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워도 힘들어도 늘 웃던 '바보 권리세' 영원히 안녕(종합)

김예나 2014. 9. 9.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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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포트=김예나 기자] 권리세는 항상 미소 짓고 있었다. 무대 위에서도, 아래서도 한결 같은 얼굴이었다. 때로는 지치고 힘들 때도, 가족들과 떨어져 속상하고 외로워도 일단 웃었다. 결국 마지막까지 그랬다.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권리세는 영정사진으로 또 다시 사람들에게 환한 웃음을 보였다. 그렇게 영원한 안녕을 전했다.

그룹 레이디스코드 멤버 리세(권리세)가 9일 오전 가족과 친구들,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기독교식으로 치러진 발인식에는 리세가 편히 잠들기 바라는 이들이 참석해 연신 눈물을 쏟았다. 리세의 소속그룹 레이디스코드로 활동했던 애슐리 주니 소정도 함께 했다. 소정의 경우 사고 부상으로 지난 5일 은비의 발인식에는 미처 참석하지 못했던 터라 더욱 힘겨워 보였다. 애슐리와 주니는 나흘 만에 또 다시 멤버의 장례식을 치르며 감당하기 슬픔을 견뎌내고 있었다.

리세는 지난 3일 교통사고로 의식을 잃었다. 10시간 넘는 대수술과 치료의 고통을 버텨내지 못한 리세는 리세는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1992년생의 리세는 향년 23세로 세상과 이별했다. 16세 아빠를 잃었던 리세는 유독 아빠에 대한 사랑이 컸다. 아빠의 응원 덕분에 레이디스코드로 데뷔할 수 있었다고 믿었던 리세였다.

"16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 내가 가수가 되는 것을 지지해준 사람이었다. 레이디스코드로 활동하는 걸 보셨다면 아버지가 가장 좋아했을 것 같다. (내가)여기까지 올라오게 한 계기였던 것 같다."

가수에 대한 꿈으로 권리세는 홀로 한국을 찾았다. 엄마와 언니를 비롯한 가족과 친척 및 친구들은 모두 일본에 살았다. 어린 나이에 가족과 떨어져 분명 외로웠을 권리세지만, 가수에 대한 꿈을 향해 꾹 참고 견뎠다. 권리세는 레이디스코드 멤버들에게 의지하며 데뷔를 준비했다. 권리세는 2013년 3월 레이디스코드로 데뷔했다.

이후 권리세는 레이디스코드 멤버들과 함께 TV리포트와 종종 만남을 가졌다. 그 때마다 그룹에 대한 자신감, 멤버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얼굴에는 한시도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권리세는 데뷔 당시 "데뷔 전 회사를 옮기며 멤버들을 새로 만났다. 만나자마자 모두가 정말 잘해줘서 신기했다. 어른들에게 사람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많이 들었는데, 우리 멤버들은 천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합이 잘되는 우리 그룹의 팀워크는 정말 최상이다"고 소개했다.

레이디스코드에 대한 사랑은 권리세의 행보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그룹 데뷔 전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으로 유명세를 얻은 권리세는 레이디스코드의 '얼굴'이었다. '권리세가 이끄는 걸그룹'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이는 곧 권리세에게는 막중한 책임감으로 직결됐다. 권리세는 그룹 활동은 물론 개별 활동도 병행했다. 결코 솔로에 대한 욕심이 아니었다. 그룹을 더 알리기 위해서, 멤버들에게 더 큰 힘을 북돋아주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나섰다.

2013년 '스타 다이빙 쇼 스플래시'에 출전했을 때 권리세의 목표는 오직 하나였다. "레이디스코드를 알리기 위해서"였다. 다이빙 연습으로 온몸에 근육통을 호소하면서도 멤버들이 걱정할까봐 오히려 웃었다. 안부를 묻자 권리세는 먼저 배시시 웃으며 연신 "괜찮다"고 답했다. 그런 모습에 멤버들은 "정말 바보 같다. 권리세는 너무 착해서 바보 언니로 불린다. 레이디스코드를 위해서 뭐든 다 한다. 마치 엄마 혹은 할머니처럼 우리에게 그런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고맙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어 미안하다"고 울컥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에도 권리세는 개인의 성공 대신 레이디스코드의 성공에 초점을 맞춰 활동했다. 올해 초 권리세는 "레이디스코드는 새로운 그룹이었다. 지금까지 다른 그룹이 보여주지 못했던 색깔을 살려냈다. 2014년에는 레이디스코드라는 이름을 더 많이 알리고 싶다. 3~4장의 앨범을 내고 확실히 사람들한테 그룹의 존재를 인식시키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하지만 권리세는 2014년 두 장의 레이디스코드 앨범을 발매했다. 더 이상 애슐리 권리세 고은비 이소정 주니로 이뤄진 레이디스코드 앨범은 들을 수 없게 됐다. 사고 며칠 전 권리세는 아빠에 대한 각별한 마음을 전했다. "하늘에 계시는 우리 아버지, 저는 건강하게 열심히 잘 살고 있다고 전하고 싶다"던 권리세는 결국 그 아빠, 함께 교통사고를 당한 고은비가 있는 곳으로 떠났다.

9일 오전 故 권리세의 발인식은 먼저 떠난 동생 고은비와 같은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한국에서 화장장을 치른 고인의 유해는 가족, 친지, 친구들이 있는 일본으로 건너가 한 번의 장례를 더 치룬 후 현지에 안치될 예정이다.

김예나 기자 yeah@tvreport.co.kr/사진=TV리포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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