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원 "가끔 끌려가는 꿈을 꾼답니다"

2006. 9. 11.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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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원 "가끔 끌려가는 꿈을 꾼답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사형수 윤수 역

"가슴이 울컥해져 헤어나오지 못하겠어요"

(서울=연합뉴스) 김가희 기자 = 젊은 배우가 외모의 장점에서 벗어나 연기력까지 갖춰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하 '우행시'ㆍ감독 송해성, 제작 프라임엔터테인먼트)은 강동원과 이나영이라는 두 젊은 배우의 성장을 보는 즐거움이 뚜렷한 영화다.

강동원은 사형수 윤수 역을 맡았다. 교도소 내 만남의 장소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주로 연기해야 했기에 그의 연기력은 발가벗겨진 채 시험대에 오르는 셈이었다. '이미지'가 앞서 있었던 이 배우는 커다란 눈망울에 좌절과 분노, 회한과 사랑을 훌륭히 담아냈다.

"(가슴을 가리키며)여기를 건드려놨어요. 이 영화가"라며 어찌할 바 모르는 표정을 짓는다.

"요즘 가끔씩 끌려가는 꿈을 꿔요. 너무 무서워요." 어찌하랴. 이처럼 윤수를 벗어나지 못해. 어머니가 도망치고, 아버지가 죽으라고 농약을 먹이는 바람에 눈먼 동생은 추운 겨울날 죽고, 세상에서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자는 그를 살인자로 만들어놓고선 친구와 눈이 맞아 도망가 버렸다. 영화에선 이런 부분이 자세히 설명되지 않았지만 인생 막판에 몰린 윤수가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한 유정(이나영)을 만나 새롭게 사랑에 눈을 뜨고 삶을 소중히 여겨가는 과정을 강동원은 절실하게 그려냈다.

"한정된 공간 안이어서 도망갈 데가 없었습니다. 처음엔 고민이 많았죠. 초반부는 어색한 면이 있었는데 다행히 촬영이 순서대로 진행돼 감정을 점점 고조시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형을 당하러 가는 복도 장면에서 그의 연기는 정점을 향해 치달았다. 담담히 죽음을 맞았음에도 비틀거리는 다리. 유정 때문에 의연하려 하지만 결코 의연할 수 없는 상황.

"죽으러 끌려가 본 적이 없어서 감정을 알 수 없었어요. 기껏해야 고등학교 때 선배들에게 끌려가던 상황을 극대화시킨다고 생각했을까. 담담하게 시작해 마지막으로 갈수록 감정이 고조돼야 한다고 감독님과도 말했고, 거기에 따라 계산적으로 연기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끌려가는 꿈을 꾸면서 그게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리 숨기려 해도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사형장에 끌려가며 운동화가 벗겨지는 장면은 그가 낸 아이디어. 언젠가 책에서 조금이라도 처형당하는 시간을 늦추기 위해 신발을 일부러 벗는다는 것을 읽어 이를 감독께 말했고 받아들여졌다.

좀체 말 없는 두 배우가 만난 까닭에 만난 지 두 달이 돼서야 말을 편하게 할 수 있었다. 두 번째 만난 자리에서도 워낙 말이 없자 답답해진 송해성 감독이 "취미라도 물어보라"고 했고, 5초 정도 지나서야 이나영은 그에게 "취미가 뭐냐"고 물어봤다. 단답형 질문에 단답형 대답. 그 역시 "축구요" 한마디뿐이었을 정도로 어색했던 두 사람은 촬영하며 친해졌다. 그는 "슬그머니 친해졌다"는 표현을 했다.

"나영이 누나가 촬영하면서 '우리 나이에 이런 연기를 해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복'이라는 말을 했는데, 맞아요. 이런 연기를 할 수 있는 건 복이죠."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칭찬을 건넨다. 그는 이런 상황이 낯설다.

"솔직히 저는 '형사'도, '그녀를 믿지 마세요'도, '늑대의 유혹'도 나름대로 캐릭터를 잘 잡았다고 생각해요. 모든 작품을 하기 전에 자신있게 임하죠. 그러지 않으면 두려워서 그나마도 못할 것 같거든요."

물론 그의 표현대로 '나름으론' 잘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행시'를 통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것은 분명하다.

그는 "다시는 사형수 연기를 하지 않고 싶다"고 했다. '우행시'는 꾹꾹 눌러놓았던 그의 감성을 건드렸다.

"어렸을 때 시를 보고 울 정도로 감성적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감성을 닫아놓고 산 것 같아요. 내보이고 싶지 않아서. 근데 이 영화가 제 가슴을 열어놓았어요. 촬영이 끝나고 처음엔 그러지 않았는데 후반작업을 하느라 영화를 다시 보니 그때부터 봇물 터지듯 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겠더군요. 그러잖아도 가을을 타는 편인데 걱정돼요."

윤수와 유정의 사랑은 분명 남녀 간의 사랑일 테지만, 영화를 보면 인간 자체에 대한 사랑이라 여겨진다.

"연기할 때도 느꼈어요. 우린 남녀 간의 사랑을 연기하지만 보시는 분들은 훨씬 넓게 해석할 수 있겠다고. 그래서 더 좋았죠."

이 영화를 찍기 전 6명의 사형수를 만났다. 강동원은 '어차피 그들도 인간일 뿐'이라 생각해 긴장이 덜했지만 감독과 이나영은 굉장히 긴장했단다. 이나영은 50대이지만 아기 같은 웃음을 짓던 한 사형수의 이야기를 듣다 결국 눈물을 쏟아냈다.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인간이 인간을 심판한다는 거, 잘 모르겠어요. 심판을 생과 사로 해야 한다는 거. 그렇지만 피해자가 분명히 있기 때문에 제3자가 뭐라 할 수 없는 거죠.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한 것 같아요. 최고 나쁠 때 들어왔다가 최고 선할 때 죽는다는 것은."

감정을 모두 쏟아부었던 탓일까. 촬영 중 틈틈이 '지금 내가 뭘 하고 있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빠져들 만큼 멍한 느낌이었던 그는 여전히 영화 속 윤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영화를 본 선배들은 그에게 "잘 빠져나오라"고 충고하고 있다.

"코미디 영화가 정말 하고 싶어요. 박장대소하고 웃을 수 있는. '그녀를 믿지 마세요'를 하고 난 후 코미디 영화는 안하겠다고 생각했는데 한 바퀴 돌고나니 코미디 영화 생각이 간절해요."

점점 역량을 키워가고 있는 배우. 잘생긴 데다 표현력도 나날이 향상되니 '금상첨화'란 말이 딱 어울린다.

kah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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