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후예, 왠지 군국주의 냄새가..

2016. 3. 10.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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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황진미의 TV 톡톡

<태양의 후예>(한국방송2)

<태양의 후예>(한국방송2)는 해외파병지에서 펼쳐지는 사랑을 그린 멜로물이다. 송중기·송혜교의 미모가 화면을 꽉 채우는 가운데, 상큼·달달한 대사로 몰입감을 높인다. 여기에 이국적인 풍광과 분쟁지역이란 설정이 주는 긴장감이 멜로의 맛을 더한다. 그런데 드라마의 세계관과 미학을 살펴보면 심상치가 않다. 드라마가 전형적인 보수우파의 가치관을 지니고 있으며, 아제국주의의 열망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한국은 세계 곳곳에서 군사작전을 수행한다. 디엠제트의 긴장이 살아있는 분단국가지만, 아프가니스탄의 대테러 작전에서 미군과 연합작전을 펴고, 우르크라는 가상의 지역에 파병하였다. 한국의 대기업은 우르크에 태양광발전소를 건설 중이며, 산하 병원의 민간의료단을 파견하였다. 평화유지를 위해 파병된 한국군은 발전소와 노동자, 의료단을 지키는 임무를 맡는다. 현지 아이들은 한글이 적힌 헌옷을 입고, “기브미 초콜릿”을 외친다. 많이 보던 구도 아닌가. 드라마가 그리는 가상현실 속 한국은 미군의 하위 파트너로서 세계를 무대로 군사작전을 펼치며, 이러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국 자본이 전후재건과 의료지원을 명분으로 세계로 진출한다. 이것이 2003년 파병론자들이 취해 있던 아제국주의의 풍경이 아니고 무엇이랴.

당시 파병논쟁에서 논의되었듯이, 살상기구인 군대의 본질을 가린 채 평화유지니 전후재건이란 말로 눙칠 수는 없다. 드라마는 교묘하게 질문을 비껴간다. 초반에 강모연(송혜교)은 사람의 목숨보다 귀한 것이 없다고 믿는 의사이기에 명령에 따라 사람을 살상하는 유시진(송중기)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의사의 가치와 군인의 가치가 충돌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는 강모연이 수술로 사람을 살리는 장면과 유시진이 테러리스트를 섬멸하는 장면을 교차 편집함으로써, 두 사람의 일이 같은 가치를 지닌다고 설득한다. 우르크에서 둘이 재회했을 때, 유시진의 임무가 ‘평화를 지키는 것’임은 더 정교하게 강조된다. 유시진은 강모연과 함께 아랍연맹 회장과 어린이를 살린다.

유시진은 ‘미인과 노인과 어린이를 보호하고 청소년을 계도하며, 총구로 위협당해도 상식을 지키는 것이 군인의 명예’라 말한다. (왜 ‘여자’가 아니라 ‘미인’일까?) 또한 애국심은 군인만의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즉 강모연이 의사로서 충실하듯 각자 소임을 다하는 것이 애국이란 뜻이다. 많이 듣던 논리다. <철도원>이나 <블레임: 2011 인류멸망> 등 숭고한 직업윤리를 강조하는 일본 영화에서 풍기던 군국주의의 냄새가 난다면 기분 탓인가. 유시진이 강모연을 돌려세워 국기에 대한 경례를 시키는 장면이나, 날아가는 헬리콥터에 전원이 도열하여 경례를 붙이는 장면은 또 어떤가.

보수우파의 세계관을 깔고 있는 드라마가 보여주는 멜로는 어떤 것일까. 톡톡 튀는 자주적인 여의사가 둘이나 등장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남성중심의 질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강모연은 주둔지를 책임지는 유시진의 절대적인 보호를 받으며, 목숨을 빚진다. 드라마가 강조하는 남성의 매력은 강한 근육질의 몸과 과묵함이나 비장함 같은 전통적인 남성성이다. 윤 대위(김지원)가 사랑하는 서 상사(진구)는 딸을 염려하는 3성장군의 진심에 감화받아 윤 대위를 외면한다. 아버지의 마음에 빙의되어 이별을 결심하는 남자도 기막히지만, 그 결심을 여자가 아닌 여자의 아버지에게 털어놓는 건 더 기막히다. 이런 가부장적인 멜로가 어디 있나.

<태양의 후예>에 한·중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현상은 의미심장하다. 제국주의 경험이 없지만 21세기 패권국가로 도약하려는 중국의 무의식과, 식민지 경험과 분단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아제국주의를 꿈꾸는 한국의 무의식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만약 이 드라마가 일본에서 만들어져 인기를 끌고 있다면 어땠을까.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가 되고 싶어 안달이 났다고 비난하지 않았을까.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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