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石 선장(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됐던 석해균 선장)이 겪었을 고통, 누구보다 잘 알죠"

변희원 기자 2013. 10. 24.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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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 납치 실화 영화 '캡틴 필립스' 실제 주인공 필립스 선장 인터뷰

소말리아 인근 해상에서 리처드 필립스 선장의 화물선 앨라배마호에 소말리아인 무세가 이끄는 무장 해적 넷이 접근한다. 필립스 선장이 꾀를 부려 1차 공격을 피하지만, 2차 공격에 배는 점령당한다. 선원들을 대피시키고 해적들과 대치한 필립스 선장은 이들에게 3만달러를 내주고 보내려고 하지만, 수천만달러를 노리는 해적들은 그를 데리고 구명보트에 올라탄다.

2009년 4월, 화물선 머스크 앨라배마호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이다. 당시 미국 역사상 200년 만에 일어난 해적 납치 사건으로 주목을 받았고, 언론은 필립스 선장 구출 작전을 거의 실시간으로 보도했다. 이미 과정과 결말을 다 아는 이 사건을 '본 시리즈'와 '블러디 선데이'의 폴 그린그래스 감독이 영화 '캡틴 필립스'(23일 개봉)로 옮겼다. 서늘한 긴장감이 흐르는 화면 아래 심장 고동소리를 배경음으로 깔아놓은 것 같은 영화는 실제 사건의 재연 그 이상이다.

영화의 긴장감은 필립스 선장이 해적들과 구명보트에 고립되기 전 최고조에 다다른다. 해적의 모터보트가 작은 섬 크기만 한 화물선을 쫓는 것을 필립스가 망원경으로 보고, 그 모습을 또 무세가 망원경으로 보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은 여느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을 능가한다. 없어도 될 장면이 단 하나도 없이, 영화는 두 시간을 아주 경제적·효율적으로 활용한다. 본지와 전화로 인터뷰한 실제 사건의 주인공 리처드 필립스 선장은 "5일간 일어난 사건의 과정을 빼먹지 않으면서도 우리가 느꼈을 법한 공포와 긴장을 두 시간 안에 압축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고 했다.

외부인의 침입에 맞서는 미국인을 그리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이면서도 딱히 필립스 선장을 영웅으로, 해적들을 악당으로 그려내지도 않는다. 무세가 "나에겐 보스(boss)가 있다"고 하자, 캡틴 필립스는 "우리 모두에겐 보스가 있다"고 한다. 모두 살아가기 위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할 뿐이다. "다른 일을 해보라"는 필립스 선장의 말에 무세는 "원양어선이 우리 해역에서 생선을 다 잡아가서 우린 일을 할 수 없다"고 대꾸한다. 영화는 소말리아 해적이 생겨난 경제·정치적 맥락을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이들에게 섣불리 동정이나 비난을 가하지 않는 건조한 태도를 유지한다. 하지만 필립스 선장은 "구명보트 안에서 있었던 일은 현실이 영화보다 훨씬 더 끔찍했다. 해적들은 ('캐리비언의 해적'에 나온) 조니 뎁이 아니었으니까"라고 했다. "그들은 저를 묶어놓기도 했고, 지나가면서 때리기도 했어요. 끝이 안 좋을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에 그 안에서 탈출할 생각에 골몰했죠. 최근 한국의 석해균 선장 이야기를 알게 됐는데, 그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지 상상이 갑니다."

미국 네이비실에게 해적들이 제압되는 장면은 싱겁다. 애당초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필립스 선장은 오히려 "구출 작전보다 구출된 후 톰 행크스가 무너지듯 우는 장면이 더 인상적이었다. 아내는 그 장면을 보고서 자리에서 일어나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구출된 후 저는 오전 다섯 시에 일어나 갑판을 걷다가 눈물을 쏟았어요.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난 것일까' '내가 뭘 잘못한 걸까' 그리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떠올랐죠. 상담사가 맘껏 울라더군요. 다음 날도 오전 다섯 시에 깼는데 45분간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렀어요. 그 이후에는 한 번도 안 울고 잘 살고 있어요."

톰 행크스는 화면에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신뢰와 품위를 보여주는 배우 중 하나다. 비슷한 역을 맡는 것 같으면서도 그는 매번 캐릭터에 스토리를 부여한다. 필립스 선장은 행크스가 자신의 역할을 맡은 데 대해 "그와 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보통 사람이라는 것이다. 우리 집에 세 번 찾아왔는데, 자기 자신이 아니라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고 했다.

☞미국판(版) '아덴만의 여명' 같은 사건. 2009년 4월 8일 선장과 승무원 등 20명을 태우고 오만에서 케냐 몸바사로 향하던 화물선 머스크 앨라배마호가 소말리아 아덴만에서 해적 네 명의 공격을 받아 필립스 선장이 납치됐다. 사건은 12일 미국 네이비실 저격수들이 구명보트에 있던 해적 세 명을 사살하며 끝났다. 생존자인 무세는 미국 법원에서 33년9개월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필립스 선장은 사건 이듬해부터 다시 배를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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