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정과는 싸우듯, 유아인과는 질문하듯 대본 작업"

양승준 2016. 3. 22. 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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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육룡이 나르샤' 공동집필 김영현·박상연 작가

22일 50회로 대장정 마무리…’뿌리 깊은 나무’ 팬들에 깜짝 엔딩

“가장 힘들었던 작업” ’척사광 외전’ 등 준비했는데…

‘선덕여왕’ ‘뿌리 깊은 나무’와 3부작 연결 “작가로서 한 풀어”

“차기작? SF 같은 사극 준비”

김영현(왼쪽)ㆍ박상연 작가는 2009년 방송된 MBC ‘선덕여왕’부터 10년 가까이 공동 집필을 해왔다. 매 회 초반과 후반을 나눠 쓴다. “회의 때 마다 싸운다”는 두 작가는 “공동 작업을 하다 보니 각자 원고 쓰는 시간 보다 회의 하는 시간이 더 걸린다”며 웃었다. 배우한 기자 bwh3140Whankookilbo.com

‘급히 다녀와야 할 일이 생겨서요.’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의 박상연(44) 작가가 일요일인 지난 20일 오전 6시21분에 휴대폰 문자를 보내왔다. 오후 4시에서 오후 5시로 인터뷰를 한 시간 늦춰달라는 요청이었다. 이날 서울 여의도에 있는 작업실에 만난 박 작가는 “드라마 마지막 회 대본은 14일 탈고했는데, 엔딩 장면의 유아인 마지막 대사를 고민하다 수정하고 오느라”며 웃었다. ‘육룡이 나르샤’를 함께 쓴 김영현(50)작가와 박 작가가 살짝 손을 봤다는 마지막 회에는 두 작가의 전작인 ‘뿌리 깊은 나무’(2011)를 봤던 시청자들이라면 깜짝 놀랄 ‘선물’이 담겨 있다.

이달 들어 평균 시청률 16%(닐슨코리아)를 웃돌며 지상파 방송3사 월화드라마 왕좌를 지켜 온 ‘육룡이 나르샤’가 22일 50회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육룡이 나르샤’는 실험적인 사극이었다. 두 작가는 20대 청춘 스타인 유아인을 내세워 이방원에 새 옷을 입혔다. 배우 유동근이 ‘용의 눈물’(1996)에서, 김영철이 ‘대왕세종’(2008)에서 보여줬던 중후했던 이방원과 달리 젊고 여린 이미지가 강한 배우를 캐스팅해 반전을 줬다.

“역사 속에서 이방원이 정몽주를 죽인 게 이방원의 나이 스물 여섯 때예요. 지금으로 따지면 군대 다녀와 복학한 대학 3학년 학생쯤 되는 건데, 이 나이에 나라를 뒤집을 생각을 했다는 게 신선했어요. 그래서 젊은 배우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 유아인을 섭외했죠. 2008년에 ‘최강칠우’란 사극을 했는데, 유아인이 칼도 잘 쓰고 사극에 어울린다고 생각했거든요. 섭외 후 유아인이 나오는 영화 ‘사도’와 ‘베테랑’을 봤는데 보고 나서 확신이 섰죠”(김 작가).

배우 섭외만 파격이었던 게 아니다. 두 작가는 전작인 ‘선덕여왕’(2009)과 ‘뿌리 깊은 나무’(2011)속 이야기를 ‘육룡이 나르샤’에 녹였다. 조선 건국 과정을 그린 ‘육룡이 나르샤’에서 나라 설립의 방향을 좌지우지 하는 비밀조직 밀본과 무명이 나오는데, 이 조직들의 뿌리와 활약 등을 앞의 두 작품에서 끌어와 세 드라마에 다리를 놓은 것이다. 시대를 초월해 세계관을 공유하는 인물과 조직들이 여러 드라마에 함께 나오는 국내 사극을 만든 건 김ㆍ박 작가가 처음이다. 이를 두고 박 작가는 “세계관을 공유하는 작품을 만드는 건 작가로서 오랜 꿈”이라고 했다.

“어려서 (일본 애니메이션)‘은하철도 999’를 보는 데 하록 선장이 나와 놀란 적이 있어요. 다른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이 생각지도 못한 곳에 나와 두 작품의 이야기가 겹치는 게 짜릿했죠. 김 작가가 MBC ‘테마 게임’할 때 이 방법을 쓰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역사는 이어진 얘기잖아요. 그래서 사극이란 장르에도 적합할거라 생각하고 시도해 본 거죠. 작가로서 한을 풀었네요. 하하하”(박 작가).

