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방한한 프랑스 감독 카락스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레오 카락스(49)는 1980년대 프랑스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하나다.
22살에 만든 '
소년 소녀를 만나다'(1984)로 혜성처럼 등장한 그는 강렬한 이미지와 독특한 형식으로 프랑스뿐 아니라 세계 영화계에서 주목받았다.
2년 후 만든 '나쁜 피'(1986)는 전작보다 더욱 강렬해진 색채와 이미지로 시선을 끌었다. 그리고 이들 작품은 '
누벨 이마주'라는 이름으로 현재까지 전 세계 영화팬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레오 카락스 감독이 10년 만에 내한했다. '2009 넥스트플러스 영화축제'에 마련된 자신의 특별전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카락스 감독은 1994년과 1999년 각각 '
나쁜피'와 '폴라 X'(1999)를 홍보하기 위해 방한한 적이 있다.
세 번째 한국을 찾은 카락스 감독은 5일 서울 장충동 소피텔 앰배서더 호텔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인터뷰 내내 담배를 피우며 턱을 만지작거렸다. 모깃소리처럼 작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답변할 때 눈빛은 날카로웠다.
그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만남"이라며 "재미와 모험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영화를 만들 이유가 없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폴라 X' 이후 옴니버스 영화 '도쿄'(2008)를 만들 때까지 꽤 오랫동안 작품활동을 하지 않았다.
▲영화 한 편을 만들면, 가장 먼저 실망감이 든다. 그리고 그러한 실망감을 극복하기까지는 통상 몇 년이 걸린다. 내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실망감, 그런 영화를 만든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 그리고 관객에 대한 실망감 등이 극복 대상인 거다. 영화를 만들려면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즐거워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
퐁네프의 연인들'(1991)을 찍은 후 영화에 대한 혐오증이 생겨서 영화를 찍지 않겠다고 선언했는데, 같은 이유였나.
▲그런 면도 있지만 다른 측면도 있었다. '퐁네프의 연인들'은 오랜 시간 준비한 영화다. 또 영화 흥행도 잘 안됐다. 영화 촬영이 끝나고 나서 여러 사람과 헤어졌다. 친한 친구였던 촬영감독과도, 쥘리에트 비노슈와도 헤어졌다. 더구나 그 영화의 프로듀서도 죽었다. 그런 악재가 겹치자 더는 영화를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영화를 일찍 만들다 보니 일찍 지친 게 아닌가.
▲어린 나이에 영화를 시작했다. 영화를 막 알게 되면서 동시에 영화를 만들게 된 경우다. 영화와 사랑에 빠져 '아! 이런 게 영화구나'라는 순간에 바로 영화를 만들게 된 것이다. 당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한 건, 영화란 만남의 과정이라는 점이었다. 영화를 만들려면 배우, 프로듀서, 촬영감독 등을 만나야 한다. 돈? 어떻게든 구할 수 있다. 돈은 영화에서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하지는 않다. 가장 중요한 건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영화를 만들면서 사람과의 작업에서 오는 즐거움을 잃어버리면, 일반 직장생활을 하는 것과 아무 차이점이 없다. 만남에 대한 즐거움이 사라졌을 때, 영화를 계속하는 에너지는 사라진다.
--19살에 영화잡지 '
카이에 뒤 시네마'에 영화평을 쓰면서 영화를 시작했다고 들었다.
▲어렸을 때는 영화감독보다는 메릴린 먼로나
찰스 브론슨 같은 배우를 보고 좋아했다. 학교 중퇴 후 17살부터 영화를 집중적으로 봤다.
--'소년 소녀를 만나다'에서 장 뤼크 고다르적인 느낌이 나는 이유도 고전들을 많이 섭렵했기 때문인가.
▲고다르뿐 아니라 같은
누벨 바그 감독들의 영화, 무성영화 등을 정말 많이 봤다. '소년 소녀를 만나다'도 그렇고 '나쁜 피'까지 고전들의 영향을 많이 받은 영화들이다.
