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모델 전지현이 배우로 돌아오려면

2008. 9. 28.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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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문원의 문화비평

현 시점 영화배우 전지현처럼 굴욕적인 스탠스를 보이는 연예인도 또 없다. 그녀는 일종의 안티테제 역할이다. 커리어 관리에 가장 실패한 예로서, '이렇게 가면 안 된다'는 식의 교훈을 타 연예인들에게 남긴다. 그도 그럴 것이, '엽기적인 그녀'로 스타덤에 오른 이래 이를 능가해 본 적도, 아니 유사한 종류의 성공을 거둔 적도, 제대로 방향 전환을 해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그녀의 커리어는 실패의 연속이다.

그러나 더 주목해야할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지현은 '살아남았다'는 점이다. 비록 CF스타로 주로 기능하긴 하지만, 그녀의 스타성 자체는 아직까지도 어느 정도 위상을 보전하고 있다. 현재 콘텐츠 성공 없이 개인 자체의 스타성만으로 살아남은 연예인은 전지현과 김태희 둘 정도다. 그나마 김태희는 전지현보다 데뷔가 5년 정도 늦다. 전지현은 복사기 CF와 '엽기적인 그녀', 단 둘만으로 10년 동안 스타성을 유지한 전무후무한 경우다.

전지현에게 늘 모종의 기대를 갖게 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녀는 항상 재기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 재기해야만 한다. 콘텐츠 없이 아이콘적 위상만으로 스타성을 10년째 유지하는 인물이라면, 콘텐츠가 제대로 접목됐을 때 일으킬 수 있는 효과는 어마어마하다. '엽기적인 그녀'로 이미 증명도 했다. 대중문화산업 기폭제가 되어 순식간에 시장 활성화의 주역이 될 수 있다. 산업 중심으로 기능할 수 있다.

이에 비추어, 전지현의 지난 커리어를 돌아보자. 전지현이 등장한 1997~98년 무렵은 여러 가지 면에서 틴 아이들(idol)에 후했던 시기다. 틴 아이들이 성인적인 면모를 보이며 생기는 퇴폐적 효과에 모두가 압도되던 때다. 여고생 김소연의 키스 신 하나로 온 나라가 들썩이고, 복사기 CF 속 전지현의 섹시한 춤이 대중문화 현상 중심처럼 여겨지던 시기다. 전지현은 이 분위기를 타고 전도유망한 신인 라인에 서게 됐다.

그러나 후광은 거기까지였다. 전지현은 곧 갈 길을 잃었다. CF에서 나와 두 편의 영화와 한 편의 TV드라마에 출연했으나 도무지 효과가 나오질 않았다. 막 하이틴 청춘물 고정 캐릭터에서 벗어나 보다 성인적인 역할을 10대에게 맡기던 시점이다. 그러나 이들 콘텐츠가 요구하던 '나이보다 성숙한 10대' 이미지는 죄다 전지현과 부조화를 일으켰다. 그렇다고 다른 역할을 맡기기도 어려웠다. '성숙한 10대'로 뜬 캐릭터다. 다른 방식으로 팔 생각을 못했다.

그러다 '엽기적인 그녀'를 만났다. 그리고 빅뱅을 일으켰다. 당시로선 역타입 캐스팅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여겨졌지만, 사실 '그녀'는 그에 가장 잘 맞는 캐릭터였다. 전지현이 본래 지니고 있던 무심하고 털털한 이면과 만나 상승효과를 냈다. 남성을 지배하는 페미니즘 투사적 이미지까지 더해져 여성층으로부터도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그녀는 모든 여성이 동경하고 남성이 흠모하는 면모를 모조리 갖춘 아이콘이 되었다.

문제는 바로 그 직후부터다. '그녀' 캐릭터가 지나치게 강해 시도한 연기 변신이 실패했다. 당황해서 다시 돌아온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는 조악한 완성도로 비난받았다. 해외진출을 내건 '데이지'는 시장 착오로 완벽히 무시당했다. 현실에서 붕 떠있는 듯한 전지현 캐릭터를 현실로 안착시킨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역시 관심 밖으로 벗어났다. 전지현의 가장 큰 장점인 '이벤트적 성격'을 외면한 영화였다.

그리고 다시 해외 진출 코드로 갔다. 홍콩과 합작한 '블러드 더 라스트 뱀파이어' 하이프를 크게 터뜨렸지만, 아직까지도 그 실체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 숱한 실패의 연속 동안, 전지현은 그저 2년에 한 번씩 영화를 찍는 안 팔리는 배우, CF로 연명하는 배우가 되었다.

