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지옥화' 이상우 감독 "제한상영가 3번, 개봉만으로 행복"

김지혜 기자 2014. 11. 5.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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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funE | 김지혜 기자] "13편의 영화, 6편의 개봉작, 그리고 4년 만의 개봉…."

이상우 감독은 2008년 영화 '트로피컬 마닐라'를 통해 데뷔한 이래 총 13편의 장편영화를 만들어왔다. 김기덕, 홍상수 감독 못지 않게 단기간 영화를 빨리 그리고 많이 찍어 왔다. 그러나 그가 만든 장편 중 극장에서 정식 개봉된 영화는 6편이 고작이다.

산고 끝에 옥동자라고 했던가. 이상우 감독의 '지옥화'가 오는 6일 촬영을 시작한지 약 4년 만에 극장 개봉을 한다. 어쩌면 이상우 감독에게 산고란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심의일지도 모르겠다. '지옥화'는 지난 4월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고 상영길이 막혔다. 감독은 고민 끝에 재편집 및 재심의를 넣었고,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아 개봉을 할 수 있게 됐다.

영화감독의 보람이란 무엇일까. 작품을 구상하고 쓰고, 찍는 과정이 다는 아닐 것이다. 창작의 고통이 담긴 결과물이 비로소 관객과 만날 때 감독의 희열은 배가된다. 작품을 향한 관객의 평가가 호평이든 혹평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영화가 관객과 소통하는 즐거움 때문에 어떤 감독들은 오늘도 영화를 찍고 또 찍는다.

이상우 감독은 데뷔 이후 일관되게 인간의 본능과 욕망 그리고 죄와 구원의 문제에 대해 다뤄왔다. 그의 영화는 폭력적이고 가학적이다. 그리고 연출은 다소 거칠고 산만하다. 그의 이름을 국내외에 알린 '엄마는 창녀다'와 '아버지는 개다'로 이어진 비뚤어진 가족 시리즈는 단적인 예다.

신작에서도 특유의 파격적인 소재와 이야기는 계속된다. '지옥화'는 여신도와의 부적절한 관계로 인해 절에서 쫓겨난 파계승이 필리핀으로 도피해 겪게 되는 험난한 여정을 그린 작품. 지난해 모스크바국제영화제 메인 경쟁 부문에 진출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제한상영가 판정을 딛고 관객과의 만남을 앞둔 이상우 감독을 만나 '지옥화'에 대한 뒷이야기와 그의 작품세계, 연출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Q. 2011년에 촬영한 '지옥화'가 무려 4년 만에 개봉한다. 소회가 남다를 것 같다.

A. 촬영은 4년 전에 시작했고 2012년 초에 끝냈다. 내가 찍었던 영화 중 개봉까지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 영화다. 작년 5월 개봉 예정이었는데 당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경황이 없었다. 게다가 올 봄 제한상영가 판정까지 받아 본의 아니게 개봉이 미뤄졌다. 무엇보다 배우들에게 미안하다. 여주인공인 차승민은 23살에 이 영화를 촬영해 27살이 돼서야 극장에서 보게 된 셈이다.

Q. 매 작품 개봉할 때마다 '심의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번 작품 역시 처음엔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았다.

A. 데뷔작 '트로피컬 마닐라'와 '아버지는 개다'에 이은 세 번째 제한상영가 판정이었다. 영화의 소재와 줄거리상 섹스신이 많이 등장하고, 보는 사람에 따라 노출 수위가 세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Q. 어떤 장면이 문제가 된 것인가?

A. 한마디로 표현 수위가 세다는 거다.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고 영등위에 어떤 장면이 문제인지 정확히 얘기해달라고 했다. 시체와의 섹스 장면을 이야기하더라. 그래서 그것을 잘라냈다. 지금 영화에 들어가 있는 섹스신 보다 더 표현이 센 장면도 있었는데 그건 미리 빼고 심의를 넣었다.

Q. 세 편의 영화로 영등위에 삼진을 당한 셈인데 우리나라 등급 심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A. 정확한 기준이나 잣대가 없다고 생각한다. 폭력이나 노출이 문제가 된다면 동등한 기준으로 등급을 매겨야한다. 3대 국제영화제에서 명성을 떨친 몇몇 감독의 영화에도 폭력적 섹스 묘사, 성기 노출 등이 빈번하다. 그러나 그들의 작품은 개봉까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 영화 역시 영화적 표현으로 섹스를 묘사할 뿐이다. 억울하고 답답한 측면이 많다.

