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연, "'집으로 가는 길', 범죄자 미화하는 영화라고요?" [인터뷰]

김희선 2013. 12. 11.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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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데일리 김희선 기자] 프랑스 파리 남쪽의 오를리 공항. 커다란 트렁크를 찾아 카트를 미는 정연. 오랜 비행과 초조함으로 눈이 시뻘겋게 충혈돼 있다. 불안하고 두려움 서린 그의 얼굴이 화면을 메우는 순간 들려오는 한 마디, "마담!"

그렇게 영화는 시작한다. '집으로 가는 길(감독 방은진 제작 CJ엔터테인먼트, 다세포클럽)'은 2004년 프랑스 오를리 공항에서 마약 운반범으로 오인돼 마르티니크 섬 감옥에 갇힌 주부 정연(전도연)과 아내를 구하기 위해 애타게 세상에 호소하는 남편 종배(고수)의 실화를 그린다.

외딴 섬 감옥에 갇힌 평범한 주부 정연의 가슴 먹먹한 여정을 그려낸 전도연을 9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시사회 후 몰려드는 호평에 "고맙다"며 입을 연 그는 "쉽지 않은 촬영이었다.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3주, 프랑스 파리에 1달 머물렀다. 시간과 장소의 제약 아래 쫓기듯 촬영하면서 감정 신도 놓치지 말아야 해서 힘들었다"고 해외 로케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극 중 정연이 현행범으로 체포되는 프랑스 공항 신은 영화의 시작이자 더없이 중요한 장면이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사전 로케이션을 통해 화물 수취대와 입국심사대 등에서 촬영하기로 했지만,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그곳들을 찍을 수 없다고 막아선 것. 그는 "하루 안에 찍어야 했던 곳을 다 막는 바람에 비슷한 장소를 찾아 찍고, 그동안 또 찾아다니고, 비행기가 들어와 승객들이 내리면 피하기를 반복했다"고 설명한다.

"눈이 충혈됐다고? 핏발이 안 터진 게 다행일 정도였다. 다들 예민하고 신경이 곤두선 상황에서 밥도 못 먹고 촬영했지만, 마지막 한 컷은 끝내 못 찍고 나왔다. 한 컷만 찍으면 되는데 약속된 시간 30분 전부터 나가라고 하더라. 입국심사대 앞에 선 엑스트라들이 어떡하나 우왕좌왕하는 사이, 그쪽에서 '다 연행할 거야'라고 하니까 순식간에 다들 사라졌다(웃음). 막막하고 억울하고 화도 났지만, 방법이 없더라."

2011년 영화 '카운트다운' 이후 2년 만이다. 전도연은 의욕에 불탔지만 쉽지 않았다. 도미니카 공화국의 아름다운 풍경을 느낄 여력도 없었다. 이국적 정취와 선명한 원색이 스크린을 가득 채우지만, 오히려 그 안에 고립된 정연의 외로움만 두드러질 뿐이다. 그는 카리브 해가 마치 달력을 보는 듯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고 회상하며 "모래가 정말 곱더라. 옷 갈아입고 머리 하느라 잠깐 있었던 리조트도 정말 좋았고. 하지만 그런 곳에서 발만 닦고 왔다. 다시 가고 싶은데 너무 멀다. 지금은 엄두가 나질 않고 한 십 년쯤 뒤에?"라며 웃어 보인다.

오직 생활비를 벌기 위해 남미 가이아나에서 프랑스로 원석을 운반하려던 정연은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지구 반대편 낯선 땅에 갇힌다. 사흘 만에 돌아온다던 그는 사랑하는 가족과 떨어진 채 두려움 속에서 처절하고 악몽 같은 나날을 보낸다.