--데뷔작 '소년 소녀를 만나다'부터 최신작 '도쿄'까지
드니 라방과 함께 작업하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사실 '퐁네프의 연인들'이후 거의 15년간 라방과 사적으로 교류하지 않았다. 스무살에 라방을 알게 됐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참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라방은 매우 훌륭한 배우다. 그 배우를 생각하면 자유롭게 시나리오를 쓸 수 있다. 감정적인 부분이든, 신체적인 동작이든 어떤 상상을 하건 그는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배우다. 그래서 오랫동안 그와 작품을 해온 것 같다.
--한 때 연인이었던 쥘리에트 비노슈가 올초 한국을 찾았다. 지금도 연락하는 예술적 동지인가.
▲매우 개인적인 질문이다. 사생활에 대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다. 다만, 연락은 하고 지낸다.
--옴니버스 영화 '도쿄'에서 왜 광인을 소재로 택했는가.
▲사실 도쿄를 잘 모른다. 따라서 이 영화에서 공간적 배경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뉴욕을 무대로 해도 마찬가지가 될 거다. 나는 우리 시대의 부조리한 현실을 짚어보고 싶었다. 마치 지하세계에서 살아가는 '광인'처럼, 불법 이민자들이 테러리스트 취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부조리한 현실을 다루고 싶었을 뿐이다.
--'도쿄'에는 성기 노출장면이 있었다. '폴라X'도 외설 논란에 시달렸는데.
▲그게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 남의 눈을 생각하면 영화를 만들 수 없는 게 아닌가.
--'도쿄'는 3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봉준호 감독이 만들었다. 그 영화를 어떻게 평가하나.
▲칸영화제에서 봤다. 당시 제대로 보지 못했다. 봉 감독의 영화를 꼼꼼히 보고 난 다음에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나는 내 영화도 다시보기를 안 하기 때문에 봉 감독의 영화를 언제 다시 보게 될지는 모르겠다.
--'도쿄'를 보면 스타일이 많이 바뀐 느낌이다. 이미지를 별로 중시하지 않는다. 영화에 대한 관점이 변한 건가.
▲만들 때마다 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사실 '소년 소녀를 만나다'와 '나쁜 피'는 하나의 스타일로 묶을 수 있는 영화들이다. 그러나 3번째 영화인 '퐁네프의 연인들'부터는 스타일의 관점에서 전혀 다른 영화를 만들어 온 것 같다. 도쿄는 제한된 시간 안에 빠른 속도로 촬영한 영화다. 몰리에르의 희극과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
--당신의 영화를 누벨 이마주라고 분류한다. 동의하나.
▲특별히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이마주라는 말을 누가 붙였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 새로운 영화적 표현들을 몇 년에 한 번씩 만들어내기 때문에 사람들이 내 영화를 그렇게 분류하는 것 같다.
--본인의 영화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은.
▲없다. 영화는 호기심의 산물이다. 영화 만들 때는 거기에 대단히 집중하지만, 완성한 다음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옛날 내가 만든 작품을 다시 볼 수는 있겠지만, 지금은 내 작품을 다시 볼 마음이 없다.
--당신에게 영화란 무엇인가.
▲영화 만들기는 나 자신을 가장 정확히 묘사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이다. 영화를 통해 내 삶을 찾는 과정이다. 드니 라방 같은 경우는 나와 몸집도 비슷하고, 나이도 비슷하다. '내가 이런 상황에 빠진다면'이란 가정을 전제로 시나리오를 쓴다. 내 삶의 과정을 체크하는 것, 그것이 나에게 있어 영화 만들기다. 그리고 "영화는 장난감 기차 같은 것"이라는 오선 웰스 감독의 말에도 동의한다. 영화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마치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 영화에 대해서 많이 아는가. 좋아하는 감독이나 함께 작업 하고픈 배우가 있다면. 한국에 대한 인상은.
▲영화를 집중적으로 보던 시기는 17살부터 25살까지다. 그 이후로는 영화를 자주 보지 않았다. 한국 영화에 대해서 말할 만한 입장이 아니다. 한국에는 3번째 방문이지만 체류기간이 모두 짧았다. 아직 잘 모르겠다.
--차기작은.
▲내년 봄에 런던에서 찍었으면 하는 영화가 있다. 프로젝트 수준인데 아직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다.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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