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면성실·자급자족..'홍상수 월드'를 지키는 미덕

2015. 9. 24.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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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영화인생 20년' 홍상수 감독 인터뷰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 개봉 무렵 한 인터뷰에서 홍상수에게 "앞으로도 충무로가 좋아할 영화를 찍진 않을 것 같다. 충무로에서 영화를 만들 수 없는 때가 오면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물었다. 답은 짧았다. "혼자서 찍겠다." 12년 뒤, 그는 8번째 장편 <밤과 낮>(2008)을 마지막으로 충무로를 떠났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2009)에서부터 오늘까지 홍상수는 자신이 차린 제작사(전원사)에서 사적으로 모은 최소의 제작비로 근면한 노동자처럼 9편의 장편, 3편의 단편을 찍었다.

그간 국제영화제에서 거둬온 성과와 평단의 찬사는 화려하지만, 그의 영화와 관련된 숫자는 단출하다. 1억 안팎의 제작비, 웬만한 단편보다 적은 10명 미만의 스태프, 대개 50개를 넘지 않는 개봉관, 3만여명에서 6만여명을 오가는 관객 등등. 감독이 직접 크레디트를 쓰고 예고편을 만들고 홍보 문안을 고치며 가내수공업자처럼 영화를 만들어온 홍상수의 영화인생이 올해로 20년이다.

씨네큐브와 압구정 씨지브이(CGV)에선 지난 8월 로카르노영화제에서 대상과 남우주연상(정재영)을 받은 최신작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의 24일 개봉에 맞춰 20주년 특별전이 열리고 있고, 그는 세 차례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했다. 다음은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홍상수 감독이 들려준 말들과 추가 서면질의응답을 정리한 것이다.

2008년 충무로에서 나온 뒤자신의 제작사서 최소 제작비로9편 장편·3편 단편 꾸준히 작업'가내수공업자처럼' 직접 크레디트신작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정재영·김민희 두 배우 느낌 반영찍기 전 눈 감고 음악 듣게 하기도1년에 두세편씩은 만들고 싶어"

-당신의 영화에서 배우의 존재가 특별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배우들과의 교감을 통해서 촬영과정에서 이야기가 바뀌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 두 배우의 존재감은 더 큰 것 같다. 몇몇 장면에선 두 사람이 자신들만의 우주를 만들고 있다고 느껴진다. 배우들과 작업이라는 면에서 이번 영화가 이전과 다른 점이 있었다면?

"정재영, 김민희란 사람에 대한 내가 사람으로서 받아들이는 면들, 느끼는 면들이 이 영화의 전체 흐름과 톤과 결말을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바탕이 된 것 같다. 언제나 내게 배우는 영화 작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였고, 이번 영화에선 그 중요함이 더했던 것 같다."

-기주봉이라는 배우는 비중은 작지만 당신의 영화에서 언제나 특별하게 느껴진다. 그가 등장할 때 화면에는 항상 온기, 위안의 기운이 번진다. 그 배우, 그 사람에 대한 느낌을 듣고 싶다.

"말씀하신 대로다. 나도 그분이 특별하다고 생각하고, 어떤 훼손시킬 수 없는 진정성과 삶에 대한 아름다운 태도 같은 걸 항상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새 영화를 찍을 때면 그분이 들어갈 수 있는 신을 일부러 한번씩 생각해보는 거다."

-당신의 영화에서 구조는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의 구조는 이전의 대구 구조들과 비슷한 듯 다르다. 지금의 구조는 어떤 시점에 어떤 계기로 정하게 되었나.

"굉장히 미세한 차이만을 갖는 두 신을 '배우의 몸'을 통해서 표현해보고 싶다, 라는 생각이 촬영 직전에 들었다. 그런 신들이 2부 초반에 있고, 그 뒤에 조금 굵은 차이들을 조금씩 넣기로 했다. 그런 미세한 차이가 '배우의 몸'에만 의존해서 표현하는 게 가능한 건지, 그게 너무 미세한 걸로만 그치게 되는 게 아닐지 고민이 있었다. 그런 게 가능하다면, 그래서 관객이 그런 미세한 차이를 미세하지만 충분히 느낄 수 있게 된다면 1부와 2부 사이의 관계가 그냥 대구로 완결되는 게 아니라, 삼부, 사부, 오부, 계속 이어질 수 있는 '무한한 숫자의 가능한 세계들'을 상상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2부의 감정은 홍 감독의 어떤 영화보다 강렬하다. 특히 스시집 장면이 그렇다. 이 장면을 찍을 때의 특별한 느낌이 기억난다면 들려달라.

"1부 때와 달리 찍기 직전에 음악을 눈을 감고 듣게 했고, 음악이 끝나고 조용히 신을 시작했고, 두 배우는 놀라운 걸 해냈다고 생각했다."

-촬영지인 수원에 호기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그리고 촬영하면서 새롭게 느끼게 된 이 장소의 개성이 있었다면?

"아주 오래전에 기억도 안 나는 이유 때문에 수원에 혼자 내려갔다가, 전철역 근처에서 한두 시간 배회하다 다시 서울로 올라온 적이 있다. 겨울이었고, 그래서 그 이후로 겨울에 혼자 남자가 어디로 여행을 간다는 설정을 생각할 때면 수원을 꼭 떠올렸던 거 같다."

- 지난 20년의 시간에서 제일 힘들었거나 인상적인 사건이 있었다면?

"<밤과 낮> 만들 때였던 것 같다. 제작사가 촬영 직전에 제작 중단 통보를 해왔다. 힘들었지만 올 것이 왔다고도 생각했다. 어차피 내가 장사되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그 이후로 혼자서 아주 작은 규모로 만들어왔지만 더 자유로워졌고, 그게 좋았다."

-영화 만들기가 제일 즐거운 일이라는 말을 종종 해왔고, 실제로 독립제작방식을 택한 뒤로 1년에 한편 이상 만들어왔다. 여건이 주어진다면 더 자주 만들 생각인가?

"조금 쉬고 다시 만들고 하는 식으로 계속 만들면서 살고 싶다. 그게 몇 편일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씩만 쉬고 계속 만들고 싶다. 배급, 해외 일 등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불가능하겠지만 1년에 두세편씩은 만들고 싶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성격의 영화(예컨대 시대극)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진 않나?

"앉아서 미리 하는 생각들은 더 안 하고 살게 된 것 같다. '그때'가 오면 맘을 열고 '지금' 일어나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반응하고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지는 거 같다. 그런 태도 안에서 안락함 같은 걸 느끼기도 한다."

홍상수는 김주혁, 이유영이 출연하는 18번째 영화를 벌써 완성했고 올해 말 또 다른 영화를 만들 생각이라고 한다. 그는 더욱 근면해지고 있다.

허문영(영화평론가), 사진 로카르노필름페스티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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