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시장 때문에"..'웃픈' 드라마 사전제작 열풍

2015. 12. 1.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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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요즘 한국 드라마 제작 환경은 한마디로 ‘웃프다’. 한국 드라마 제작 시스템의 묵은 과제였던 사전 제작이 활발해지는 모양새인데, 들여다보면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이영애가 출연하는 30부작 <사임당 더 허스토리>(에스비에스)는 지난 8월부터 촬영에 들어갔다. 내년 9월 방영이 얘기되고 있으니 방영 1년 전부터 촬영을 진행한 셈이다. 김은숙 작가가 집필하고 송혜교, 송중기가 나오는 <태양의 후예>(한국방송2)는 내년 2월 방영인데, 지난 7월부터 찍고 있다. 박해진 주연의 <치즈 인 더 트랩>(티브이엔)과 김우빈, 수지가 나오는 <함부로 애틋하게>(한국방송2) 등 내년 방영하는 상당수 드라마들이 100% 사전 제작을 목표로 촬영 중이다.

주로 중국 동영상 사이트에 수출
인터넷에서도 사전심의 시행되자
사전제작 많아져…정착여부 주목
‘중국 입맛 맞춘 드라마만’ 우려도

■ 사전 제작 바람의 배경은 중국

최근의 사전 제작 바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의 한국 드라마 규제에서 비롯됐다. 중국 방송 담당 정책부서인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광전총국)이 올해 1월부터 티브이에만 적용하던 사전심의제를 인터넷까지 확대 적용하기 시작했다. 중국에선 방영 6개월 전에 프로그램 방영 계획을 보고하고, 3개월 전에 완성된 드라마의 심의를 받는다. 그동안 한국 드라마는 주로 ‘아이치이’, ‘유쿠투더우’ 등의 중국 동영상 사이트에 수출해왔는데, 인터넷에서도 사전심의제가 시행되면서 수출길에 타격을 받게 됐다. 한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한국에서 먼저 방영하고 6개월 뒤에야 중국에 노출될 경우, 인터넷 불법 다운로드로 영상이 유출될 수 있어 수출 협상에서 판권료 등 제 가격을 받지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중국 당국은 2014년 <별에서 온 그대> 등 한국 드라마가 자국 인터넷을 휩쓸자 규제의 칼을 빼들었다. 이에 따라 방송사들은 중국 규정에 맞춰 적어도 방영 6개월 전에 방영 계획 보고를 하기 위해 사전 제작에 나서고 있다. 결국 한국과 중국에서 동시에 방송하지 않으면 중국 시장에서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 상황이 사전 제작 바람을 불러온 셈이다.

■ 그동안은 왜 안됐나

사전 제작은 생방송처럼 돌아가는 한국 드라마 제작 시스템의 해법으로 꼽혀왔지만, 여러 이유로 정착되지 못했다. <문화방송> 드라마 관계자는 “지금껏 시도한 사전 제작물이 대부분 실패한 이유가 크다”고 말했다. 허영만 만화가 원작인 <사랑해>(2008), 한국전쟁을 다룬 <로드 넘버원>(2010), 시트콤 <탐나는도다>(2009) 등이 모두 저조한 시청률로 막을 내렸다. <사랑해>를 제작했던 제이에스픽쳐스 이진석 대표는 “사전 제작 드라마는 편성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피피엘(PPL·간접광고)도 잘 되지 않아, 제작사 입장에서는 상당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천무>도 2004년 제작했지만 방송사를 찾지 못해 2008년에야 전파를 탔다. <한국방송> 드라마 관계자는 “<비천무> 제작 당시에는 무협이 인기였지만 4년 후에는 유행이 지나갔다. 편성이 늦춰지면 트렌드를 반영하지 못해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 수 없다”고 말했다.

■ 중국 입맛 맞춘 드라마만 나올라

재등장한 사전 제작 드라마들이 성공하면 한국에도 사전 제작 시스템이 안착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그러나 중국 자본의 투자를 받아 진행되는 사전 제작 흐름이 중국 입맛에 맞춘 드라마만 쏟아내면서 다양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더 크다. <사임당>은 홍콩 엠퍼러그룹으로부터 150억여 원을 투자받았고, <태양의 후예>는 이미 중국 동영상 사이트인 아이치이와 판권 계약을 마쳤다. 문화방송 관계자는 “중국 심의에 맞춰 내용을 수정하거나, 중국 투자자가 제작 단계부터 드라마 소재를 조율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중국 드라마는 불륜이나 외계인, 귀신, 전생 등 미신을 조장하는 내용이 등장할 수 없다. 이런 심의가 적용됐으면 400년 전 외계에서 온 도민준(김수현)이 나오는 <별에서 온 그대> 방영도 불투명했을 수 있다.

사전 제작 바람을 한국 드라마 제작 시스템의 진화로 이어가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이진석 대표는 “방송사가 정해진 상태에서 사전 제작에 들어가는 게 가장 합리적이다. 횟수를 12회 정도로 줄이는 등 우리 실정에 맞는 사전 제작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사진 각 방송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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