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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조건>, 무리수 두면 절대 안 되는 까닭

출처 엔터미디어 | 작성 김교석 | 입력 2013.02.25 15:23

기사 내용

- < 인간의 조건 > , 김준호의 설거지가 의미하는 것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정규 편성 후 < 인간의 조건 > 첫 특집이 마무리됐다. 나쁘지 않은 시청률이지만, 터줏대감인 < 세바퀴 > 와는 엎치락뒤치락하다 살짝 뒤쳐지는 성적표를 받았다. 솔직히 말해 < 인간의 조건 > 은 일주일 합숙하면서 펼치는 미션만으로 큰 힘을 발휘하기는 힘든 골격을 갖고 있다. 웃음이 집약적이지도, 진행이 스피디하지도, 갈등을 일으키고 봉합하는 어떤 틀도 간판으로 내세울 것이 없다. 이 쇼는 빵빵 터트리는 웃음을 장전하고 전진하는 예능이 아니라 최근 다큐 형식의 예능이 그렇듯 먼저 감성으로 아는 사람들의 마음을 젖어들게 만드는 정서의 예능이다. 탁구로 치자면 꽤 오래 지켜봐야 그 매력에 빠져들게 되는 주세혁과 같은 수비형 탁구다.

정서의 예능, 감성의 예능, 삶을 잠시 돌아보라고 권하는 쉼표의 예능, < 인간의 조건 > 은 '리얼리티'를 기반으로 한다. 시청자들의 삶과 방송이 접점을 이루는 게 정서를 전달하는 시작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쇼에서의 '리얼'은 여타 리얼 버라이어티의 리얼과는 개념과 범주가 다르다. < 인간의 조건 > 에 기대하는 리얼의 정도란 미션을 얼마나 엄격하게 수행하는가, 우리에게 보이는 것 이상의 속임수나 편집의 묘를 활용하지는 않을까 하는 수준이 아니다. 여기서 리얼이란 방송 내에 '진짜 삶'이 있다는 믿음을 말한다.

< 인간의 조건 > 이 리얼리티에 대한 믿음을 심어줄 수 있었던 것은 출연진 전원을 < 개콘 > 멤버들로 꾸렸기 때문이다. 다른 프로그램처럼 설정된 캐릭터쇼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든 시청자들에게 일정 부분 노출된 실제로 존재하는 커뮤니티를 통째로 옮겨오면서 캐릭터의 리얼리티를 얻었다. 카메라 안팎의 울타리로 구분 짓는 무대 또한 없이 일주일간 모든 것을 공개한다. < 개콘 > 에서 함께 생활해왔던 이들이 생활공동체를 이루고 직장 동료 겸 선후배에서 점차 가족의 그것과 같아지는 과정을 얼마나 리얼리티하게 보여주는지가 < 인간의 조건 > 의 모든 것이다. 미션 수행이 주가 된다면 예전의 < 만원의 행복 > 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양상국의 집념과 정태호의 손재주가 흥미롭기도 하지만 다음 주가 기다려지는 것은 바로 이 커뮤니티에 대한 호감과 관심 때문이다.

'모여서 행복한 인간의 조건 패밀리'라는 가족애는 < 인간의 조건 > 의 핵심 매력이다. 밥을 먹고 모여 앉아 수다를 떨고 어딘가로 각자 출퇴근을 한다. 그 전에도 매일 보던 사이지만 합숙하다가 방송국에서 만나면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감정. 함께 무언가를 해나가고 있다는 일종의 연대의식은 보는 이들에게 있어 소속감에 대한 동경을 그려낸다. 그 속에서 아날로그 감성, 그동안 놓치고 있었던 주변의 무엇에 대한 깨달음, 그리고 삶과 주변 사람에 대한 고찰이 펼쳐진다. 그래서인지 외향과 성별은 전혀 다르지만 이들이 소파에 앉아 수다를 떠는 모습은 이 땅에 미드 시대를 열어젖힌 또 다른 유사가족 커뮤니티인 < 프렌즈 > 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그런데 시트콤과 달리 별일이 일어나지도 않는다. 이들이 함께 분량을 만드는 장면이란 단순하고 반복적이다. 같이 밥 차려먹고, 함께하는 이벤트라면 같이 쇼핑을 가거나 외식을 하거나 한 번씩 집으로 게스트를 초대하는 정도다. 그런데 이 반복적인 과정 속에서 미묘한 변화가 나타난다. 형 노릇이 다소 어색했던 박성호가 멤버들 이니셜이 담긴 선물을 사오고, 집안일을 한 번도 안 한 김준호가 혼자 설거지를 하게 되는 변화들 말이다. 각자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시청자들도 이 커뮤니티에 더욱 더 큰 호감을 갖게 된다.

양상국이 지렁이에 꽂혀 있을 때 김준현이 같이 가주고, 김준호가 < 남자의 자격 > 에서 도전 중인 '흥부전' 연습을 위해 식구들이 대사 리딩을 함께 도와준다. 수다의 주제도 '생활만족도' '돈과 의미 있는 삶' 등 인생의 가치관과 태도에 대한 것으로 보다 깊어졌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것들을 공유하는 범위가 넓어지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가족애가 돋보였던 에피소드는 양상국의 눈물이었다. 사실 양상국의 지극한 효심, 서울에서 열심히 살아서 성공한 아들이 부모님을 생각한다는 이야기는 전형적인 클리쉐다. 4집 당 1집이 1인 가구이고, KTX가 일상화된 이 시대에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아들의 절절한 사부곡보다는 소녀시대의 윤아를 만났다는 행복에 취한 나머지 통영까지 가서 입원한 엄마를 만나고 온 일을 잠시 잊었던 허경환이 더 현실적이다.

하지만 서울역에서의 눈물의 배웅을 마친 이후 명동 한복판에서 벌인 캠페인 에피소드가 겹쳐지자 양상국의 눈물은 현실성과 진정성을 함께 얻었다. 그럴 상황이 아닌 그를 다시 웃게 만들고, 명동 캠페인 미션을 성공리에 마칠 수 있었던 것은 그를 위해 미리 동선을 체크하고 사람들을 끌어 모은 박성호와 정태호의 배려와 노력 덕분이었다. 눈물과 웃음이 바로 교차해 엉덩이가 난처할 뻔한 이 에피소드는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과는 또 다른 가족, < 인간의 조건 > 의 가족애를 잘 보여준 장면이었다.

이처럼 < 인간의 조건 > 은 미션을 수행하는 리얼 버라이어티이지만 미션이 중심이 아닌 쇼다. 이 쇼는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시청자들에게 삶의 태도를 제안하는 다큐에 가깝다. 휴대폰 사용금지, 쓰레기배출 최소화 등의 미션을 잘 완수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실존주의 철학서 같은 제목에 걸맞게 '삶'을 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그 시작이자 열쇠가 바로 < 개콘 > 멤버들로 꾸린 커뮤니티다. 이 커뮤니티는 시청자와 출연진들의 삶이 교차하고 공감대가 마련되는 장치이자, < 인간의 조건 > 의 리얼리티와 재미를 책임지는 모든 것이다.

따라서 멤버들의 뜻대로 연말 시상식에서 좋은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담백함과 팀워크를 유지해야 한다. 너무 평면적인 관계만 보여준다거나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무리한 설정이 들어가는 순간 커뮤니티도 일그러지고 한 번 무너지면 회복이 불가능한 도미노처럼 미션의 긴장감도 함께 무너질 것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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