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 제작소] 심은지, JYP에서 작곡가로 일한다는 것

2013. 10. 1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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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이혜린 기자]JYP엔터테인먼트, 하면 떠오르는 것. 물론 수지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가요팬이라면 노래 앞에 낮게 깔리는 '제와이피'라는 박진영의 음성일 것이다. JYP의 가수, JYP의 음악, JYP의 색깔을 책임지는 단 한 사람, 박진영을 제외하고 JYP를 논하긴 어렵다. 그리고 이 '단일색'은 현재의 JYP의 브랜드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요계도 이제 '시스템'의 시대다. 대표, 프로듀서, A & R, 아트디자인 등이 모두 세분되고 있는 가운데, JYP도 그 미래를 박진영이 아닌, 시스템에서 찾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2008년에 착수한 이 작업이 지난해부터 빛을 발하고 있다. 국내 기획사로는 유일하게, 회사 내에 에이소울 퍼블리싱이라는 회사를 차리고 소속 작곡가들의 매니지먼트에 나섰는데, 이 소속 작곡가들이 전방위 인기가수의 곡 뿐만 아니라 JYP의 타이틀곡까지 책임질 수 있을만큼 훌쩍 컸다.

이는 SBS 'K팝스타'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야심차게 JYP를 택한 박지민이 왜 박진영의 곡이 아닌 다른 작곡가의 곡을 데뷔곡으로 선정했는지에 대한 답변도 된다. 박지민의 데뷔를 책임진 에이소울의 대표 작곡가 심은지는 JYP의 소속이면서 입봉은 SM의 에프엑스로 하고, 최근에는 카라에게 곡을 선사하기도 한 (국내에선 아직)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 JYP에서 소속 작곡가로 일한다는 것, 아직 대중에겐 생소할 그의 세계를 공개한다.

# 박진영과의 첫 만남

OSEN (이하 O) - JYP 안에 퍼블리싱 회사가 있다는 건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데, 어떤 곳인가요.

심은지 (이하 S) - 2008년에 퍼블리싱 회사를 만들면서 신인작곡가를 많이 뽑았어요. 물론 그 전에도 프로듀서 분이 계셨지만, JYP로 스카웃을 하는 느낌이었다면 2008년 후에는 신인작곡가를 양성하는 시스템이 된 거죠. JYP에 소속돼 많은 작업을 하지만, 다른 기획사에도 문은 열려있어요. 곡을 쓰고, 상황이 되면 다른 가수와도 작업을 하죠.

O - 언뜻 잘 그려지지 않는 시스템인데. 언제, 어떻게, JYP에 들어오시게 된 건가요.

S - 저는 2008년에 들어왔어요. 제가 연세대 작곡가를 나왔는데, 박진영 오빠도 연세대 출신이시잖아요. 어느날 학교 축제에 오신 거예요. 원래 대기실에 못들어가지만, 저는 '빽'을 이용해서 들어갔죠.(웃음) 미리 만들어둔 데모 CD가 있었는데 그걸 전달해드릴 수 있었죠.

O - 대기실을 습격하신 거군요.

S - 그런 셈이죠. 그전에도 CD를 기획사에 보내보기도 했는데, 사실 직접 드릴 수 있는 건 정말 좋은 기회잖아요. 그래서 대기실에 갔는데, 진영 오빠한테서 아우라가 막 이렇게. 너무 멋지신 거예요.

O - 흠. 정말요?(웃음)

S - 왜요.(웃음) 전 정말 팬이었거든요. 키가 180cm 조금 넘으실텐데, 저한테는 2미터가 넘어 보였어요. 벌벌 떨면서 전해드렸죠. 물론 전해드리면서도, 안들어보실 줄 알았죠. 바쁘신데 이런 CD까지 들어보실까 해서. 일단 전해드렸다는 것에 위안을 삼고 있었는데 2주 후에 갑자기 전화가 왔어요. 아침 7시에 직접 전화를 주신 거예요.

O - 직접이요? 드라마의 한 장면 같은데요.(웃음)

S - 직접 연락이 올 줄은 전혀 생각 못하고 잠결에 전화를 받았는데, '은지니? 진영 오빠야' 그러시는 거예요.

