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화 <인턴>이 불쾌하다

김성호 2015. 10. 5.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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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82] 성장드라마의 탈을 쓴 불온한 코미디

[오마이뉴스 김성호 기자]

(* 이 기사에는 영화 <인턴>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인턴> 메인 포스터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이 시대 많은 젊은이들에겐 그 이름만으로도 치가 떨릴,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어떤 종류의 희망과 절실함이 묻어있는 제도가 바로 인턴이다. 인턴제, 또는 인턴십 프로그램이라고도 불리는 이 제도는 구직자들이 산업현장에서 직접 교육 및 훈련을 받아 향후 구직활동을 더욱 효과적으로 해나갈 수 있게 돕는 과정이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에선 인턴이 법적으로 교육대상자임을 명확히 밝히고 있으며, 기업이 상시적으로 수행하는 업무를 인턴에게 맡기는 건 불법행위로 처벌받게 된다. 한국에선 오히려 생소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인턴의 본래 의미는 노동을 통해 회사를 돕는 직원이라기보다는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훈련을 받는 미숙한 교육생인 것이다.

영화 <인턴>은 말 그대로 인턴처럼 미숙한 사람이 한 단계 성숙해지는 과정을 유쾌하게 담아낸 낸시 마이어스 식의 코미디다. 각본가 출신 감독으로 <페어런트 트랩>, <왓 위민 원트>,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로맨틱 홀리데이> 등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자신만의 경쾌한 작품을 만들어온 낸시 마이어스가 2009년작 <사랑은 너무 복잡해> 이후 6년 만에 내놓은 작품이라 더욱 주목받았다.

영화의 주인공은 의류쇼핑몰의 경영자로 창업 1년 반 만에 회사를 직원 220명 규모로 성장시킨 줄스 오스틴(앤 헤서웨이)이다. 성공한 사업가로 날로 번창하는 사업에 매진하는 사이 그녀의 삶에 나버린 구멍을 노년의 인턴이 메워준다는 게 영화의 기본적인 얼개다. 70세 퇴직자로 시니어 인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줄스의 회사에 들어온 벤 휘태커가 바로 그 인턴으로, 명배우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했다. 회사에선 인턴이지만 인생에 있어서만큼은 훌륭한 조언자인 벤이 회사에선 경영자지만 삶에선 인턴이나 마찬가지였던 줄스를 바른 길로 인도하며 웃음과 감동을 던져주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코믹드라마라 하겠다.

보통의 경우 완성도를 떠나 이런 류의 영화를 불쾌하게 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영화 자체의 무게가 무겁지 않고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한다기 보다는 가볍고 유쾌한 분위기를 이어나가는데 집중하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백하자면, 나는 이 영화를 꽤나 불쾌하게 보았다. 몇 차례 결정적인 장면마다 등장한 벤의 대사가 로버트 드 니로의 입을 빌려 감독 낸시 마이어스가 내뱉는 위선적 충고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해피엔딩?

우선 영화의 구조에 대해서부터 이야기해야 할 듯하다. 영화는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는 줄스의 회사에 벤이 입사해 여러가지 사건을 겪으며 점차 친해지는 과정이 담겼고, 후반부는 회사 경영과 가정 문제로 힘들어하는 줄스에게 벤이 위안을 주는 내용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다시 말해 영화는 새로운 사람들이 독특한 환경에서 만나 좌충우돌하며 알아가는 과정을 전반부에 배치하고, 일과 가정 양쪽에서 어려움을 겪던 줄스의 문제를 후반부에서 해소하며 끝맺는 구조로 되어 있다. 따라서 영화가 해소해야 하는 문제란 처음부터 줄스의 문제였으며, 이 문제를 해소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담당하는 게 벤의 존재인 것이다.

