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에 낚인 사람들에게..나홍진 감독의 꿈이란?

전형화 기자 2016. 5. 16.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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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스타뉴스 전형화 기자]
곡성 현장 스틸
곡성 현장 스틸
나홍진 감독의 '곡성'에 낚이셨습니까?

12일 개봉 첫날 30만명이 찾았고, 3일만에 100만명, 5일만에 200만명이 '곡성'을 봤습니다. 역대 5월 개봉한 한국영화 중 최고 속도입니다. 벌써 나홍진 감독의 전작 '황해' 최종 기록을 넘어섰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낚인 덕이죠.

'곡성'은 전라남도 곡성의 어느 마을에 이상한 일본인이 흘러들어온 뒤 벌어지는 일을 그립니다. 끔찍한 사건들이 연이어 벌어지자 이를 해결하려던 경찰에게 생기는 일을 담아냈죠.

'곡성'은 원래 지난해 칸영화제 출품을 겨냥했다가 촬영 일정이 늦어지면서 아예 올해 개봉으로 미뤘습니다. 영화를 미리 본 봉준호 감독이 급체를 했다든가, 류승완 감독이 걸작이 나오고 있다고 했다던가, 수많은 떡밥들이 깔렸습니다.

'곡성'은 처음부터 낚시를 표방했습니다. 시작부터 수상한 일본인으로 등장하는 쿠니무라 준이 미끼를 달아 낚시하는 모습이죠. 그럼에도 "절대 현혹되지 마라"가 영화 카피입니다.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곡성' 티저 포스터 중 하나를 스포일러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깐 '곡성'은 낚시인 동시에 낚이지 말라는 이야기란 뜻입니다.

이 낚시에 많은 사람들이 뜨겁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기분 좋게 낚였다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 낚여서 기분이 더럽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걸작이라고 추앙하는 사람들도 있고, 망작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추앙과 폄하는 곧 낚여서 좋았다거나 기분 나빴다거나의 또 다른 반응일 듯 싶습니다.

이런 반응들이 맞다거나 틀리다거나 할 건 없습니다. 이런 평이야말로 나홍진 감독이 바랐을 반응들일테니깐요.
곡성 현장 스틸
곡성 현장 스틸
지금으로부터 4년 전쯤, 나홍진 감독이 한창 무당들을 만나고 다닌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무당 암자에 몇 달씩 들어가 있다는 소식도 들었죠. '황해' 이후 그는 절치부심했습니다. 전작인 '추격자'(504만명)에 못 미치는 흥행(226만명)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황해'를 11개월 가량 찍다보니 후반작업 일정이 그의 기준에 비해 턱없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나홍진 감독은 남의 영화 뿐 아니라 자기 영화를 신 별로, 편집 콤마별로 외우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남들 눈에는 티끌로 보이는 흠이, 자기 눈에는 들보로 보이는 사람입니다.

그랬던 그가 이를 악물고 '곡성'을 준비한다는 소리가 들리니 어찌 기대가 되지 않았겠습니까?

2014년 1월의 어느 날. 소설 형태로 갓 만들어진 '곡성' 시나리오를 구해 봤습니다. 따끈따끈한 그 시나리오는 지금 개봉한 영화보다 훨씬 모호했습니다. 더 강렬하기도 했구요. 시나리오만 보고 토했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당시 나홍진 감독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소감을 묻는 그에게 "감독이 하고 싶은 대로 찍으면 칸 경쟁에 갈 것 같고, 흥행을 바란다면 같이 만드는 사람들 이야기를 많이 들어야 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결국 '곡성'이 제69회 칸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갔고, 흥행에 성공했으니, 그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 한 것 같습니다.

영화는 운명인 것 같습니다. 사실 나홍진 감독은 처음에는 황정민 역할에 류승룡을 염두에 뒀습니다. 천우희 역할은 걸그룹 포미닛의 현아를 생각했었죠. 우여곡절 끝에 지금으로 바뀌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완벽한 조화였습니다. 그러니 영화를 살아있는 생물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촬영 내내 현장에서 숱한 소문들이 흘러나왔습니다. 비 내리는 장면에 등장하는 천우희가, 단지 먼 거리에 등장하는 그 모습 때문에 5일 동안 비 맞으면서 찍었다는 건 약과였습니다. 쿠니무라 준은 폭포 장면 촬영 때문에 산에 오른 건 만으로 이미 탈진한 상태였는데, 그런 자신을 크레인으로 찍고 있더라며, 그 크레인을 그곳까지 옮겨 온 사람들을 생각하면 힘들다고 할 수가 없었다고 토로했습니다. 쿠니무라 준은 "원래 한국영화 촬영 현장은 이렇게 힘드냐"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나홍진 촬영현장이라 그렇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나홍진 감독은 타협을 안 합니다. 그 탓에 종종 싫은 소리를 듣죠. 여느 감독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그림의 촬영현장이 없다면, 대개 타협을 합니다. 3~4달 로케이션을 했는데도 못 찾으면 비슷한 곳으로 만족하기 마련입니다. 나홍진 감독은 어떻게든, 끝까지 그 장소를 찾아냅니다.

그는 '곡성'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쩌면 더했겠죠. 나홍진 감독은 '곡성'에 더 많은 자연광을 담고 싶어했습니다. 도심 속에서 찍은 '추격자'나 '황해'와 달리 '곡성'은 자연 속에서 찍는 만큼, 최고의 조명은 자연광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곡성'에서 자연이야말로 또 다른 주인공이 되길 바랐습니다.