Q. 감독이 완성된 창작물에 가위질하는 심정이 오죽하겠나 싶다. 그럼에도 제한상영가보단 가위질이 낫다는 생각인가?

A. 기분이 매우 더럽다. 데뷔작 '트로피컬 마닐라'의 경우 수많은 장면을 모자이크 처리 해야 했다. 영화가 되게 흉해진다. 하지만 가위질로 영화가 걸레가 되더라도 어떻게든 개봉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만들었으니 관객에게 보이고, 소통하고자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마음이 아프지만, 결단을 내린 후 영등위가 지적한 장면들을 과감하게 편집했다.

Q. '지옥화' 이야기를 해보자. 신상옥 감독의 작품 '지옥화'와 똑같은 제목이다.

A. 사실은 '지옥의 유방'이라는 제목으로 갈까 마지막까지 고민했다. 그러나 제목으로 장난친다는 인식을 줄 수 있어 우아한 제목을 택했다. 신상옥 감독님의 '지옥화'(地獄花)는 '지옥의 꽃'이라는 뜻이고, 내 영화는 '지옥의 불'(地獄火)이라는 뜻이다. 제목 그대로 '죄를 지으면 불구덩이에 떨어진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Q. 실화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고 들었다.

A. 내 영화 대부분이 그렇다. 신문 사회면의 사건, 사고에서 영화의 소재를 찾는 경우가 많다. '지옥화'의 경우 신문에서 성폭행한 스님의 이야기를 보고 착안했다. 영화의 종교적 에피소드는 과거 필리핀에 있을 때 실제로 많이 봐왔던 풍경이다. 두 가지를 섞어서 이야기를 발전시켜 나갔다.

Q. 주요 배경이 필리핀이다. 적은 예산에도 굳이 해외 로케이션을 감행한 이유가 있었나?

A. 과거 필리핀에 몇 년 살기도 해 언젠가 그곳에서 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데뷔작 '트로피컬 마닐라'도 그곳에서 찍었다. 필리핀 사회가 워낙 불안정 하다 보니 관광객을 상대로 한 사건, 사고가 자주 일어난다. 또 한국인들이 포교 활동을 많이 하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 영화로 다뤄야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Q. 기독교와 불교에 대한 부정적 묘사가 눈에 띄더라. 종교에 대한 불신이 있나?

A. '지옥화'는 본능과 욕망으로 비뚤어진 인간의 모습을 통해 업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영화다. 그 인간이 스님이었던 것 뿐이다. 종교에 대한 불신은 없다. 게다가 어머니는 독실한 불교 신자시다. 기독교 묘사의 경우 실제로 필리핀에 머물 때 그런 사람들은 많이 봤기에 담아낸 것이다. 영화에 묘사한 신자들처럼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신앙에 의지하는 사람도 있다.

Q. 영화가 일관되게 세고 자극적이란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A. 인간의 본능과 욕망에 대해 관심이 많다. 또 영화제에 진출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자극적이고 세게 찍게 되는 것도 있다. 수상 타이틀이 있어야 국내 개봉도 수월해지고, 관객들에게도 인식이 잘되다보니...궁극적으로 난 영화로 사회적 메시지를 줘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개인의 욕망과 상처에 집중한다.

Q. 총제작비가 6,700만 원이다. 해외 로케이션도 있었는데 초저예산으로 영화를 완성해냈다.

A. 저예산으로 찍는 것이 익숙해져 있다 보니, 큰 어려움 없이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배우 게런티의 경우 주연 배우들은 잘 못 챙겨줘도 조연 배우들은 다른 독립 영화보다 많이 준다. 주인공의 경우 필모그래피에 큰 이력이 되니까 괜찮은데, 조연 배우들은 주인공 타이틀도 없이 힘들게 연기하는 것이니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해줘야 한다는 주의다. '지옥화'는 주연 배우들에게도 개런티를 줬다. 워낙 고생을 많이 한 작품이라 더 많이 주지 못해 미안하다.

Q. 주연 배우 원태희, 차승민이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를 해줬다. 어떻게 발굴한 배우들인가?

A. 오디션을 통해 발탁했다. 두 분 다 성실한 연기를 해줬다. 차승민 씨의 경우 오디션에 지원한 500명의 여배우 중에 찾아낸 보석이다. 전주영화제 때 차승민 씨를 캐스팅한 이유로 "가슴이 작아서"라고 얘기했다가 웃음바다가 됐는데 사실이다. 내 영화가 노출이 많다보니 섹스신, 특히 여배우의 몸에만 관심을 갖는 관객들이 많다. 그런 게 싫더라. 배우의 몸보다는 캐릭터와 연기를 봐주기를 바랬다. 차승민은 파이팅이 좋은 배우라 과격한 섹스신도 거침없이 소화해냈다. 촬영하고 나서 온 몸이 멍투성이가 되어도 아픈 줄 모르고 연기하더라. 너무 고생시킨 것 같아 미안하다.

