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일지 일부 과장에 침소붕대로 독립운동 폄훼"

박동미기자 2014. 8. 6.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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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구 '김구 청문회' 출간.. 백범 전문가 도진순 '반박'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성역화된 인물은 아마도 백범 김구(1876∼1949·사진)가 아닐까. 백범에 대한 연구는 많지만, 대중들은 '백범일지'라는 자서전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승만, 박정희에 대한 '공과(功過)' 논란을 거쳐 환상이 상당 부분 깨어졌다. 그러나 백범은 보수·진보를 떠나 여전히 손댈 수 없는 '신화' 그 자체다. 이러한 가운데 '김구 청문회'라는 다소 '쎈' 제목의 백범 관련 책이 나와 주목된다. 그 동안 김구의 정치적 한계에 대한 객관적 연구들은 있었지만, 대중적인 '비판 도서'는 처음이다. 저자인 김상구 씨는 시민운동가로서 '이승만의 숨겨진 친일 행적' 출간 등 현대사 인물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제시해왔다. 주요내용을 살펴보고, 백범 연구 권위자인 도진순(사학) 창원대 교수의 반박을 함께 싣는다.

'김구 청문회(매직하우스)'는 기본적으로 '백범일지'를 역사적 사료로서 가치가 매우 떨어진다고 판단한다. 저자는 "자서전은 본래 과장될 수밖에 없다. 90% 이상 거짓으로 본다"며 "백범을 우상화하면서 백범일지의 내용이 모두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진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저자는 우선 '백범일지'가 춘원 이광수(1892∼1950)에 의해 각색된 것부터 문제를 제기한다. 그는 "한문식 표현을 사용한 '도산일기' 등과 달리 '백범일지'는 출간되자마자 쉽고 간결한 문체로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나중에 공개된 '백범일지 친필본'과 너무 차이가 많다. 단순 교열이나 윤문 정도가 아니라 재구성본이라고 해야 맞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 국민의 교양서로 자리잡은 '백범일지'의 일등공신이 결국 친일파 춘원이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일지(逸志)'라는 표현도 지적한다. 저자는 "'백범일지'를 사전적으로 풀면 '백범 자신의 훌륭하고 높은 지조를 쓴 기록물'이 된다"며 "스스로 얼굴에 금칠을 하고 있으니 글을 쓴 의도와 진정성 여부에도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유명한 '쓰치다 조스케(土田壞亮) 사건'의 진상에 대해서도 되짚는다. 이는 1896년 3월 9일 치하포나루에서 일본인 쓰치다를 죽인 사건으로 백범 김구의 업적을 꼽을 때 늘 첫머리에 등장한다. 저자는 "당시 김구를 심문했던 내용과 언론에는 쓰치다가 일본인 혹은 일본상인으로 나오지만, 백범일지는 일본 육군 중위라고 해 마치 국모살해의 원수를 갚은 것으로 포장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에 대해서 여전히 대다수 국민들은 일본군인으로 알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이밖에, 책은 백범이 종교를 믿음이 아닌 보신의 수단으로 삼았던 점, 통일론자로 인식되지만 사실은 갈지자 행보를 보이며 이승만의 '단독정부론'을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았던 점 등을 예로 들어 '김구 신화'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드러낸다.

저자는 이번 '김구 청문회'의 출간에 대해 "학계는 불편해 할 것이고, 대중들은 상실감에 휩싸일 것이다"고 밝혔다. 그는 "나 역시 피해자이다. 집필을 하며 큰 배신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쉽게 읽는 백범일지'와 '백범일지(이상 돌베개)' 주해본의 저자 도진순 창원대 교수는 '김구 청문회'의 내용과 관련 "1∼2개 사례로 침소봉대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도 교수는 국내 백범 연구 권위자로 백범학술원 연구위원을 한 바 있다. 그는 "백범이 해방정국을 제대로 읽지 못해 정치적으로 밀렸던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면서도 '친일파가 만든 독립영웅'이라는 '김구 청문회'의 주장에 대해 "작위적이고 난폭한 해석"이라고 비판했다.

도 교수에 따르면 춘원 이광수가 '백범일지'를 윤문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여기에는 윤문을 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도 존재한다.

그는 "백범은 소위 '배운 사람'은 아니었다. 초고에서 자식들의 나이나 결혼 연도 등이 사실과 다르게 기록되어 있고 문장도 어색한 것이 많다"며 "그대로 출간되면 백범에게 모욕이 될 수 밖에 없어서 손을 본 것이지,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근대교육을 받아 정통 한학에 밝지 않았던 이광수가 윤문 과정에서 어느 정도 오류를 범한 것은 사실이다"고 덧붙였다.

도 교수는 '일지(逸志)'라는 제목에 대해서는 "삼국지(三國志)와 마찬가지로 '뜻 지(志)'자를 썼는데, 이는 기록한다는 '지(誌)'와 같은 의미이다. 스스로 추켜세웠다는 것은 억지 풀이"라고 말했다.

'쓰치다 사건'에 대해서는 도 교수가 이미 1997년 '백범일지' 역주본을 낼 때 밝혔던 것임을 강조했다. 그는 이 책 98쪽에서 "일본 외무성 자료에 의하면 쓰치다(土田)는 나가사키(長崎)현 대마도 이즈하라(嚴原)항 상인으로, 1895년 10월 진남포에 도착한 후 11월 4일 황해도 황주로 가서 활동하였고, 1896년 3월 7일 진남포로 귀환하던 길이었다"는 각주를 달았다. 또한 그해 '1895∼96 김구의 연중 의병 활동과 치하포 사건(1997)'이라는 논문도 발표했다.

도 교수는 '김구 신화'를 깨트리려는 책의 취지에 대해서는 공감했다. 그는 "공을 앞세워 모든 걸 눈 감아주는 한국 사회 우상만들기는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한다. 백범뿐 아니라 다른 인물의 평전도 보면 너무 추앙만 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김신이 5·16쿠데타에 일조해 백범이 영웅이 되었다는 것은 부정했다.

도 교수는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고 눌려있던 백범에 대한 기억이 부활했다. 암살로 비극적 삶을 마쳤고, 이승만과 대조적인 면이 부각됐다. 자연스럽게 영웅시하는 분위기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그는 "박정희 정권에서 이 흐름을 받아들였던 것뿐이다"고 말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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