홍경표 촬영감독은 그런 나홍진 감독의 의도를 십분 받아들였습니다. 해가 뜨고 지는 매직타임을 영화에 담기 위해, 무거운 카메라를 등에 지고 산봉우리에 수시로 오르고 내렸습니다. '곡성'에 넓고 깊은 산과 마법 같은 분위기가 담긴 건 그런 덕이었습니다.

'곡성'이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은 뒤 나홍진 감독이 통화를 했습니다. 의아해하고 다소 실망한 기자에게 나홍진 감독은 "직접적인 묘사보다 분위기로 묘사하기를 바랐다"고 했습니다. 등급에 말들이 많지만, 직접적인 묘사에 기계적인 평가를 내리는 현재 시스템에선, 지금 등급에 이의를 제기하긴 힘듭니다. 어쩌면 그 역시도, 나홍진 감독의 낚시였을지도 모릅니다.

'곡성' 기자시사회가 끝난 뒤 나홍진 감독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모든 감독이 그렇겠지만, '황해' 이후 6년만에 신작을 내 놓은 그 역시 초조하기는 마찬가지였을 터입니다. "어떻게 봤냐"고 하길래 "시나리오보다 훨씬 명확해졌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런 평에 "흐~흠"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나홍진 감독은 '곡성' 촬영이 끝나고 이번에는 11개월 동안 편집을 했습니다. 수도 없이 새롭게 영화를 만졌습니다. 제작보고회 이틀 전에야 칸영화제에 음악 없는 편집본을 보낼 정도였으니깐요. 그는 관객이 '곡성'을 모호하게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각자의 답을 찾길 바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선입견이 없기를 바랬구요.

덕택에 그는 기자 인터뷰들을 괴로워했습니다. 기자가 쓴 '나홍진이 말하는 '곡성'의 결말..이 인터뷰는 영화보고 보세요(스포有)'와 연합뉴스에서 나온 '나홍진 감독 "'곡성'은 코미디이자 정통 상업영화"란 인터뷰들에 괴로워했습니다. 관객에게 선입견을 줘서 감독이 스스로 자기 영화를 망치고 있다고 괴로워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나리오를 쓸 때 각 장면마다 관객의 반응을 퍼센티지로 나눈다. 어떻게 반응할까를 고민하고 그 퍼센티지를 변형시키도록 노력한다. '곡성'에선 이런 의심, 저런 의심을 갖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만일 '곡성'을 관객이 재관람하면, 즉 영화에 대한 정보가 있는 관객들이라면 그 장면들의 퍼센티지가 다시 바뀌길 바랐다. 볼 때마다 다른 느낌을 갖기를 원했다."

장르는 일종의 규칙입니다.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 모두 이 규칙에 익숙해져 있죠. 나홍진 감독은 '곡성'을, 이런 규칙대로 만들다가 여러 번 배신 했습니다. 기대가 곳곳마다 달라집니다. 이 달라짐이 충격을 주죠. 그리하여 '곡성'은 스릴러와 미스터리와 오컬트에 좀비까지 혼합장르지만, 결코 그 어떤 장르도 아닌 영화입니다.

그런 배신을 그는 바랬습니다. 그런 배신 때문에 어떤 관객은 열광하고, 어떤 관객은 혹평을 하게 됩니다. 그런 반응 역시 그가 바란 것일 겁니다.
곡성 현장 스틸
곡성 현장 스틸
곽도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홍진 감독이 여전히 악몽을 꾼다. 꿈에서 찍지도 않은 장면을 편집하고 있다고 하더라. 한 시간만 더 준다면 더 잘 만들 수 있을텐데"라고 했답니다.

그런 나홍진 감독의 지독함이 '곡성'을 만들어낸 것 같습니다.

대개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 재미부터 따집니다. 당연합니다. 배우들의 연기부터 평합니다. 당연합니다. 그런데 '곡성'은 보고 나면 그래서 이 영화는 뭘 이야기하려는 것이냐부터 따집니다. 영화의 본질을 묻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최근 한국영화가 잃어버린 질문입니다. 그저 영화를 둘러싼 어떤 것들, 더 나아가봤자, 정치적인 프레임으로 이야기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국제시장' '연평해전' 등이 그랬죠. '곡성'은 관객의 호불호를 떠나 본질을 묻게 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영화입니다.

나홍진 감독의 꿈은 이렇습니다.

"시간이 오래 흘러 내 필름이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다가 어느 외딴 섬에 도착하는 겁니다. 그래서 한 소년이 그 필름을 보는 것이죠. 그리고 영화에 대한 꿈을 꾸는 겁니다. "

그 소년이 어떤 꿈을 꾸게 될지, 4885를 찾게 될지, 김을 한 입 가득 쑤셔 넣게 될지, 밥을 막 입에 처넣으면서 칼을 힐끔 보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서두요.

'곡성'이, '곡성'의 흥행이, 그래서 반갑습니다. '곡성'에 낚인 사람들이라면, 좋고 나쁘고를 떠나, 나홍진 감독의 다음 영화에도 아마 낚일 것 같습니다.

전형화 기자 aoi@mtstarnews.com<저작권자 ⓒ ‘리얼타임 연예스포츠 속보,스타의 모든 것’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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