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관람료 올리려면 팝콘값을 내리든지

2009. 6. 23.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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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하성태 기자]

메가박스가 총대를 멨다. 메가박스는 21일 홈페이지를 통해 성인관람료를 1000원 올린다고 전격 예고했다.

메가박스 측은 26일 서울을 시작으로 수원, 대구지역 극장으로 순차적으로 인상해 나간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월요일부터 목요일 관람료는 7000원에서 8000원, 금요일·주말과 공휴일 관람료는 8000원에서 9000으로 상승한다. 청소년 요금은 7000원, 초등학생까지는 6000원이며 조조, 국가유공자 및 만 65세 이상 관객은 주말·공휴일 관계없이 5000원이다.

메가박스 측은 상영관 유지비와 물가 상승률, 새로운 영사기 등 하드웨어에 대한 투자를 인상 요인으로 꼽았다. 사실 관람료 인상은 투자사와 영화제작사 측의 오랜 숙원이었다. 영화계는 물가 상승과 부가판권 산업의 궤멸을 이유로 들어 지속적으로 관람료 인상을 요구해온 바 있다.

메가박스 홈페이지

ⓒ 화면캡쳐

영화 관람료 올리려면 올라간 팝콘 값을 내리든지

관객들은 당연히 뿔났다. 다음에서 '잭바우어'란 아이디를 쓰는 누리꾼은 관련 기사 댓글에 "영화 관람료를 올리면 올라간 팝콘 값을 내리든지… 관람료를 올리고 팝콘 값 안 내리면 말도 안 되지"라며 "비정상적이게 비싼 팝콘 가격 바로 내려라"라고 썼다.

또 '흥부네박'이란 아이디를 쓰는 누리꾼도 "집에서 치킨, 피자, 탕수육까지 푸짐하게 시켜먹는 게 낫지, 4명 영화비에 팝콘, 군것질 값이면… 이제 영화관 안 간다"고 말했다. 이어 'gator'란 누리꾼도 "극장 가서 둘이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영화까지 보면 거의 4만원 깨지네, 그 돈이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라며 "많이 올려서 돈 많이 벌어라"라고 충고했다.

누리꾼 'syhappy'도 "방학 때 온가족이 극장에 가면 웬만한 패밀리 레스토랑 가격이 나온다"며 "말도 안 되는 팝콘 가격에 아주 기절하겠다, 그 기다란 컵에 판매하는 팝콘이 어떻게 8000원인가"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많은 누리꾼들이 "팝콘이면 그냥 팝콘이지, 금테라도 둘렀나", "팝콘이랑 콜라가 점심값이라니…" 등의 의견을 올려 관람료 인상에 대해 불만을 나타냈다.

그런데 관람료 인상이 정말 영화계가 배부르자고 하는 이기적인 결정인 걸까? 관람료가 인상되면 진짜 한국영화계는 부자가 되는 걸까?

'땅 짚고 헤엄치기' 관람료 인상, 근데 왜 지금이지

이번 관람료 인상은 약 8년 만이다. 2001년 한국영화의 호황과 멀티플렉스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시기에 6000원에서 7000원으로 인상된 바 있다(그 전 인상은 < 다이하드3 > 의 개봉에 발맞춰 5000원에서 6000원으로 인상됐던 1995년 여름이다).

가격 담합을 피해 메가박스가 먼저 인상하고, CGV와 롯데시네마 등 다른 대기업 멀티플렉스 체인들도 줄줄이 인상을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CJ CGV의 경우 가격 인상 소식에 하루만에 1000원 이상 주가가 뛰는 등 호재를 맞았다. 추가 비용이 들지 않는 관람료 인상으로 CGV의 경우 400억원 이상의 매출 증가를 기대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쯤 되면 사실 땅 짚고 헤엄치기 수준이다. 재미있는 것은 요금 인상 시기다. 메가박스가 전격적으로 요금 인상을 발표한 시기는 <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 > 의 개봉 시기와 맞물린다. 오비이락(烏飛梨落)이 따로 없다. 예매율 80%를 기록할 만큼 개봉 전부터 관객들의 전폭적인 기대를 모으고 있는 할리우드 대작의 개봉에 발맞춰 가격을 올렸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누리꾼들 또한 이 점을 괘씸해하고 있다. 가격 인상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대작을 보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극장을 찾을 것이라는 것. 많은 누리꾼들이 대작에 편승해 가격을 인상하는 것은 영화 팬들을 우롱하는 처사라고 분노했다. 2007년 전국 관객 750만을 동원하며 외화 흥행 1위를 기록한 전편에 대한 기대치가 경영난에 빠진 메가박스에 용기를 불어넣어 준 것으로 보인다.