"결혼하고 딸을 낳았다고 해서 현실적으로 연기에 반영했나 하면 그렇지 않았다. 개인적인 감정이 반영되기엔 이야기 자체가 드라마틱했다. 거기에 인물까지 드라마틱할 필요가 없었다. 옆집 아줌마 같은 현실적인 정연을 보여주고 싶었고, 마음이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될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전도연은 정연이 됐다. 부스스한 머리와 마른 입술, 무릎 나온 바지 차림의 아내이자 엄마. 프랑스 경찰에게 "집에서 살림하는 여자예요, 딸도 있고"라고 외친 그대로,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여인의 모습을 그는 더없이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영화 속 악몽 같은 드라마틱한 상황에서 정연은 오히려 덤덤하다. 창밖을 멍하니 응시하거나 바다를 공허하게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그래서 더 처연하다. 같이 장 보는 종배를 힐끗 쳐다보며 함께임을 확인하는 순간, 대사관 사람을 경계하는 눈길, 점점 희망을 놓아가는 텅 빈 표정 등 전도연은 눈빛으로 정연의 깊이를 더했고, 몸의 힘을 뺀 그의 연기는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바닷가 앞이나 감옥에서 창살 밖을 보면서 '내가 악몽을 꾸고 있나' 싶은 거다. 어디를 봐도 믿기 힘든 현실이니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겠지. 그렇게 비현실적인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그래, 나 죄인이에요'의 심정이 되기까지 믿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을 거다. 누군가 옆에서 죽을 수도 있는데 피해야만 하는 현실도 끔찍하고. 나 역시 촬영하면서 취조실의 인권유린에 놀랐으니까."

하지만 영화의 모티브가 된 '장미정 사건'이 알려지면서 논란도 있다. '알았든 몰랐든 마약을 운반하다 걸린 현행범을 미화하는 영화'라는 비난이 일부에서 들려오는 것.

"물론 마약을 운반하다 걸린 사건에서 출발했지만, 이 영화는 집으로 가고 싶은 여자와 아내를 데려오려는 남편, 그리고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이야기다. '나는 무죄다'가 아니라 '모르고 했지만, 죗값은 달게 받겠다. 다만 한국 감옥으로 보내달라'고 주장하지 않나. 마약을 운반하다 걸린 건 사실이나 그도 속았기 때문에 분명히 억울할 거다. 막막한 현실 속에서 정연은 적어도 무언가 소통할 수 있는 곳에 가길 원했던 거다. 결국, 누가 잘못했고 누가 피해자임을 말하려던 게 아니라 그저 가족에 관한 이야기다."

그래서인지 감독도 배우도 실제 사건의 주인공인 장미정 씨가 이 영화를 계기로 다시 화제에 오르는 것을 염려한다. 전도연은 "그분에겐 이 사건이 다시 들춰지는 게 상처일 거다. 얼마 전 VIP 시사회에서 인사를 나눴다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상처가 아니라 치유가 됐다. 고생하셨다'고 말해주더라"고 전했다.

오랜 수감생활과 영양실조로 점점 달라지는 전도연의 외모는 영화의 몰입도를 더한다. 꾸미긴커녕 점점 야위고 머리카락이 빠져나가는 상태를 이토록 실감 나게 표현하는 여배우라니. 그는 눈물이 맺히기도 전에 빨개지는 코, 메마른 입술도 모자라 선명한 주름과 얼굴 근육을 다해 연기한다. 4일 언론시사회에서 "점점 초췌해지는 전도연 선배의 얼굴이 보기 싫어 피해 다녔다"고 한 고수의 반응이 이해될 정도다.

그러나 현실의 전도연은 또 생기 넘친다. "외모에 대한 부담은 다행히 없다. 내 모습이 계속 이래야 한다거나, 이런 건 이렇게 가려야 한다는 부담은 없다. 자연스러운 모습이 좋다"고 말하는 전도연은 그래서일까, 옛 모습 그대로 조금의 주름만 더해졌을 뿐이다. 광고모델로 활동하다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으로 데뷔한 그의 연기를 보는 게 20년이 넘었단 사실이 놀라울 만큼.

11일 개봉하는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은 비현실적인 상황 속에서 소중함을 몰랐던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여정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존재만으로 힘이 되는 가족의 소중함, 그리고 이 절절한 울림은 전도연의 연기로 한결 크게 다가온다.

"사건에서 출발하지만 결국은 사건 안에 있는 가족을 얘기하는 영화다. 시사회 후 아무래도 여자들이 공감을 많이 표하더라. 가족이나 연인과 영화를 보고 나면 마음이 훈훈해져서 옆에 있는 사람을 살뜰하게 챙기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티브이데일리 김희선 기자 news@tvdaily.co.kr / 사진=신정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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