O - 어머, 점점.(웃음)

S - 하하. 제가 아는 진영 오빠는 그 분 밖에 없는데, 제 귀를 의심했죠. 그런데 마침 그때가 신인 작곡가를 뽑고 있을 때였던 거예요. 직접 신인을 발굴하는 데 관심이 많으셨나봐요. 이 곡은 어떻게 작업했는지, 직접 한 건 맞는지, 노래는 누가 했는지 이것 저것 물어보셨어요. 한번 더 테스트가 있긴 했는데 빨리 결정된 편이었죠.

O - 테스트는 뭐였어요?

S - 미션을 주셨어요. 그때 써놓은 곡 다섯 곡을 들려주시고, 이런 스타일의 곡을 만들어봐라. 그게 다 다른 스타일이었어요. 댄스, 발라드, 가사가 중요한 곡 등이 있었는데 일주일 안에 만들어보라고 하셨죠. 그래서 밤을 새서 2~3곡을 만들어갔어요. 그걸 들어보시고 오케이 해주셨어요.

O - 그때만 해도 JYP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잘 모르셨겠어요.

S - 그렇죠. 막연히 JYP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어요. 중학교때부터 워낙 팬이었거든요. 콘서트도 다 따라다니고.

# 소속은 JYP, 데뷔는 SM에서?

O - 들어가자마자 첫 작업은 뭐였나요.

S - 작업이라기보다는, 참관이었죠.(웃음) 당시 2PM이 '10점 만점에 10점'을 녹음하고 있었어요. 진영 오빠 뒤에서 작업하는 걸 지켜볼 수 있었어요. 당시 저를 포함해서 신인작곡가가 3명이었는데, 모두 뒤에 앉아서 열심히 봤죠.

O - 나머지 두분들도 비슷한 루트로 들어온건가요.

S - 다 제각각이에요. 저는 좀 특이한 경우이긴 했죠. 절차가 없이 뽑혔으니까. 그래서 회사에서 그런 말도 있었대요. '엄청난 미인인가보다.' (웃음) 물론, 나중에 저를 직접 보시고는 '아, 음악을 잘하나보다' 라고 생각하셨죠.(웃음)

O - 하하. 참관은 많은 도움이 됐나요?

S - 곡은 쓸 줄 아는데, 곡 쓸 줄 안다고 바로 데뷔하는 건 아니니까 많이 배워야했죠. 녹음, 편집, 믹스 그런걸 직접 가르쳐주시려고 매일 부르셨어요. '아침 10시까지 모여라' 하면 1분만 늦어도 엄청 혼나요. 딱 10시에 모여서 밤 늦게, 가끔은 새벽 2~3시까지 계속 뒤에 앉아서 보는 거죠.

O - 쉽진 않았겠는데요.

S - 딴 짓 하면 많이 혼나죠. 돈 주고도 배울 수 없는 걸 배우는데 어딜 보냐고.(웃음) 맞는 말이죠. 사실 그렇게 배운 노하우를 아직도 기본으로 깔고 있어요. 당시 2PM, 2AM이 신인들이었는데, 다 같이 떨고 있었던 기억이 나네요.(웃음)

O - 그럼 하산은 언제 하신 거예요?

S - 이후로 1년 동안은 계속 부르셨어요. 미국에 안계실땐, 우린 늘 호출됐었어요.

O - 미국 가면 되게 좋아했겠어요.(웃음)

S - 방학이라며 좋아했죠.(웃음) 그러다 저희가 슬슬 입봉하고 하면서 호출 빈도는 줄었어요. 그래도 곡에 대한 조언은 계속 해주셨어요. 아주 디테일한 베이스 라인, 애드리브 라인까지 봐주셨을 정도로.

O - 자, 그럼 그렇게 고대하던 입봉작은 뭐였나요.

S - 입봉은 SM에서.(웃음)

O - (웃음) 어머나.

S - 제 곡을 JYP에서 안사주셨어요.(웃음) 데모를 돌렸는데, 다행히 SM에서 좋게 봐주셨어요. A & R을 통해서 드렸는데, 그 곡이 에프엑스의 '유 아 마이 데스티니(You are my destiny)'에요. 그 곡이 실은 처음에 진영오빠께 드린 CD에 있던 곡이죠.

