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행적 젠더윤리의 과잉..SBS '미운 우리 새끼'

2016. 9. 2.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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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미운 우리 새끼>(에스비에스)는 ‘다시 쓰는 육아일기’란 부제를 단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이다. 생후 500개월을 넘긴 아들의 모습이 담긴 관찰카메라를 어머니들이 본다. 7월에 방송된 파일럿(맛보기) 프로그램의 반응이 예상외로 높자, 금요심야 예능으로 정규 편성되었다. 8월26일 방송된 첫 회에는 파일럿에 출연했던 김건모, 김제동, 허지웅에 박수홍이 새로 합류하였다.

<미운 우리 새끼>는 혼자 사는 사람을 관찰하는 <나 혼자 산다>(문화방송)의 설정에 ‘육아’의 시선을 접목했다. 어머니의 시선을 통해 감정을 이입함으로써, 밋밋한 ‘볼거리’를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로 만드는 묘미가 있다. 그 결과 3년째 동시간대 1위였던 <나 혼자 산다>의 시청률을 앞질렀다. 하지만 그렇게 개입되는 ‘어머니의 시선’이 과연 올바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머니들은 아들을 짠하게 바라본다. <나 혼자 산다>에 나왔다면 웃고 넘길 장면들에 “와 저 카노?”란 탄식이 따라붙는다. 독거인구가 511만명에 이르지만, 독거는 어머니들의 시선에 의해 비정상적이거나 불안정한 것으로 간주된다. 물론 수시로 술을 마시는 김건모의 생활은 누가 봐도 걱정스럽다. 하지만 어머니들의 걱정은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47살 박수홍이 클럽에 가서 노는 것도 걱정이다.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것을 넘어, 성인으로서의 자율적인 삶이 모두 걱정인 셈이다. 그리고 이 모든 걱정의 끝에 ‘결혼’이 놓인다.

때로는 결혼이 대안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어머니들이 원하는 결혼이 어떤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을 잘 돌보지 못하는 아들을 엄마처럼 보살펴줄 여자와의 결혼을 원한다. 여기서 남자는 자신과 가족의 삶을 돌보아야 하는 주체가 아니라, 영원히 보살핌을 받는 객체의 자리에 놓인다. 공교롭게도 김제동의 강연 동영상 중에는 “여자들이 불쌍한 남자 잘 보살펴 달라”는 말이 곧잘 나온다. 이는 여성을 높이는 말이 아니라, 남자들에게 관계의 책임을 면제하고 감정의 보살핌을 받는 특권적 자리에 두는 말이다.

어머니들은 진행자 한혜진에게 호감을 드러낸다. 자신의 아들에게 돌봄과 존중의 시선을 보내는 여성에 대한 호감이다. 하지만 한혜진을 에둘러 나온 질문 “연상은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언짢아한다. 아이를 낳아야 하기 때문이란다. 김건모의 어머니는 ‘결혼하면 일을 접고 아이를 셋 낳겠다’고 밝힌 적 있는 모 배우에게 특별한 애착을 보인다. 또한 김건모와 소개팅 하는 여성이 아나운서라고 하자 “결혼하면 그만두면 되지”라 말한다. 아무리 좋은 직업이라도 포기하길 바라는 것이다. 요컨대 어머니들의 소원은 아들을 돌봐줄 여성과 결혼하여 반드시 아이를 낳는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상당한 자유주의자처럼 보이던 허지웅은 자신과 엄마의 관계가 여자친구로 인해 좋아지는 것을 꿈꿨었다는 말을 한다. 여자친구가 엄마에게 딸처럼 굴어줌으로써 모자관계의 개선을 꿈꾸었다는 말은 여성에게 불가능한 ‘대리효도’의 미션을 부과하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한혜진은 “허지웅씨가 속이 깊다”고 칭찬한다.

<미운 우리 새끼>를 관통하는 시선은 퇴행적이다. 다 자란 아들의 삶을 엄마가 관찰한다는 설정도 변태적이지만, 남자는 철들지 않는 존재라서 엄마의 보살핌을 받다가 엄마 같은 보살핌을 주는 여자를 만나 결혼해야 하고, 그 여성은 당연히 자식을 낳아야 되고, 심지어 시어머니의 딸 노릇까지 해주어야 한다는 젠더 윤리는 지극히 퇴행적이다. 결혼은 성숙한 인격을 갖춘 두 성인의 결합이지, 일방적인 보살핌을 떠맡는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프로그램을 볼수록 이들이 왜 혼자 사는지 어머니들만 모르고 시청자들은 모두 아는 신비를 경험한다. 어머니들 사이에도 간간이 “혼자 사는 게 낫겠다”는 말이 스치듯 나온다. 이들의 독거가 어머니들의 시선처럼 그리 딱하지도 않다. 그보다 여기에는 여러 사람의 욕망이 교차되고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출연자들은 자신이 촬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방송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다. 과연 이들이 아무런 욕망 없이 피사체로만 자신을 보여주고 있을까. 어머니들의 욕망은 아들의 결혼이지만, 아들의 욕망은 그와 다르며, 제작진의 욕망과도 다르다. 조연으로 등장하는 사람들의 욕망도 각기 다르다. 김제동은 소개팅에서 왜 그런 무성의한 반응을 보였을까. 그 사이에 누락된 것은 무엇일까. 오히려 이런 것을 살피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또 다른 묘미다. 하지만 이런 동상이몽을 추측하는 것도 과히 상큼하진 않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chingm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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