매우 단순하면서도 전형적인 구도인데, 벤이 줄스에게 어떤 조언을 건네느냐와 줄스가 그를 통해 상황을 어떻게 바꿔나가느냐가 바로 영화의 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문제는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얼핏 영화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바람을 핀 남편이 줄스에게 찾아와 용서를 구하며 가정이 안정을 되찾았으며, 이 장면에서 줄스가 전문경영인을 영입하지 않고 계속 경영을 해나가도 된다는 허락까지 얻어냈기 때문이다. 이는 줄스가 시종일관 고민하던 두 가지 문제로, 이를 한꺼번에 해소함으로써 영화는 완전한 해피엔딩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그로부터 문제가 해소된 것일까 의문이 든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집안일을 하는 남편이 그로부터 어떠한 자존감이나 만족감도 찾지 못하고 심지어는 열등감과 피로감만을 느끼는 모습을 그려왔는데, 줄스는 다시 바깥일에 전념하고 남편은 계속 집안일을 하자는 결론이 대안이 될 수 있는 건지 공감하기 어렵다. 낸시 마이어스는 남편이 집안일에 치여 극도로 지쳐있는 모습을 강조하기 위해 가정부를 단 한 차례도 등장시키지 않고 그저 대사만으로 존재한다는 걸 알려주는 편법마저 쓰고 있는데, 가정부까지 둔 상황에서 그토록 지쳐있던 남편을 다시 그러한 생활로 돌려보내는 게 어떻게 해피엔딩일 수 있다는 말인가.

로버트 드 니로의 입을 빌려 쏟아내는 낸시 마이어스의 위선적 충고

 낸시 마이어스
ⓒ 인턴
문제는 이뿐이 아니다. 나는 남자들의 영역이라고 여겨졌던 영화판에서 성공한 여성 영화감독인 낸시 마이어스가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벤의 입을 빌려 하는 듯한 장면을 수차례 목격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상당수가 급작스럽거나 도덕적으로 온건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영화가 줄스의 성장기를 그리며 그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을 깔아뭉개는 듯 여겨진 몇몇 장면이 대표적이다. 벤이 줄스 대신 줄스의 딸을 친구의 생일파티에 데려다주는 신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벤은 그곳에서 만난 전업주부들이 줄스가 상사로 모시기 까탈스럽지 않느냐고 묻자, 거의 비아냥댄다고 느껴질 정도의 뉘앙스로 줄스를 미화한다. 이 장면은 반대로 전업주부들이 무능하고 남을 깎아내리기만 하는 존재이며, 줄스는 그와 전혀 다른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듯 들리기도 한다. 아내를 위해 일을 관두고 가정주부로 살고 있다는 줄스의 남편 역시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전업주부란, 줄스를 깎아내리고 줄스의 남편과 바람을 피는 모습으로만 그려진다. 특정한 캐릭터가 아닌 수 명의 불특정 전업주부 캐릭터를 그토록 저열하게 묘사한 걸 과연 우연이라 할 수 있을까? 그들에게 반격하는 벤의 모습을 통쾌하게 여겨지게끔 연출하는 걸 과연 적절한 연출법이라 할 수 있을까?

전반부의 유쾌하고 경쾌한 코믹드라마에서 불륜이란 소재로 급격하게 선회하고, 잘못이 있는 남편의 사죄를 통해 현상을 유지하며 끝마쳐지는 영화를 과연 성장드라마라 할 수 있을까? 사실상 상사를 편드는 것에 가까웠던 벤의 조언이 그렇게 가치 있는 것이었을까? 낸시 마이어스는 이 영화를 통해 대체 어떤 이야기를 하고팠던 것인가. 나는 이 영화로부터 가정주부보다 바깥에서 일을 하는 게 우월하고 그를 위해 덜 능력이 있는 이가 희생하는 게 온당하다는 낸시 마이어스의 생각을 읽었을 뿐이다. 그리고 벤이라는 성숙하고 매력적인 남성 캐릭터의 입을 빌려 이러한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 매우 부적절하고 비겁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 영화가 불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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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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