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를 지킨다" 영화계의 독립운동 기지

2014. 3. 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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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문화'랑'] 문화공간, 그곳

(7) 서울 종로 '인디스페이스'

관객석 110석뿐인 단관극장2007년 국내 첫 독립영화관 기치정권 바뀐 뒤 문 닫았다 재개관흔들림없는 자립 구조 마련 과제

지난 14일 밤 서울 종로구에 있는 극장 '인디스페이스'에서 토론장을 방불케 하는 '관객과의 대화'가 열렸다. 다큐멘터리 영화 <탐욕의 제국> 상영 뒤 무대로 올라온 홍리경 감독과 홍세화 전 진보신당 대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피해자 박민숙씨가 절절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반도체 공정 라인마다 치명적인 위험을 뜻하는 '해골'이 즐비했는데, 안전교육 한번 제대로 못 받은 채 유산과 불임, 유방암까지 걸리게 됐어요."(박민숙씨) "우리의 무관심과 무지가 이런 뻔뻔함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이 됐던 것입니다."(홍세화 전 대표)

'삼성의 좌표: 삼성을 생각하다'를 주제로 영화의 주인공들이 안타까운 사연을 토해내고, 관객들이 공감과 위로를 건네는 자리는 1시간 넘게 이어졌다. 대기업의 치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다큐멘터리 영화가 극장 주요시간대에 상영되고, 실제 피해자들이 영화 관객들과 스스럼없이 소통하는 모습은 여느 복합상영관에서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한국 독립영화계의 첨병이자 마지막 보루 구실을 해온 국내 첫 독립영화관 '인디스페이스'에서라면 가능한 일이다.

인디스페이스는 "영화가 오락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음을 믿는" 한국 독립영화 감독과 투자·제작·배급사들이 앞서 찾는 곳이자, 마지막 순간에 기대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의 인디스페이스는 120㎡ 남짓 공간에 전체 좌석 110석뿐인 작은 단관극장. 빨간 배경의 벽에 둘러싸인 극장 내부에는 7.2×4m 크기의 스크린과 아담한 의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요즘 규모의 경쟁을 벌이는 복합상영관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 공간은 한국 독립영화계의 숙원과 염원을 안고 2007년 태어난 국내 첫 독립영화 전용관이란 소중한 의미가 담겨 있다.

2000년대 초부터 영화계는 "한국 영화의 토양이 되는 독립영화들이 제작을 마치고도 스크린과 유통망을 확보하지 못해 고사할 위기에 처했다"며 전용관의 필요성을 줄기차게 제기해왔다. 일부 예술영화 전용관이 있었지만 독립영화만을 위한 공간이 없던 시절이다. 3년 만에 당시 참여정부가 한국영화진흥종합계획에 '독립영화 전용관 확보지원'을 명시하면서 물꼬가 트였다. 4년 뒤 영화진흥위원회가 당시 명동에 있던 중앙시네마 1개 관을 독립영화 전용관으로 운영하기로 했고, 한국독립영화협회 배급지원센터한테 위탁운영을 맡기면서 인디스페이스가 태어났다.

좋은 영화를 만들고도 상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관객들과 만날 기회조차 잡지 못했던 독립영화들은 물을 만났다. 첫해 윤성호 감독의 <은하해방전선>을 시작으로 기획전과 정기상영 등을 통해 독립영화 150여편, 이듬해에는 300편이 넘는 독립영화가 관객들과 만났다. 인디스페이스 개관과 함께 존재감을 찾은 독립영화는 2년 만에 전성기를 맞는다. 특히 2009년 한국 독립영화계 전성기를 이끌었던 <워낭소리>, <낮술>, <똥파리>의 신화가 모두 인디스페이스에서 시작됐다. 당시 이충렬 감독의 <워낭소리>가 입소문을 타면서 무려 296만명을 동원하는 기록을 남겼고, 같은 해 제작비 1000만원을 들인 노영석 감독의 <낮술>(2만4000명)과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12만3000명)도 독립영화로는 믿기 어려운 흥행 기록을 쏟아냈다.

하지만 정부 산하 기관이 주도한 독립영화 전용관은 오래가지 못했다. 특히 독립영화계에 환호할 일이 많았던 2009년, 바뀐 정권이 '공모제'를 명분으로 독립영화 전용관 위탁을 다른 곳에 맡기려고 하자 인디스페이스는 휴관으로 맞섰다.

곧바로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 안정숙 전 영진위원장, 김동원 감독 등 공동대표와 영화배우 장미희, 영화평론가 정성일, 가수 하현우, 문정현 신부 등 사회·문화계 200여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해 민간 주도의 전용관 재개관에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인디스페이스는 "꼭 돌아올 거야"(We'll be back)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 지 2년 만에 서울 세종문화회관 뒤편 지금 자리에 재개관 형식으로 다시 태어났다. 첫 개관 때 '넘어지지 않겠다'던 슬로건은 '독립자존'이라는 결연한 말로 바뀌었다.

인디스페이스 좌석 뒤편에는 당시 일정 금액 이상을 보탠 이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여기에는 강수연, 안성기, 송강호, 하정우, 예지원 같은 배우들과 임권택, 임순례, 양익준 등 감독들의 이름이 있다. 대기업 영화 투자·배급사 씨제이엔터테인먼트를 비롯해 제작사, 영화마케팅사 대표, 영화잡지사, 영화평론가, 부산·전주국제영화제, 일본의 진보적 영화제작자 데라와키 겐, 배우 이제훈의 팬들까지 이름을 새겼다. '한겨레신문 박씨 부인들'처럼 무명의 영화팬들 이름도 있다.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지연 사무국장은 "개관 당시 첫 독립영화 전용관이라는 의미도 크지만, 영화인들이 권력에 좌지우지하지 않는 독립적인 전용관을 마련하기 위해 역경을 딛고 재개관을 이뤘다는 것은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인디스페이스는 독립영화 개봉을 돕는 일뿐 아니라 입장권 수익 1%를 독립영화 제작에 지원하는 단편개봉 프로젝트도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진정한 '독립자존'까지는 적지 않은 과제가 남아 있다. 무엇보다 여전히 임대료 상당 부분을 서울시 지원에 의존하고 있는 재정 문제가 큰 걸림돌이다. 현재 후원회원은 150명 남짓이다. 2007년 개관 때부터 인디스페이스를 이끌어온 이현희 프로그래머는 "시민사회단체 등이 후원으로 운영되는 것과 달리 시민들이 극장에 후원한다는 개념이 보편적이지 않아 어려움이 있다"며 "독립영화를 아끼는 이들의 지원을 기다리면서 다양한 개봉 전략과 관객 동원 이벤트 등을 통한 수익사업도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우 유지태가 박찬경 감독의 <만신> 상영을 위해 전체 대관하거나, 이전에 강수연·예지원 등도 같은 방식으로 '측면 지원'해주었던 것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인디스페이스는 여전히 '홀로 자립하는 독립영화 세상'을 꿈꾸고 있다. 대구, 울산, 청주 등에서 민간 독립영화 전용관 설립 움직임이 일어나는 것은 그래서 더 반갑다. 이현희 프로그래머는 "인디스페이스가 셋방살이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공간을 확보하는 게 한국 독립영화 전체 구조에 안정감을 줄 수 있다"며 "인디스페이스가 홀로 서려는 노력과 함께 민간 독립영화 전용관 확대에 앞장서는 '맏형'이자 '허브' 구실을 하겠다"고 말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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