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 잡는데 베테랑 '형사', 나쁜짓에 베테랑 '재벌3세'

2015. 7. 28.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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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류승완 감독 신작 '베테랑'

"수갑 들고 다니면서 쪽팔리게 살지 말자"는 정의로운 형사와 "나한테 이러고도 뒷감당 할 수 있겠냐"는 안하무인 재벌 3세의 대결. 류승완 감독의 신작 <베테랑>은 간단히 말하면 이런 이야기다. 플롯만 보자면 이명세 감독의 1999년 작 <인정사정 볼 것 없다>나 2002년부터 3편의 시리즈로 제작된 강우석 감독의 <공공의 적>과 궤를 같이 하는 '한국형 형사물'이다. 하지만 <짝패>(2006)로 현실감 넘치는 맨몸 액션의 정수를, <부당거래>(2010)로 부패한 사회의 민낯을 까발리는 선 굵은 스토리를, <베를린>(2013)으로 역사적 상상력에 스타일을 더하는 대중성을 익힌 류승완 감독은 이 낯익은 형사물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했다.

황정민·오달수·유해진 등 총출동류승완표 액션 관객 들었다놨다재기발랄 유머코드로 잘 버무려마약·개인적 복수 등 재벌 악행뉴스보는 것같은 데자뷰 느낄만악역맡은 유아인 "5㎏ 체중늘려"

'죄는 짓고 살지 말자'를 신념으로 삼는 행동파 형사 서도철(황정민), 20년 경력의 의리남 오팀장(오달수), 위장 전문 홍일점 미스봉(장윤주), 체력 단련이 취미인 육체파 왕형사(오대환), 막내 윤형사(김시후)로 구성된 광역수사대. 오랫동안 쫓던 자동차 사기·밀매 사건을 해결하고 '승진'을 앞둔 이들 앞에 세상을 발아래 둔 듯 교만 방자한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가 나타난다. 가난하지만 정직한 화물기사(정웅인)의 자살시도 사건에 조태오와 그의 심복 최상무(유해진)가 개입된 것을 알게 된 서도철은 모두가 말리는 '이길 수 없는 싸움'에 뛰어든다.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며 '쪽팔린'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서도철에게는 물러설 수 없는 한 판 승부다.

영화는 2시간 내내 주먹질과 발길질, 숨 돌릴 틈 없이 뛰고 달리고 구르는 리얼 액션으로 관객을 유혹한다. '억' 소리가 절로 나는 종합격투기풍의 액션은, 그러나 중간 중간 끼어드는 리드미컬한 유머와 잘 버무려져 관객을 들었다놨다 한다. "기자가 새벽기도 갔다가 영빨 받아서 기사 쓰냐", "식구끼리는 방귀 냄새도 같아야 되는 거야" 등 차진 대사도 귀에 쏙쏙 꽂힌다. 류승완 감독 특유의 재기발랄함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영화 말미 조태오와 서도철이 벌이는 추격신과 격투신은 하이라이트다. 고층 건물이 밀집한 골목 사이사이에 80여대의 차량을 투입해 완성한 이 장면은 '한국형 카 스턴트의 끝판왕'이라 불릴 만하다.

마약흡입, 광란의 질주, 분을 참지 못한 사적복수 등 영화의 얼개가 되는 개개의 사건은 그동안 신문 지면을 장식했던 재벌들의 갖가지 '일탈'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영화는 허구가 아닌, 초고도 자본주의 시스템이 길러낸 비뚤어진 현실의 데자뷰처럼 느껴진다.

류승완 감독은 <베테랑>이 한국 형사물의 계보를 이으면서도 가장 차별화된 부분을 "캐스팅"이라고 꼽았다. 류 감독의 말처럼 이 영화는 사실 '황정민'이 끌고, '유아인'이 당기고, 유해진이 밀었기에 제 맛이 난다. 특히 유아인은 변신에 성공하며 선배 연기자들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2년 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류 감독을 만나 '사전 정지 작업'을 당했다는 유아인은 '악역'에 대한 나름의 소신을 밝혔다. "감독님에게 시원하게 나쁜 놈으로 그려달라 요청했어요. 정의의 사도 역을 해야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죠. 악역을 잘 하면 정의로운 메시지를 더 잘 전달할 수 있다고 봤어요." 유아인이 분석한 '조태오'는 '철없는 악역'이다. 그는 "유아인 다운 악역이었으면 했어요. 진짜 철이 없고 생각이 없는, 그래서 더 무섭고 더 악독한. 돈과 권력이라는 온실 속에서 잘못 길러진 화초 같은 존재죠"라고 말했다.

스물아홉 나이가 무색하게 유아인은 캐릭터에 대한 스스로의 분석을 감독의 지시보다 더 앞세우는 '뚝심'도 내보였다. <밀회> 때보다 살을 빼고 오라는 감독의 말을 어기고 되레 5㎏을 찌워 촬영에 임했다. "감독님은 악역 느낌상 날이 선 날카로움을 원하셨던 듯해요. 하지만 제가 지금까지 미디어에서 접한 재벌 2·3세는 다들 살이 도톰하고, 뺀질뺀질한 느낌이란 말이죠. 살찌운 제가 화면에 그렇게 비치지 않던가요?" 또래 배우들이 가볍고 밝은 역할을 주로 맡는 것과 달리 계속해서 조금은 무거운 캐릭터로 승부수를 던지고 있는 유아인. 그의 선택은 이번 영화에서 빛을 발한다.

세 번이나 개봉일을 변경한 <베테랑>은 결국 200억짜리 대작 <암살>, 흥행불패인 톰 크루즈 주연의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과 여름 성수기 시장을 놓고 격전을 벌이게 됐다. 땅콩 회항, 라면 상무, 신문지 회장까지 재벌의 온갖 갑질에 공분하기조차 지친 관객들에겐 <베테랑>이 선사하는 '유쾌·상쾌·통쾌'한 카타르시스가 여름철 소나기보다 반가울 수 있다. 8월5일 개봉.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사진 퍼스트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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