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거칠고, 불친절하고, 솔직하지 못한 영화 '변호인'

김경학 기자 2013. 12. 25.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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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변호인 > 이 무서운 흥행 속도를 기록하고 있다. 25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을 보면, < 변호인 > 은 전날 전국 839개의 상영관에서 44만6754명의 관객을 동원해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지난 18일 개봉 이후 일주일 동안 누적 관객 수는 247만4211명에 달한다.

이는 1000만 관객을 동원했던 영화 < 7번방의 선물 > < 광해 > 보다 더 빠른 흥행 속도다. 이처럼 흥행에 성공하고 있는 이유는 < 변호인 > 이 뛰어난 영화라기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는 특정 인물에서 모티브(동기)를 얻었고, 1980년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어 평소 영화관을 자주 찾지 않던 40~50대 장년층 관객도 영화관을 찾기 때문으로 보인다.

'영화 관객 2억명 시대'의 첫 해로 기록될 2013년. 올해 마지막까지 그 열기를 이어가는 영화 < 변호인 > 은 이 같이 흥행할 자격이 있을까.

1980년대 초 부산. 고졸 출신으로 사법고시에 합격한 '우석'(송강호)은 시쳇말로 빽도 없고, 돈도 없고, 가방끈도 짧은 변호사다. 대전에서 판사로 일하다 부산으로 내려온 우석은 부동산 등기·세금 자문 등 관련 법 개정으로 열린 '블루 오션'에 뛰어든다. 그는 탁월한 사업수완으로 부산에서 제일 잘나가고 돈을 잘 버는 변호사로 이름을 날린다.

승승장구하던 우석은 10대 건설 기업의 스카우트 제의까지 받는다. 그러던 우석은 7년 전 밥값 신세를 지며 정을 쌓은 국밥집 아들 '진우'(임시완)가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려 재판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우석은 국밥집 아줌마 '순애'(김영애)의 간절한 부탁을 외면할 수 없어 구치소 면회라도 도와주겠다고 나선다. 우석은 구치소에서 마주한 진우의 믿지 못할 모습에 충격을 받고, 모두가 회피하기 바빴던 사건의 변호를 맡기로 결심한다.

우선 이 영화는 거칠다. 작게는 컷이 넘어가는 호흡부터, 크게는 이야기 전체의 흐름이 매끄럽지 못하다. < 변호인 > 에서 가장 눈에 띄는 법정 롱테이크(컷을 나누지 않고 길게 찍는 것)는 명장면으로 꼽을 수도 있겠지만, 전반적인 영화의 흐름과 비교하면 너무 튄다. 이야기 전개도 우석이 어떻게 성공하는지에 대한 내용은 다소 긴 것과 달리, 영화의 중심이 되는 법정 장면 등은 상대적으로 짧다. 그리고 영화는 러닝타임에 쫓겨 급히 마무리하듯 끝난다. 이를 영화의 주제이기도 한 비상식적인 상황에 대한 불편함 등을 표현·전달하기 위한 감독의 의도로 보더라도, 관객의 입장에서는 다소 껄끄럽게 느껴진다.

이 영화는 불친절하다. 많이 알려져 있듯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젊은 시절이 영화의 모티브가 됐다. 1981년 부산에서 벌어진 용공조작 사건 '부림사건(부산 학림사건)'을 다뤘다. 이에 대한 내용은 영화를 통해 비교적 자세히 이해할 수 있지만,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우석의 장면은 다소 불친절하다. 그 많은 이들이 왜 우석의 변호인이 됐는지에 대해서 영화는 설명해주지 않는다. 영화는 이에 대해 이해가 안 되고, 궁금한 관객은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라고 말하는 듯하다.

영화 < 변호인 > 은 솔직하지 못하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면 제작진을 비롯한 < 변호인 > 관계자들이 솔직하지 못하다. 그들은 이 영화가 노 전 대통령의 젊은 시절을 모티브로 만들었을 뿐, 그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 변호인 > 의 각본·연출을 맡은 양우석 감독은 "실제 부림사건이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 구조와 팩트는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도 이를 강조하는 자막이 나온다. 그러나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누구나 노 전 대통령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영화와 실화가 차이나는 부분도 많지 않다. 영화에 대한 선입견을 최대한 줄이려는 관계자들의 노력은 이해하지만, 이건 '모티브 그 이상'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같은 단점을 모두 만회하는 < 변호인 > 의 매력이 있다. 바로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다. 우석이 즐겨 찾는 국밥집 아줌마로 등장하는 김영애는 연기의 '진수'를 선보인다. 아무리 차가운 심장을 가진 관객이라 하더라도 김영애의 열연을 보고 있으면, 눈이 촉촉해질 것이다. 또 진우의 고문을 담당하는 경찰 '동영'을 맡은 곽도원의 연기도 눈에 띈다. 법정에서 동영이 증인으로 출석해 우석과 신경전을 벌이는 장면에서 곽도원은 한국 최고의 배우 중 한 명인 송강호에 전혀 밀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백미는 우석을 열연한 송강호다. 그는 올해 개봉한 영화 < 설국열차 > < 관상 > < 변호인 > 의 잇따른 흥행으로, '2000만 배우'라는 별명이 붙었다. 2000만 배우로 불리는 그의 용기에 박수치고 싶다. 노 전 대통령이 모티브가 된 인물을 연기하는 것은 배우 입장에서 매우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노 전 대통령은 정치적 성향에 따라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실제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등으로 송강호는 캐스팅 제의를 한 차례 거절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영화에 출연하기로 결심했다. 출연하는 영화마다 '대박'을 터뜨려 더 이상 배우로서는 부러울 것이 없을 정도의 위치에 올라선 그가 이 영화에 출연한 것은, 부러울 것 없이 잘 나가던 우석이 진우의 변호인을 자처한 것과 매우 닮아 있다. 이런 면에서 송강호보다 우석을 잘 소화할 수 있는 배우는 없을 것이다. < 변호인 > 관계자로부터 캐스팅 제의를 받은 송강호는 아마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제가 하께요, < 변호인 > . 하겠습니더".

< 김경학 기자 gomgom@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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