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의남자'
이준익(49) 감독이 이번에는 달라졌다. 촬영장에서 허허실실 웃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진지하게 모니터를 응시했고. 처음으로 여배우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오는 24일 개봉하는 '님은 먼곳에'를 통해 한층 더 깊어진 자신의 내면을 오롯이 담아냈다고 했다.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역시나 '이준익의
페르소나' 배우 정진영이 함께 했으며. '
라디오 스타' '즐거운 인생'에 이어 이번에도 영화 곳곳에 음악들을 어김없이 넣었다. 이준익 감독은 "음악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이라면서 "이준익 감독의 통사정을 통해 배우들이 만들어낸 영화(웃음)"라고 설명했다.
◇내 영화의 문법은 남들과 다르다
매 영화들이 그랬다. 정신없이 여러 얘기를 담아내다 마지막에서는 깊은 여운에 잠기게 한다. '왕의남자'에서 공길과 장생이 높이 뛰어 오르면서. '라디오 스타'는 최곤과 박민수가 함께 걸어가는 장면에서 멈춰섰다. 베트남 전쟁터로 가버린 남편 상길(
엄태웅)을 만나기 위해 무작정 베트남으로 떠나는 순이(
수애)의 여정을 담은 '님은 먼 곳에'도 상길과 순이가 베트남에서 만나게 되는 장면에서 끝이난다. 여기에 사람. 사랑. 인생에 대한 무언의 메시지를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솔직히 이번 영화는 잘 모르겠습니다. 음악도 좋고. 감성도 있지만. 알쏭달쏭하다 할까요. 다시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게 정답이에요. 사실 이번 영화는 세 번을 봐야 제대로 알 수 있을 거에요.(웃음) 우여곡절 끝에 순이와 상길이 만나면서 영화가 끝나죠. 절제된 결말이자 많은 의미를 함축한 것입니다. 그 안에는 수많은 감정들이 북받쳐 오르죠. 모두들 그 뒤의 장면을 찍으라고 했지만. 과감한 결정이자 위험한 선택이었죠.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생각에 잠겼으면 싶었죠. 내 영화의 문법은 남들과 달라요. 순이를 통해 전쟁을 보는 여자의 시선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여자의 시선이라니? 그에 앞서 왜 꼭 베트남 전쟁이었나도 궁금합니다.
우리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었어요. 그런데 현대사를 당대에 정리하지 못하며 살았죠. 베트남 전쟁을 통해 1970년대 한국사회와 사람들을 되짚었다고 생각하면 돼요. 순이를 통해 그 시대의 여성들의 감정. 돈벌이를 위해 베트남까지 가는 정만(정진영)을 통해 돈의 신화를 쫓는 남자들을 표현한거에요. 개인의 인간사이면서도 가족사이고. 우리의 시대상이죠. 아마도 여자들에게 전쟁은 '왜 우리 남편이. 아들이 가야하는걸까?'라는 생각이 많을 겁니다. 아마
안젤리나 졸리와 '
지 아이 제인' 빼고(웃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죠. 그동안 역사를 히스토리(He Story)라고만 했었다면. 21세기에는
허 스토리(Her Story)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애. 그리고 엄태웅의 재발견
이준익 감독은 영화촬영을 길게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자신의 고집보다는 배우 및 스태프들의 의견에 따르는 비중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또 배우의 연기를 믿고 매 장면을 오래 끌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1000만 관객' 감독의 깐깐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 수애의 캐스팅은 정말 제대로였습니다. 여자 주인공에 대한 느낌은 어땠나요. 또 이제 페르소나(정진영)을 바꿀 생각은 없으신지….
하하하. 제가 캐스팅하지 않았어요. (제작자)정승혜 대표가 시켰어. 나한테 결정권이 있다면 딱 한명 선택할 수 있는 것인데 제일 편한 페르소나를 쓰는 거죠. 한명 있는 것도 힘들어요. 수애는 사실 제 이상형이에요. 그런데 촬영장에서 수애는 순이였어요. 순이가 빙의됐다고나 할까. 앞에서 말했듯 강직하게 결심한데로 실천하는 여자가 순이. 아니 수애였어요. 아마 순이가 순애에게 빙의되지 않았다면. 영화가 만들어지지 못했겠죠. 잠시 미뤄두고 다른 영화를 만들었을 겁니다.
- 제작비(100억원)가 많이 들어서 이전과 다르게 진지하게(?) 촬영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별로 웃지도 않으시고….
경솔함을 보일 수 없어서였습니다. 베트남전쟁은 피땀이 밴 역사이자. 현존사는 역사이기 때문에 진정성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촬영하면서조차 웃을 수 없었죠. 이번에 처음으로 하루에 다 촬영하지 못한 장면이 있었어요. 엔딩장면에서 남편 상길과 순이가 만나는 것이죠. 전쟁통에 상길이 순이를 보자마자 '꺼이꺼이' 울어야 하는 장면이었는데. (엄)태웅이가 울지 않았어요. 정말 고민스러울때 역시 페르소나(정진영)가 말해주더군요. "상길이에게 없는 감정이에요. 울어야 할 이유가 없어요"라고 말이죠. 관객들은 순이가 고생을 하면서 남편을 만나게 되는 과정을 알고 있지만. 상길이는 한국에서 단 한번 본 뒤 베트남에서 두 번째 보기 때문에 그곳에서 울 이유가 없다는 거였습니다. 그러면서 엄태웅의 진가도 알았어요. '아! 이 친구는 연기할 때 거짓말을 못하는 구나. 진심으로 연기를 한다'고 말입니다.
-요즘 화제작들이 많습니다. 감독들의 이름값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어떠세요?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구경이 싸움이죠. 더 재미있는 것은 불난 곳에서 싸우는 것이에요. 요즘 한국영화가 그래요. 뜨겁고 치열하죠. 재미있고 흥미롭게 느끼고 싶어요.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곽경택 감독의 '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모두 다 함께 잘 돼야죠. 이것은 자신감도 아니고. 자만도 아니에요.
남혜연기자 whice1@ 사진 | 최재원 기자 sh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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