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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노트-13탄] 김철규PD "하지원은 인간적인 배우, 고현정은…"

출처 TV리포트 | 작성 이우인 | 입력 2012.12.13 13:05

기사 내용

[TV리포트=이우인 기자] 김철규 PD는 시청자들이 가슴으로 기억하는 드라마를 만드는 연출자다. 김 PD의 연출은 섬세하고 깔끔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가 연출한 드라마 대부분은 시청률과 작품성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김철규 PD의 작품이 특히 많은 여성 시청자에게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는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점. 고두심 하지원 고현정 등은 김 PD의 작품을 통해 세상에서 상처받았지만 피하지 않고 극복하려고 애쓰는 여성상을 그렸다.

결함이 있는 여성들의 감정선을 표현하는 게 즐겁다는 김철규 PD. 그만의 연출 스토리를 가감 없이 옮긴다.

◆ 대학교 연극 동아리서 첫 연출의 느낌

대학교에 들어갈 때까지는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 영어영문과는 그럴듯해 보이는 학과 중 성적에 맞춰서 골랐을 뿐. 그때는 대부분이 그런 분위기였다. 이쪽(연출) 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대학생 때 경험한 연극 때문. 동아리 수준의 연극이었지만, 연출의 맛을 처음 봤다. 연출하면서 즐거웠고, 다들 잘한다고 해주니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영화나 드라마에 관심이 없었다. 이쪽에 내가 소질이 있는지도 몰랐다. 뒤늦게 나와 잘 맞는 일을 찾은 셈. 영화와 드라마 중에 뭘 할지 고민하기도 했지만, 영화는 자신이 없었다. 밑바닥에서 시작해야 했기 때문. 그보다는 안정적인 직장에서 시작하고 싶었다. 방송사가 적합했다. KBS에 지원했고 운이 좋게 한 번에 붙었다.

조연출 생활은 약 7년간 지속됐다. 사수는 특별히 없고, 어깨너머로 배웠다. 여러 연출을 모셨다. 그중 제일 영향력이 컸던 선배 연출자는 정을영 감독. '목욕탕집 남자들'이라는 긴 연속극의 조연출로 일했다. '목욕탕집 남자들'은 김수현 작가와 정을영 감독이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 작품이자 최초의 외주 프로그램이었다. 최초 외주 제작이어서 잡음이 많았던 기억이 난다.

당시 제작 시스템은 지금보다 훨씬 열악했다. 조연출 또한 연출자의 성장과정이라기보다 현장 심부름꾼에 가까웠다. 현장에서 사람과 차를 막는 일이 주업무였다. '내가 이런 일 하려고 방송사에 들어온 건가?' '이런 일에 치이는 나는 뭐지?' 등 자괴감도 많이 느꼈다. 실제로도 많은 동료가 못 견디고 회사를 그만두거나 다른 부서와 지역국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 첫 단막극서 느낀 연출의 즐거움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나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냥 그만두기에는 조연출로 버틴 7년이 억울했다. 기왕에 시작한 거 단막극 하나는 연출해보고 그만두기로 했다. 당시 드라마시티는 지금보다 드라마국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관심이 높았다. 시청률도 꽤 많이 나왔다. 특히 데뷔작은 드라마국의 모든 사람이 관심을 가졌다.

단막극 첫 작품은 '드라마시티-겨울신기루'(2000). 염정아가 여주인공이었다. 이것만 만들고 그만둘 생각이었는데, 막상 해보니까 재미있더라. 내 성향과도 잘 맞았다. 선배들이 이 맛에 드라마를 연출하는구나 했다. 그래서 그대로 눌러앉았다. 이후 단막극 7개를 더 만들었다. 다행히도 전부 좋은 평을 얻었다.

내가 단막극을 만들 당시는 작가진이 좋았다. '파스타' '로맨스타운'을 쓴 서숙향 작가, '공부의 신' '브레인'을 쓴 윤경아 작가, '솔약국집 아들들' '사랑을 믿어요'의 조정선 작가, '너는 내 운명' '웃어라 동해야'를 쓴 문은아 작가 등이 단막극으로 활동하면서 훈련했다.