‘육룡이 나르샤’는 김명민 유아인 신세경 등 초호화 캐스팅에, 드라마 제작비로는 이례적인 300억 원이 투입돼 ‘사극판 어벤져스’로 불렸다. 방송 내내 시청률 10%대 중반을 유지하며 선전했지만, 기대엔 못 미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평균 시청률 25%~45%를 오간 두 작가의 전작과 비교해 시청률이 낮은 것도 사실이다. 박 작가는 “전 작품들 보다 대중적인 공감을 덜 얻은 건 아쉬운 점”이라고 인정했다. 극중 인물이 6명이 나 돼 이야기가 산만했던 것도 드라마의 약점이었다. 비담(‘선덕여왕’)과 무명의 연결 고리와 척사광 등 가상 인물들의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아 이야기도 살짝 덜컹거렸다. 김 작가는 “주인공으로 6명을 내세우다 보니 각 인물들의 이야기를 펼치는데 고민이 많아 역대 작품 중 가장 힘들었던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더불어 “캐릭터의 이야기를 펼칠 시간과 공간이 부족해 애를 먹었다”는 고충도 털어놨다. 두 작가는 ‘선덕여왕’ 속 비담(김남길)과 무명 사이에 얽힌 역사를 비롯해 척사광 외전 같은 별도의 캐릭터 얘기까지 준비했으나 담지 못했다.

김영현ㆍ박상연 작가와 함께 작업한 배우 고현정(왼쪽)과 한석규(가운데), 유아인(오른쪽). MBC, SBS 제공

김ㆍ박 작가는 이영애(‘대장금’·2003)를 비롯해 고현정(‘선덕여왕’), 한석규(‘뿌리 깊은 나무’) 등 시대를 대표했던 배우들과 작업해왔다. 두 작가는 한석규와의 첫 만남을 가장 강렬했던 순간으로 꼽았다. 드라마 섭외를 위한 첫 만남의 자리에서 한석규가 ‘연산의 마음을 가진 세종을 연기하고 싶다’고 한 일성이 아직도 선명하다는 게 두 작가의 말이다. 고현정을 두고서는 “작가와 배우의 교감이 얼마나 짜릿한지 처음 알게 해 준 배우”라고 했다.

“‘선덕여왕’에선 마치 고현정씨와 싸우듯 대본을 썼던 것 같아요. 대본을 주면 고씨가 우리에게 ‘어, 너네 이렇게 썼어’라며 그 이상을 보여줘 놀라고, 그러면 우린 ‘이거 할 수 있겠어’라고 던지는 식이었죠. 유아인씨는 우리가 고민하던 대목에 연기로 그 방향을 알려 준 배우였어요. ‘이야기에 방해되면 내 분량 신경 쓰지 말고 빼세요’란 쿨한 모습에 놀라기도 했고요.”

김ㆍ박 작가가 처음 만난 건 2001년이다. 김 작가는 미니시리즈 ‘신화’를 준비하며 구상이 풀리지 않아 애를 먹고 있을 때였고, 박 작가는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로 영화계에서 신진 작가로 주목 받던 때였다. 이종석 주연의 ‘피노키오’를 쓴 박혜련 작가의 소개로 처음 만나 공동작업을 하게 된 두 사람은 이제 “오누이”나 다름 없다. 박 작가는 “군대 내무반 동기도 이렇게까지 많은 시간을 보내진 않을 것”이라며 “하루 16시간을 얼굴을 본다”라고 농담 어린 말을 할 정도다.

“박혜련 작가와 PC통신 나우누리 퀴즈동호회를 같이 했거든요. 그 인연으로 김 작가님을 처음 봤어요. 운동권 얘기하면서 친해졌죠. 그 때 김 작가님이 ‘너희 학번 애들도 운동권을 알아?’라고 물어 제가 ‘당신들 386세대들이 뭘 알아’라고 맞받았죠. 둘이 회의할 땐 매일 같이 싸워요. 그래도 같이 작업 하는 건 사극에 대한 애정이 크고, 서로가 달라 시너지가 나기 때문이죠. 제가 무협에 강하면, 김 작가님은 멜로에 강한 식으로요”(박 작가).

욕하는 세종(‘뿌리 깊은 나무’)과 낭만 넘치는 이방원(‘뿌리 깊은 나무’)을 만든 두 작가는 차기작으로 또 다른 실험을 계획하고 있다. ‘선덕여왕’-’뿌리 깊은 나무’-’육룡이 나르샤’ 3부작의 세계관을 벗어나 “SF(공상과학) 같은 사극”을 준비 중이란다. 기존 사극에선 볼 수 없던 시대에 접근해 파격적인 사극을 계획 중이라는 설명이다. 2018년 방송이 목표다.

“‘육룡이 나르샤’를 끝으로 (방송사와의 기존)계약도 다 털고 자유로운 몸이 됐거든요. 정말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어요. 구상중인 신작은 역대 최고의 제작비가 들 것 같아요. 지상파든 케이블이든 채널 가리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다양하게 고민해볼 생각이에요”(김ㆍ박 작가).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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