O - 특이한 일이네요.

S - 데뷔를 못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는데 정말 기뻤죠. JYP와는 작가 계약이 돼 있는 거라, 외부에도 자유롭게 곡을 줄 수 있어요. JYP에서 처음 나온 곡은 조권의 '고백하던 날'이었어요.

O - 마음 고생이 많았겠어요.

S - 계속 곡을 썼는데, 막판에 가서 엎어지는 일이 많았죠. 어떤 곡은 타이틀로 결정까지 돼서, 녹음도 했는데 계속 바뀌는 거죠. 그 곡 하나에 거의 1년을 매달려있었어요. 가수가 계속 바뀌어서 녹음만 15번 했어요. 결국 돌고 돌다가 아이유에게 갔어요. '그 애 참 싫다'라는 곡이에요. 고생 많이 했는데 다행히 훌륭한 가수에게 가서 보상을 받는 느낌이었죠.

O - JYP 안에서 차곡차곡 업그레이드돼서 다른 가수에게 간거네요. 박진영씨는 그럴 때 뭐라고 해요?

S - 엄청 기뻐해주세요. 우리 가수는 아니어도, 좋은 가수에게 갔으니까 많이 뿌듯해하시죠.

O - 음악 작업은 주로 어디서 하세요?

S - 주로 집에서 해요. 녹음 있을 때, 회의 있을 때에는 회사로 가죠.

O - 송캠프라는 시스템도 있죠?

S - JYP에서 1년에 두차례 공채로 작곡가, 작사가를 뽑아요. 그렇게 뽑힌 선후배 작곡가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같은 주제를 갖고 곡도 쓰고, 공동작업을 하는 거예요. 아티스트까지 모두 하면 26명 가량이 활동 중인데요. 저는 거기 가면 거의 '조상님'이죠.(웃음)

# 박지민 데뷔곡, 더 잘됐어야 했는데..미안

O - 지난해엔 드디어 타이틀곡을 쓰는 작곡가가 되셨죠.

S - 진영 오빠가 늘 하시는 말씀이 '나 말고도 타이틀 쓸 작가가 나와야 한다'였어요. 저는 피프틴앤드의 '아이 드림', '섬바디'로 두번 했었고요.

O - 타이틀곡 작가가 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요.

S - 작년 이맘때였어요. 그때는 배짱이 없어서 좋다기보다 '망하면 어떡하지'하는 생각 뿐이었어요. 진영 오빠의 곡으로 나가다 이렇게 큰 기회가 나한테 왔다는 게 부담이기도 하고, 특히 박지민이라는 핫한 가수가 나서는 건데, 정말 부담스러웠죠. 노래가 나오고 나서는 실시간 차트만 들여다보고 있었어요. 밤에도 계속 보고. 그런데 결과가 그렇게 좋진 않았거든요.

O - 노래가 조금, 어려웠어요.

S - 저는 그걸 나중에야 인정했어요. 어려웠구나. 대중이 박지민에게 원하던 건 이런 게 아니었구나. 그래서 슬럼프가 왔어요. 진짜 아무 것도 못하겠는 거예요. 애들한테 미안하고,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회사에도 죄책감이 들고. 정말 더 잘될 수 있는 애들인데, 많이 미안했어요. 한번 해보니, 이건 정말 보통 배짱을 가진 사람이 하는 게 아니구나 싶더라고요.

O - 어떤 과정으로, 타이틀곡에 선정된 거예요?

S - 진영 오빠가 곡을 진짜 많이 썼어요. 온라인 반응 보면 박진영이 왜 신경을 안써줬느냐는 말도 있는데, 사실 곡도 많이 썼고 녹음도 했어요. 그런데 JYP는 타이틀곡 선정을 두고 투표를 해요. 임원, A & R팀, 아티스트 중에 몇 명 감 좋은 가수들을 포함해서 16인의 모니터링 위원단을 조직해뒀거든요. 완전히 블라인드 테스트로, 점수를 매기죠. 저는 그 위원이 아닌데, 나중에 진영오빠가 '아이 드림'이 선정됐다고 이 곡을 어떻게 더 수정할 수 있을지 의견을 모으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알게 됐어요.

