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하라, 저항하라..워쇼스키 형제의 세계관

2006. 3. 6.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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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스타뉴스 김관명 기자]

워쇼스키 형제가 각본을 써 관심을 모았던 '브이 포 벤데타'가 기자배급 시사회를 통해 국내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휴고 위빙, 나탈리 포트만 주연의 이 영화는 오는 17일 전세계 동시 개봉한다.

일단 이 영화는 평화와 안녕을 구실로 온 국민을 얌전하게 길들이려는 정부(극중에서는 영국) 비판 영화이자, 이런 날조된 평온과 권력에 맞서 분연히 일어난 영웅 '브이'(휴고 위빙)의 액션 블록버스터로 읽혀진다. 특히나 브이가 영화 상영내내 쓰고 나온 그 허연 어릿광대 가면과, 그 씩 웃는 광대의 입술 사이로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휴고 위빙의 목소리가 지금도 환청처럼 들리는 영화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워쇼스키 형제의 전작 '매트릭스' 3부작과 비교할 만한 그들만의 독특한 세계관이 바글바글 끓고 있다. 기계와 시스템에 의해 모든 것이(세상은 물론 인간의 의식과 실존마저도!) 지배되고 통제되는 매트릭스의 세계와, 한 미치광이 파쇼(존 허트)와 그가 장악한 미디어에 의해 통치되는 2040년 영국과는 무슨 관련이 있을까.

네가 보는 것이 진짜라고?..의심하라!

'매트릭스' 3부작을 보면서 가장 살떨리는 충격은 아마 네오(키아누 리브스)가 인큐베이터에서 각성하는 장면일 것이다. '진짜 네오'는 인공지능(AI)이 자신의 에너지원을 확보하기 위해 인류를 '재배'한 인큐베이터에 잠든 네오였으며, '가짜 네오'는 이런 진짜 네오가 매트릭스라 불리는 가상현실에서 활개친 허상(앤더슨)이라는 사실!

이는 마이클 베이 감독의 '아일랜드'에서 진짜 인간 링컨(이완 맥그리거)과 복제인간 링컨6-에코(이완 맥그리거 1인2역)의 대립관계와 일면 상통한다. 또한 이제 막 꿈에서 깨어나 "꿈 속에 나온 나비가 진짜 나인지, 아니면 꿈에서 깨어난 이 사람이 진짜 나인지" 헷갈려하는 그 옛날 장자의 고민과도 엇비슷하다. 그러나 과연 진짜와 가짜, 그 구분이 말처럼 쉬운가.

'브이 포 벤데타'도 마찬가지다. 배경은 3차대전을 일으킨 미국이 빈민국으로 전락, 영국이 지금의 미국 지위에 오른 2040년 근미래. 사람들은 맥주를 마시고 TV를 보는, 겉모양만 봐서는 평온한 세상이다. 이 권력의 꼭짓점에 있는 서틀러 의장(존 허트)은 세상의 온갖 억압과 공포로부터 국민을 해방시켜준 영웅이다.

그러나 2040년 영국에서는 모든 일들이 서틀러 의장이 장악한 미디어를 통해 철저히 은폐, 왜곡된다. 반대론자들은 숙청당했고, 개개인의 사생활은 언제 어디서나 도청당하며, 심지어 수만명이 바이러스 실험에 의해 몰살되기도 했다. 이것이 주인공 브이가 그렇게나 까발리고 싶었던(워쇼스키 형제가 폭로하고 싶었던) 진짜 추악한 현실이다.

결국 우리는 '매트릭스'의 아키텍트와 '브이 포 벤데타'의 서틀러 의장이 창조한 세상에 갖혀 사는 꼭두각시일 뿐이라는 것. 앤디-래리 워쇼스키 형제는 두 작품에서 '우매한 관객'에게 조롱하듯 말한다. "당신이 보고 느끼는 현실이 진짜라고? 그것을 어떻게 검증할 수 있는데?"

저항하라, 자유를 위해!..모피어스-네오 vs 브이

그러나 워쇼스키 형제는 그 왜곡된 세상의 이면을 들춰내고 무너뜨리는 과정을 친절히 제시했다. '매트릭스'에서는 모피어스(로렌스 피쉬번)라는 선각자가 구세주('그'=네오)의 출현을 알렸고, 각성한 네오는 마침내 세상을 구원했다. 이는 광야에서 구세주의 도래를 외친 '요한'과 그가 신들매 들기도 힘들다고 했던 '예수'의 관계다.

'브이 포 벤데타'의 브이는 바로 이러한 '매트릭스'의 모피어스이자 네오의 재림이다. 브이는 추악한 현실을 인지했을 뿐더러 그 파쇼 정부 타도를 위한 엄청난 피의 혁명을 몸소 실천했다. 네오가 각종 고난이도 무술 프로그램 덕분에 '혁명'을 완수했다면, 브이는 바이러스 돌연변이에 의한 괴력에 힘입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거짓되고 억압하는 세상 타도를 위한 그들의 각성과 신념은 매한가지인 것이다.

그러면 모피어스와 네오와 브이는 과연 '무엇'을 위해 기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지난하기만 한 혁명을 일으킨 것일까. 모피어스가 매트릭스의 핵심 '소스'에 침투하기 전 "내일 이 전쟁이 끝난다면 목숨을 걸어도 좋지 않은가"라고 말하게 한 힘은 무엇인가. 브이가 그렇게나 총을 맞으면서까지, 그리고 그 멋드러진 영국의사당 건물을 폭파하면서까지 사수하려했던 그 '가치'는 무엇인가.

이 해답은 어쩌면 '매트릭스 레볼루션' 막판에 드러난 것인지도 모른다. 엄청 내리는 빗속에서 네오와 최후의 결전을 벌이던 스미스가 물었다.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이렇게 싸우는 이유가 뭐냐?"고. 이에 네오가 대답했다. "그게, 바로 나의 선택"이라고.

그렇다. 스테이크 맛이 아무리 그리울지라도 그러한 매트릭스에 의해 통제되지 않을 자유, 소파 위가 아무리 평안할지라도 그러한 독재 정부에 의해 교묘히 억압받고 박해받지 않을 자유, 바로 그 인간 개개인의 '자유'다. 이러한 자유(심지어 자유를 위한 투쟁 과정의 독단과 독선에서도 벗어날 수 있는 그 자유!)를 향한 웅장한 메시지야말로, 단순히 화려하고 때깔 좋은 액션 블록버스터일 수도 있었던 두 영화를 두번 세번 보게 하는 매력이다.

<사진설명=위부터 '브이 포 벤데타' '매트릭스 리로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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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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