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공감] 여자친구, 가장 문학적인 걸그룹

이기은 기자 2016. 7. 16.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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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 너 그리고 나 바람에 날려

[티브이데일리 이기은 기자] 메이크업을 한 채 아가씨처럼 등교하는 2016년 한국의 기이한 10대 소녀 문화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근 10여 년 간 케이팝(K-POP) 아이돌의 음악·패션스타일이 소년소녀의 성(性)적 욕망을 황급히 촉발시킨 감이 있다면, 이제 막 2년차 걸그룹이 된 여자친구는 이에 관해 아주 반듯하고 건강한 제동을 건다.

뜻 모를 외국어들이 당연시되는 케이팝 속에서 여자친구는 데뷔 이래 단 한 번도 영어 가사를 남용하지도, 노래 속에서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말을 뭉개버린 적도 없다. 신곡 ‘너 그리고 나(NAVILLERA)’의 ‘나비처럼 날아 나나나 나빌레라 바람아 바람아 불어라 훨훨 날아가 너에게로 다가갈 수 있도록’은 현재 케이팝 가사가 도달할 수 있는 최대치의 모범례다. 즉 대중가요가 한글만으로도 얼마나 효과적인 라임과 훅(Hook)을 구사할 수 있는지를 증명해낸다.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중학교 교과서에서나 볼 법했던 조지훈의 시(詩) ‘승무’를 아이돌이 부르는 최신 유행가요를 통해 듣게 될 줄은. 순수 우리말 시구 ‘나빌레라’가 나비처럼 예쁘게 여자친구의 신곡에 안착한 가운데, 실제로 여자친구 전담팀이 구상해낸 큰 그림은 나비 그 자체다.

가령 곡의 인트로에서 메인 댄서 신비가 유려한 팔 동작으로 날개짓을 표현하는 순간, 뒤편에 선 타 멤버들의 팔이 동시다발적으로 빠르게 움직이며 금세 한 마리의 아름다운 나비로 날아오르는 군무 형상이 더할 나위 없이 인상적이다. 이는 시각적으로나 메시지로서나 가요시장에 참신한 충격을 주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나비의 오마쥬는 전지구가 보편적으로 소녀들에게 원해온 희망, 꿈, 약속, 믿음과도 같은 이상향을 상기하게끔 한다. 실제로 이번 신곡의 후렴구 ‘하얀 진심을 담아 새롭게 시작해 볼래. 너 그리고 나 사랑을 동경해. 앞으로도 잘 부탁해’는 비단 남성을 원하는 여성이기 이전에, 미래를 향해 발돋움하려는 소녀들의 주체적인 성향을 엿보게 한다.

심지어 여자친구가 데뷔 이래 선보인 뮤직비디오에는 단 한 번도 남자친구의 존재가 등장하지 않았다. ‘너 그리고 나’ 뮤직비디오는 오프닝을 통해 삼삼오오 모인 소녀들의 이미지를 파노라마처럼 흩뜨리거나 박제할 뿐이다. 달리다가 넘어진 소녀를 일으키는 또다른 소녀, 급기야 함께 손을 잡고 구름다리를 건너는 이들의 동력은 여자친구가 현재 추구하는 가치가 어디쯤에 있는지를 알게 한다. 누구보다 빨리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닌, ‘제대로’ 어른이 되는 과정 그 자체.

나날이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소녀들을 향한 유혹의 손길은 거세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자친구는 동세대들에게 한결같은 공동체 의식을 견지하며 아직은 “사랑을 동경”하자고 말하고 좋은 사람으로 성장하기까지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당부한다. ‘학교 3부작’을 거친 여자친구의 이번 정규1집 컴백이 동어반복 느낌을 주지만, 여전히 건강하고 산뜻해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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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년 간 여자친구를 명료한 콘셉트 아래 성장시킨 소속사 쏘스뮤직의 센스를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단순한 듯 강력한 나비의 이미지를 소녀라는 존재와 직관적으로 등치시킬 줄 아는, 모종의 문학적 감각이랄까. 예컨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쓰이는 기사(News)의 암묵적인 룰이 ‘한글에 서툰 시골 할아버지가 읽어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듯이, 여자친구 소속사는 누구에게나 별반 어렵지 않은 중등교과서 속 ‘나빌레라’를 대중코드로 기어이 영리하게 환원시키는 전략을 지녔다. 말하자면 한류산업에 지속적으로 일조할 엔터테인먼트의 자격요건 일부는 바로 이런 것이다.

[티브이데일리 이기은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송선미 정영우 기자, 쏘스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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