 갈등과 또 다른 복제인간(클론) 샘들의 자기 정체성 찾기라는 본래의 주제로 옮겨가며 묵직한 화두를 던지기 시작합니다.

체세포 복제기술은 어디까지 확장될 것인가, 라는 물음에서 시작해 복제한 인간의 기억과 정보 등 정신적인 영역까지 복제되는가에 대한 관객의 궁금증은 복제된 인간 샘과 샘의 내면적 혼란과 고통에 맞부딪치며 격렬한 파열음을 냅니다. 더군다나 기지 내 금지된 구역에는 자신들과 똑같은 외모로 잠들어있는 샘들이 즐비합니다. 이들은 복제된 샘들로 조작된 기억의 주입 속에 진짜 샘처럼 일하다 3년의 유통기한이 끝나거나 부상을 당하면 용도 폐기됩니다. 그리고 죽는 그 순간까지 자신이 복제인간임을 전혀 모릅니다.

인간 존재의 근원을 화두로 던진 묵시록적 메시지

달기지 사랑에서 미래의 에너지원이 헬륨3을 채굴하기 위해 샘이 월면 작업차를 타고 채석장으로 향하고 있다.

ⓒ 리버티 필름

< 더 문 > 의 미덕은 여기서 빛을 발합니다. 두 명의 샘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아 가는 과정에서 성격이 극과 극인 둘이 다투고 싸우다가 복제인간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고 나타나는 반응은 복제인간도 고민하며 질투하고, 때리면 아프고 고통을 느낀다는 점을 역설합니다. 두 명의 샘이 성격이나 기질이 다른 것 역시 노동이라는 과정을 통해 드러납니다. 금지된 구역에서 막 생산된 샘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고분고분한 노동자인 반면에 노동으로 단련된 샘은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을 갖춰 나가면서 자신을 보다 구체화시킵니다.

노동을 하기 전의 샘과 노동을 하고 난 후의 샘이 서로 교감하고 교류하면서 결국은 같은 처지라는 사실을 자각한 뒤 단결하고 연대하는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절대무원의 고립과 고독이라는 엄혹한 공간에서 상대방이 곧 나라는 받아들일 수 없는 절망 앞에서도 끝내 서로를 포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끈끈한 동질감으로 서로 의지하고 협조하다 결국 복제인간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한 명의 샘을 살려 지구로 보내고 이를 위해 다른 한 명의 샘은 희생을 감수하기까지 합니다. 마치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것처럼.

영화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암울한 미래상도 스케치합니다. 루나 인더스트리 본사에서는 샘에게 끊임없이 영상을 보냅니다. "당신이 가장 소중하며, 진정한 영웅이며 일주일 뒤면 지구로 귀환할 것"이라는 본사의 격려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입바른 수사입니다. 이윤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미래의 거대기업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어떻게 착취해 가는지 보여줍니다. 그리고 3년 용도의 기한으로 복제된 샘들의 처지가 사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다를 것이 없으며, 이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미래의 모습임을 영화는 또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이 장면들은 지금의 자본이나 미래의 자본이나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서는 인간의 정체성은 안중에도 없으며, 노동자는 일회용 소모품으로 가차 없이 버려지고, 진실과 인격은 언제든지 왜곡될 수 있다는 사실을 빗대어 증명하는데 인색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지구로 귀환하는데 성공한 샘이 루나 인더스트리사의 비인간적 비리를 고발한 뉴스로 엔딩 크레딧을 올림으로써 인간다운 삶과 가치를 부정하는 것과의 투쟁이 비록 고난에 찬 여정일지라도 포기하지 말 것을 이야기합니다.

SF 영화다운 무한한 상상력의 지평 위에서 광활한 우주 속의 작은 우주로 표현되는 인간이라는 존재, 즉 '나는 누구인가'라는 철학적 사유와 함께 < 더 문 > 은 미래의 모습이 유토피아와는 거리가 먼 디스토피아가 될 수 있다는 묵시록적 메시지를 복제인간 샘을 통해 그려냅니다. 그렇기에 인간 존재에 대한 고찰이라는 철학적 사유를 화두로 던지기에 영화는 하등 인색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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