연관된 또 하나 흥미로운 소식.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는 19일 "영진위 CGV-롯데-메가박스와 업무제휴협약체결"이란 제목의 보도 메일을 뿌렸다. 요는 예술영화전용관이 없는 지역을 중심으로 세 극장 체인에 예술영화전용관 협력극장을 지정한다는 것.

이 협약은 현재 CGV의 무비꼴라쥬, 롯데시네마의 아르떼란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는 예술영화전용관을 올 27개 극장, 29개 스크린에서 좀 더 넓혀, 다양성 영화가 보다 안정적으로 개봉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한다는 취지다.

협약 체결과 관람료 인상 시기를 본다면, 그간 영화계의 첨예한 화두였던 관람료 인상 문제에 대해 영진위 위원장과 멀티플렉스 대표 간에 어떠한 의견이 오고갔는지 모를 일이다. 오비이락도 이런 오비이락이 없다. 재미있는 것은 "관람료 인상은 영진위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라며 영화산업 주체간의 자율성을 강조해 왔던 '시장주의자' 강한섭 위원장이 친히 멀티플렉스 수장들을 모셔다 놓고 이러한 협약을 맺은 뒤, 관람료 인상이 현실화 됐다는 점이다. 그는 과연 이 대기업 극장주들에게 어떤 약속을 해줬던 걸까.

부가판권과 극장 부율, 관람료 인상에도 한국영화는 배고프다

2008년 12월 3일 열린 '극장요금 체계 및 수익분배방식'에 관한 포럼에서 정헌일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 연구원은 "영화 관람료 인상이 물가 상승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며 "1990년 이후 전체 소득 중 극장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0.1% 내외다, 요금 인상폭이 크지 않다면 관람료를 올릴 때 수익 개선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렇게 관람료 인상이 물가 상승을 주도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 또한 메가박스와 멀티플렉스 수장들을 움직이게 한 동인이었을 것이다. 이미 바닥을 친 경기와 오를대로 오른 물가에 1000원의 관람료 인상 또한 관객들 또한 수긍하지 않겠냐는 포석이었던 셈.

실제로 일부 누리꾼들은 관람료 인상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대세론을 펼치기도 한다. 2001년 이후 2006년까지 물가 상승률이 15%였던 데 반해, 관람료 인상율은 고작 3%였고, 또 다른 문화 상품이나 외국과의 사례를 비교해도 국내 영화 관람료는 그다지 높은 가격이 아니다. 일례로 4000원, 5000원을 호가하는 커피 전문점 커피 가격을 떠올려 보라. 그러나 이러한 관람료 문제의 또 다른 핵심은 왜 영화계가 그렇게 관람료에만 목을 매달 수밖에 없는가에 맞춰져야 한다. 바로 1차 부가판권 시장의 궤멸 때문이다.

IT 강국 대한민국에서 DVD 시장은 사멸한 지 오래다. 할리우드 직배사들도 DVD 사업 분야는 모두 철수시켰고, 그 많던 비디오 대여점은 급감했으며, 그나마도 책 대여점에 기생하고 있는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제작사와 투자사들은 오로지 수익의 80%를 극장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영화 < 트랜스포머 : 패자의 역습 > 포스터

ⓒ CJ엔터테인먼트

그렇다고 한국영화계가 떼돈을 벌까? 미안하지만 극장 부율이 변하지 않는 이번 관람료 인상으로 한국영화의 수익구조가 눈에 띄게 개선될 것이라 보이진 않는다. 외국영화는 배급사와 극장의 수익 배분이 6:4인 반면 한국영화는 여전히 5:5다. 강한섭 위원장은 취임 이후 영화관계자 5인으로 구성된 공정경쟁특별위원회에서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지만 여전히 이 문제는 답보 상태다.

결국 주사위는 던져졌다. 영화계에서 논의에 논의를 거듭해 온 이 관람료 인상 문제는 이렇게 표면적으론 급작스럽게 결정됐다. 관객들이 당혹스러운 것도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관람료 인상이 게으르고 영화 못 만드는 제작자들의 배를 불린다는 인식은 조금 억울해 보이기도 한다. 가장 이익을 볼 당사자들은 바로 극장일 테니. 한국영화와의 부율도 바꾸지 않고, 부가판권 시장도 걱정할 일 없는 극장들은 광고 수익은 광고 수익대로, 팝콘 수익은 팝콘 수익대로 가져가는 이익의 당사자다.

그리고 아마도 관람료 인상과 함께 < 트랜스포터: 패자의 역습 > 은 천만 동원을 목표로 엄청난 사상 최고의 스크린 수를 자랑할 것이다. 관람료 인상이 거론되면 여지없이 재론되는 한국영화의 컨텐츠 문제는 잠시 접어두자. 누가 진정으로 돈을 챙기느냐 하는 걸 직시할 때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관객들이 져야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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