나 역시 단막극을 만드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정년퇴직할 때까지 단막극만 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이형민, '적도의 남자'의 김용수, '오! 필승 봉순영'의 지영수, '아이리스'의 김규태 등 내 또래 PD 대부분이 나와 비슷한 생각했을 것이다. 미니시리즈를 하겠다는 욕심은 그리 크지 않았다.

◆ 미니시리즈 입봉작에 쏟아진 호평

미니시리즈 입봉작은 지난 2000년에 방송된 '꽃보다 아름다워'. '거짓말' '바보같은 사랑' 등 많은 히트작을 낸 노희경 작가와 호흡을 맞췄다. 방송 초반에는 걱정이 많이 됐다. 권상우 최지우 주연의 '천국의 계단'이 이미 40%가 넘는 시청률을 올리고 있었기 때문. 시청률보다는 진정성과 감동에 더 큰 의의를 두기로 했다.

실제로 월화수목의 가장 치열한 시간대에 50대 여배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는 건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천국의 계단'과 붙은 초반 10회 때까지는 고전했다. '천국의 계단' 종영 후에는 시청률에도 탄력을 받았다. 평가도 좋았다. 고두심이 가슴에 빨간약을 칠하는 장면을 지금도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상도 많이 줬다. 이 드라마 덕에 해외여행도 몇 번 갔다.

2006년 KBS를 퇴사하고 올리브나인과 프리랜서 감독 계약을 맺었다. 프리랜서로 만든 첫 작품이 '황진이'였다. 김도우 작가의 '여우야 뭐하니'와 김은숙의 '연인' 등 쟁쟁한 작품이 경쟁 드라마로 앞과 뒤에 편성돼 있었다. 걱정됐지만 '황진이'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30%에 가까운 시청률을 올리며 화제를 모았다. 프리랜서 감독으로서 성공적인 스타트였다.

올리브나인의 상황이 나빠지면서 여러 제작사를 전전하다 '대물'이 끝난 뒤 지금의 CJ E & M에 들어오게 됐다. '황진이' '대물' '파라다이스'의 제작사가 제각각인 이유다. 방송사에 있을 때와 프리랜서로 일할 때는 많이 다르다. 방송사는 누가 뭐라고 해도 좋은 직장이다. 방송사에 있을 때보다 큰 금액을 받고 프리랜서가 됐지만, 앞날은 불투명하다.

◆ 순탄한 연출인생, 독립한 지금이 슬럼프

프리랜서는 안정적인 수입원이 없다.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연출자 중 힘들어하는 연출자가 많다. 가장 안타까운 건 연출할 기회를 잡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방송사를 나올 때는 고민을 많이 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힘든 부분이 많다. 특히 작품을 쉬는 지금이 슬럼프다. 일할 때는 힘들어서 빨리 끝내고 싶다가도 막상 촬영이 끝나면 빨리하고 싶어진다.

방송사 안에 있을 때는 어쨌든 직장의 조직원들과 어울릴 수 있어서 공허한 기분이 덜한데, '황진이'를 마치고 나니 진짜로 혼자 남더라. 적응이 안 됐다. 그래서 지금도 꾸준히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내년 가을 방송을 목표로 내년 여름 촬영을 시작할 생각이다. 일본 원작 드라마를 한국식으로 만드는 작업이다. 휴먼 멜로 장르로, 현재는 구체적인 판을 머릿속에 짜는 단계다.

내가 그동안 해온 드라마들의 공통점은 주인공이 여자라는 점이다. 상처와 결함, 그리고 한이 있는 여자들의 이야기에 끌린다. 많이 도전하는 액션물과 미스터리물 또한 해본 적이 없다. 기본적으로는 내가 잘하고 끌리는 드라마를 만들자는 주의. 진지하고, 비장한 장르가 더 잘 맞는다. 가벼운 장르는 서툰 성향을 가지고 있다.

물론 액션이나 미스터리를 만들 기회가 오면 피할 생각은 없다. 기꺼이 받아들여 나만의 스타일로 바꿀 자신이 있다.

◆ 못다 한 이야기...

- 연출작 시청률 순위:

'황진이'와 '꽃보다 아름다워'. 두 작품 모두 30%에 가까운 시청률을 올렸다. 그다음이 '대물'이지만 순수한 내 연출작이라고 할 수 없어 제외.