전지현의 가장 큰 커리어 미스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엽기적인 그녀' 바로 직후였다. 연기 변신을 시도해야 하는 건 옳았으나, 아직 '그녀' 이미지가 깊이 박혀있는 상황에서 지나친 무리를 했다. 전작 이미지가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 아이콘은 조금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 전폭적 연기 변신이 힘들다는 판단을 내려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가 않다. 모든 배우는 '모든 장르에서 다 먹힐 수 있는 전천후 스타'가 되기를 희망한다. 로맨틱 코미디 내에 갇혀있고 싶어 하는 배우란 어디에도 없다. 영화 속 캐릭터가 아니라 '자기 이름'으로 보장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자기 캐릭터 이미지가 떨어지지 않는 경우라면, 전작 캐릭터 이미지를 '녹여내는' 캐릭터를 선택했어야 했다.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맥락상 유사한 캐릭터 말이다. 히트작 이미지를 여러 가지 형태로 변형시켜 안정감과 신선감을 동시에 줄 수 있는 접점을 찾아야 했다.

해외 경우를 봐도 이런 커리어 선택의 문제가 동일하게 발생하고 있다. 같은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서 떴던 줄리아 로버츠와 샌드라 불럭 예를 보자. 줄리아 로버츠는 '귀여운 여인'으로 스타덤에 오른 뒤 캐릭터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적과의 동침', '사랑을 위하여', '펠리컨 브리프' 등 전혀 다른 분위기, 무게의 영화에 출연했다. 처음에는 '귀여운 여인'의 관성효과로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곧 대중은 줄리아 로버츠를 버렸다. 심지어 로맨틱 코미디 장르로 되돌아와도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같은 장르이긴 하지만, 캐릭터 이미지가 '전이'된 것이 아니라 '되풀이'되거나 '귀여운 여인'과의 접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를 다시 스타덤으로 되돌려 놓은 것은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이다. '귀여운 여인'에서 보여줬던 캐릭터, 시끄럽고 엽기적이지만 어딘지 귀여운 면모를 지닌 여성 역할이다. 한 번 캐릭터를 돌려놓으니 상황이 훨씬 편해졌다. 장르가 바뀌어도 기존 캐릭터 분위기를 유지해 '스텝맘', '런어웨이 브라이드'를 성공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귀여운 여인'의 언더도그적 분위기가 물씬 풍겨나는 '에린 브로코비치'로 흥행성공과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의 영예를 동시에 얻어냈다.

샌드라 불럭도 마찬가지 경우다. '스피드'의 시끄럽고 우스꽝스러운 여성 역으로 떴다. 차기작 '당신이 잠든 사이에'에서 유사한 역할을 맡아 확고부동한 스타가 됐다. 이후 출연한 '네트', '타임 투 킬'은 연기 변신 성공처럼 보였지만, 사실 줄리아 로버츠와 같은 관성 히트에 불과했다. 이후 그녀는 몰락의 길로 갔다. '프랙티컬 매직', '28일' 등 장르를 불문하고 실패했다. 그런 그녀를 되돌려 놓은 것은, 마찬가지로 '스피드', '당신이 잠든 사이에' 캐릭터를 변용시킨 '미스 에이전트'였다. 한 번 분위기가 반전되니 '투 윅스 노티스', '레이크 하우스' 등도 좋은 반응을 보였다.

결국 전지현이 가야갈 길도 여기다. '엽기적인 그녀' 캐릭터를 변용시킨 형태로 돌아가야 한다. 자신의 히트작 이미지가 지워지리라는 기대를 아예 접어야 한다. 이를 녹여내 익숙한 이미지의 즐거움과 신선함을 동시에 꾀해야 한다. 지금 시점이라면 수년째 이야기가 오가는 '엽기적인 그녀' 속편도 고려해 볼만하다. 대중이 지겨워할 만큼 동일 캐릭터 연기를 남발한 것도 아니고, 영화 자체도 7년 전 작품이어서 대중의 기억이 희미하거나, 아예 보지 못한 이들도 20대 주류 관객층에 진입한 상태다.

어떤 종류의 아이콘은 '되돌아가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자신이 서있던 곳에서 선을 이어나가듯 걸어가야 효과를 낸다. 전지현은 아직 왔던 길을 되돌아가 커리어를 재부팅할 만큼의 스타성은 지니고 있다. 자기 위치와 성향, 시장 방향성을 믿고, 마지막 재시도를 해볼 필요가 있다. 그녀는 그 정도로 아까운 존재다.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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