O - '섬바디' 때에는 '또 타이틀이야?' 그러셨겠어요.(웃음)

S - 이거 안하면 안돼요? 라고 했죠.(웃음) 너무 힘든 걸 아니까. 차트 목매는 것도 싫고, 댓글 보는 것도 속상하고. 그래서 박진영 오빠 곡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니까요.(웃음)

O - 작업은 어떤 식으로 하나요?

S - 미리 곡을 써두는 편이 못돼요. 의뢰가 들어오면 쓰고, 팔고, 쓰고, 팔고 하는 식이에요. 재고가 없는 편이죠. 그래서 다작을 못해요.

# 음악, 결국 공감이다

O - 집에서는 어떻게 작업해요?

S - 방음 매트 깔고, 피아노 치면서, 미디 장비로 작업하죠. 저는 좀 바른생활 작곡가인 편이라서요. 아침에 집중이 잘돼요. 아침 8시에 일어나서 남편 출근 시키고(웃음) 그 다음부터 작업에 들어가죠.

O - 우와, 진짜 신선하네요. 결혼은 언제 하신 거예요?

S - 2011년 말에 했어요.

O - 보통 창작자는 결혼하면 감이 예전같지 않다고들 하는데, 어때요?

S - 전, 결혼 전에도 워낙 안정적인 생활을 해서요.(웃음) 아직도 결혼하면 감떨어진다는 말은 잘 이해가 안돼요. 전 원래 술, 담배도 안했고요.

O - 문신도 없으시고요?(웃음)

S - 없어요. 물론 인생에 굴곡이 있고 연애도 계속 해봐야지 라고 생각은 하는데. 그래도 그 감정이 뭔지는 아니까, 끄집어 내서 작업하는데 어려움은 없어요. JYP 사람들이 대부분 모범적인 편이에요. 성실하고.

O - 작곡가로서, 창작자로서,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일까요.

S - 결국 자기만족이겠지만 대중음악 작곡가를 선택한 이상 자기만족에 남들의 대리만족감도 채워줄 수 있어야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대중의 감성과 소통의 통로가 되는게 제 목표에요. 저도 곡을 쓰는 사람이지만 듣는 사람이기도 하거든요. 가끔 좋은 음악이나 가사를 들었을 때 그 힘이 어마어마하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제가 쓰는 음악도 누군가에게는 그런 역할을 했으면 좋겠어요. 가끔 트위터를 통해서 한번도 본 적 없는 누군가가 제 음악을 듣고 힘을 얻었다거나 가사가 너무 내 얘기 같아서 위로가 됐다 등의 이런 메시지를 받을 때 제일 희열을 느끼거든요.

O - 음악을 통해, 대중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은가요. 작곡가로서, 대중에게 하고 싶은 말도 있을 거 같아요.

S - 그냥 '공감'으로 정리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 음악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제 음악이 무언가를 추억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어주고, 그것으로 마음을 움직이는 것까지 가능하다면 진짜 제가 원하는 방향대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냥 너도 느끼고 나도 느낀 그 감정을 가사와 음에 녹여서 제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음악으로 담아냈을 뿐이거든요. 60살에게나 18살에게나 한 곡이 주는 메시지는 다르겠지만 그 곡들이 감성이 메마르지 않게끔 살도록 하는 그런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O - 이 길을 꿈꾸는 후배들이 조언을 구한다면, 무엇을 가장 강조하고 싶으세요?

S - 뭐든 경험을 많이 해보라고 하고 싶어요. 제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감'은 결국 경험이라 생각하거든요. 그게 작품으로 나오면 진정성 있는 작품이 되는거고. 그래서 창작자는 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유리한 것 같아요. 제가 제일 아쉬운 부분이라 조언하는 것 같기도 하고.(웃음) 어쨌든 직접경험이 힘들면 간접경험으로라도 감성이 항상 살아있도록 생활을 유지하는게 첫 번째가 아닐까 생각해요.

rinny@osen.co.kr< 사진 > 손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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