Q. 어떻게 영화감독이 됐나? 파란만장한 스토리가 있다고 들었다.

A. 어릴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다. 그러나 공부를 통해 4수를 했다. 미국으로 유학가 UC버클리대학교 영화과에 입학했다. 미국에서 7년반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비를 벌었다.

Q. 김기덕 감독의 연출부 생활도 했다고 들었다. 솔직히 말해 작품을 보면서 김기덕 감독 초기작 색깔이 많이 난다는 생각을 했다.

A. 대학을 휴학하고 나서 영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신승수 감독을 비롯한 여러 감독님의 연출부 생활을 했다. 김기덕 감독님 연출부에도 들어가 '시간', '숨' 두 편을 작업했다. 이후 상업영화로 입봉 하려고 했는데 투자가 안됐다. 그래서 2007년부터 독립영화 쪽으로 눈을 돌렸다.

김기덕 감독님 연출부 기간은 매우 짧았다. 작품적으로 영향받은 것은 크게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감독님은 이장호 감독님이다. 고등학교때 무작정 그 분 영화사에 찾아가 "영화하고 싶다"고 떼쓴 적도 있다. 몇해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만나 얘기했더니 "네가 그 고등학생이냐"고 하시더라.

Q. 상업영화로 쓴 시나리오들은 어떤 소재를 다루고 있나?

A. 내가 진짜 관심 있는 장르는 '타이타닉'이나 '사랑과 영혼' 같은 멜로다. 실제로 그런 소재의 시나리오를 많이 썼는데 투자가 안됐다. 아시다시피 상업영화를 찍으려면 돈이 많이 든다. 어쩔 수 없이 내 돈으로 찍을 수 있는 독립영화부터 시작하게 된 것이다.

Q. 영화 대부분을 자비로 찍었다고 들었다.

A. 맞다. 일부 후원금을 받을 때도 있었지만 13편의 영화 중 11편을 자비로 찍었다. 다행히 집안이 유복한 편이다. 아버지의 지원이 있었기에 찍고 싶은 영화를 찍을 수 있었다. 지금도 감사한 일이다.

Q. 대한민국에서 독립영화 감독으로 산다는 건 어떤 것인가?

A. 시사회를 할 때 언론의 관심을 많이 받지 못한다. 가장 씁쓸할때는 관객의 무관심과 직면할 때다. '트로피컬 마닐라'를 발표하고 인천의 한 극장에서 GV(관객과의 대화)를 한 적 있는데 그때 관객 1명밖에 오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해서 영화를 찍어야 하나 싶더라. 10편 넘게 영화를 찍으면서 욕도 많이 먹었지만, 내 영화를 좋아해 주는 팬들도 꽤 생겼다. 그분들이 큰 힘이 된다.

Q. 이상우의 영화에 열광하는 팬들은 어떤 점에 매료됐다고 생각하나?

A. 소위 말해 잰척하지 않아 좋다고 하더라. 또 내가 말을 좀 거칠게 하는 편인데 GV나 강연을 보고 팬이 됐다는 사람도 꽤 있더라.

Q. 자극적인 소재와 연출 때문에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는 안티도 많은 편이다.

A. 나는 그것조차 좋다. 악플보다 더 싫은 게 무플이다. 어차피 내 작품은 관객 100명 중 1명을 타겟으로 하는 영화다. 모든 사람이 환영하고 즐길 수 있는 영화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칭찬이든 욕이든 한다는 건 영화를 봐줬다는 것이니 의미 있다.

Q. 이상우에게 있어 영화를 만든다는 것의 보람은 무엇인가?

A. 영화 '바비'가 이탈리아의 한 영화제에 초청돼 상영했는데 기립 박수를 몇 차례나 받았다. 그리고 만장일치로 대상을 받았다. 그때 '울림을 주는 영화는 통하는구나' 싶더라. 예전엔 센 영화에 대한 격렬한 반응을 좋아했는데 요즘은 울림을 주는 좋은 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Q. 상업영화도 준비 중이라고 들었다.

A. '조선 성형의 꽃'이라는 제목의 사극으로 조선 최초의 성형외과 의사를 다룬 이야기다. 영진위의 투자도 확정됐고, 1차 각색고가 나온 상태다. 많은 관객이 볼 수 있게 15세 관람가로 맞춰서 만들 생각이다. 어떤 이들은 '이상우가 변한거 아니야'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내 색깔을 고수하겠다는 고집은 없다. 대다수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화도 만들어 보고 싶다. 기대해달라.

ebada@sbs.co.kr

<사진 = 김현철 기자khc21@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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