- 최고의 작품: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황진이'. 작가 배우 연출 모두 골고루 성공적으로 자기 빛깔을 낸 작품.

- 아쉬운 작품:

'대물'. 기획 단계 때부터 참여했다면 더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급하게 투입됐고, 방송을 막기에 급급했다.

- 드라마 제작 단계 중 가장 힘든 단계:

모든 작업이 힘들었다. 그중 캐스팅 단계는 사람의 진을 뺀다. 뜻한 바대로 잘 안 되기 때문. 촬영은 육체적으로 보이는 고통이다.

- 궁합이 잘 맞는 작가:

노희경 윤선주 등 모든 작가와 호흡이 잘 맞았다. 강점이 뚜렷하고 기본적으로 성실한 분들이었기 때문.

- 앞으로 호흡을 맞추고 싶은 작가:

가능하면 신인작가를 발굴해서 일하는 게 맞는다는 생각이다. 신인작가를 발굴하는 즐거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프리랜서 연출자 입장에서는 제작비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 같이 호흡을 맞춘 최고의 배우:

하지원은 A급 스타임에도 굉장히 겸손하고 성실하다. 인간적인 면에서 높이 평가한다. 고현정은 타고난 배우다. 연기의 몰입도와 표현력이 대단하다. 고두심은 가슴으로 연기하는 배우. 자기감정에 푹 빠져서 그 자체를 순수하게 표현한다.

- 우려했지만 급격한 성장을 보여준 배우:

'황진이'의 장근석과 '꽃보다 아름다워'의 김명민. 장근석은 하지원과 나이 차이가 크게 나서 우려했다. 초반까지만 나왔는데도 너무 잘해줬다. 김명민은 무명 시절이어서 주위의 우려가 있었는데, 지금은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배우가 돼서 뿌듯하다.

- 신인으로 발탁해 지금은 톱스타가 된 배우:

신인은 아니었지만 아역 배우에서 성인 배우로 발돋움한 장근석과 무명 배우에서 연기파 배우로 성공한 김명민.

-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드는 배우:

딱히 없다.

- 다시 호흡해보고 싶은 배우:

고현정 하지원과 한 번만 더 해보고 싶다.

- 연출자가 돼서 가장 뿌듯할 때:

머릿속에 그렸던 이야기들이 실제로 영상화돼서 결과물이 나오고, 그 결과물이 좋은 반응을 얻을 때.

- 연출에 영향을 준 연출자:

선배들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꼽기 어렵고 후배 중에는 곽정환, 김규태. 그동안 나는 너무 조심스럽고 깔끔하게 연출하는 데 연연해 했던 것 같다. 주위에서 연출이 유연하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하지만 때로는 후배들처럼 과감하고 파격적이 되고 싶은 욕심이 있다.

- 자신의 작품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면:

어떤 장르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내가 보면서 감동을 하는 드라마.

- 연출자로 꼭 해보고 싶은 장르:

드라마로 만들고 싶어서 몇 년 동안 공을 들였던 2개의 아이템이 있다. 하나는 피겨 스케이트 소재의 본격 스포츠 드라마, 또 다른 하나는 미스터리 드라마였다. 만들기도 성공하기도 어려운 장르여서 제작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다. 여건이 되면 언젠가 꼭 만들고 싶다.

- 현장에서는 언제까지:

나이를 먹어도 힘이 넘칠 때까지는 하고 싶지만, 내 뜻대로 될까? 프리랜서는 연출하기가 더더욱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이병훈 국장은 대단한 감독이다.

김철규 PD는?

1966년생 /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 1994년 KBS 공채 20기 입사 / 대표작 - 꽃보다 아름다워, 황진이, 대물, 파라다이스 목장 / 수상경력 - 2004년 백상예술대상 작품상, 2004년 민언련 '올해의 좋은 방송', 2004년 경실련 '시청자가 뽑은 올해의 좋은 프로그램', 2005년 제11회 상해 국제 TV 페스티벌 대상 극본상

이우인 기자jarrje@tvreport.co.kr/ 사진=조성진 기자jinphoto@tvrepor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