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자 박찬욱에 괜히 덤비고 엄살" "열차세트 옆의 봉준호 유령같더라"

라제기기자 박선영기자 입력 2013. 8. 27. 20:49 수정 2013. 8. 28.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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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 합작한 감독 봉준호·제작자 박찬욱

900만 고지를 눈 앞에 둔 흥행 성적 때문일까. 두 사람의 입에선 미소가 넘쳤다. 어깨도 가벼워 보였다. 26일 오후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 마주 앉은 박찬욱 봉준호 감독은 '설국열차'의 느려진 흥행 속도에 맞춰 일상의 여유를 되찾은 듯했다. 경쾌한 웃음 사이사이 '설국열차'를 만들면서 느꼈던 서로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감추지 않았다. 제작자로서, 감독으로서 결이 다른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박 감독이 "제작자로서 천만 클럽 가입할 수 있을 듯해 기분 좋다"고 하자 봉 감독은 "흥행은 930만명 정도에서 끝날 것"이라며 김을 뺀다.

-만일 1,000만 관객을 넘으면 봉준호 감독에겐 '괴물'에 이어 두 번째다.

봉준호 (이하 봉)=한국의 배급구조 변화나 극장의 숫자의 증가 등을 감안하면 1,000만 관객의 의미가 많이 바뀌었다. 진정 경이로운 스코어는 곽경택 감독의 '친구'라고 생각한다. 2001년 청소년관람불가에도 800만명이 넘게 봤다. 지금으로 치면 1,600만명 정도 되지 않을까. 그때는 스크린을 요즘처럼 700, 800개 잡던 때도 아니다. 결국 1,000만 관객은 큰 의미 없다는 말씀 드리려는 거다. 많이 보시는 건 다 기쁜 일이지만.

-설국열차에 대한 평가가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박찬욱(이하 박)=평가가 엇갈려서 논란이 많이 생기니까 오히려 화제가 되고 그 덕에 더 많이들 보게 된 듯하다. 반복 관람이 많은 이유인 듯도 하다. '설국열차'의 경우는 관객들의 좋고 싫음이 확실히 갈려 흥행에 더 좋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반응을 예상했나.

봉=영화 작업을 모두 다 마치면 그 다음에 일어날 일에 대해선 아무 생각도 안 한다. 나가자마자 뺨 맞을지 꽃다발을 받을지 알 수가 없다. '살인의 추억'과 '괴물' '마더' 때도 호불호가 갈렸다. 단지 이번엔 좀 과열된 분위기다. 왠진 모르겠으나 내 입장에서 예전과 똑같다.

-박 감독이 제작을 해서 영화가 더 어두워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제작자로서는 밝은 쪽으로 유도하면 했지 설마 어두운 쪽으로 유도했겠나. (밝은 쪽으로 유도했냐고 묻자)아니, 할 수 있다면 그랬다는 거지, 굳이 영화를 어둡게 할 이유가 없지 않나. 억울하다. 그 동안 나서지 않은 이유는 괜히 나 때문에 영화를 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어둡다는 선입견을 가질까 봐 걱정돼서다. 각본과 캐스팅 단계에서 내 의견 내고 내 생각을 몇 가지 전달했을 뿐 결정은 감독이 다 한 거다.

봉=편집실에서도 좋은 아이디어 많이 내주셨다. '마더'도 그렇지만 제 영화가 원래 어둡다. 박 감독님은 '사이보그지만 괜찮아' 같은 해맑고 밝은 영화도 찍으셨지만.

-'올드보이'의 오대수는 감금된 채 15년 동안 만두만 먹고, '설국열차'의 꼬리칸 사람들은 오랜 시간 '양갱'만 먹는다. 두 감독의 인식에 어떤 공통점이 있나 보다.

박=글쎄, 잘 모르겠다. 억지로 찾으니까 그런 것이겠지. 허진호 감독 영화 보다야 내 영화가 봉 감독 영화에 더 가깝겠지만. 원래 서로 공유하는 부분이 있어서 그런 거지, 내가 제작자여서 그런 것 같진 않다.

박 감독은 할리우드에서 최신작 '스토커'를 연출했고, 봉 감독은 '설국열차'를 위해 할리우드 배우, 작가와 협업을 했다. 둘 다 생경한 할리우드 시스템을 온전히 경험했다. 박 감독은 "한국에선 술자리 등에서 사귄 배우들에게 직접 전화해 캐스팅을 제안할 수 있었으나 할리우드는 무조건 에이전트와 변호사를 통해 일이 진행됐다"고 말했다. 봉 감독은 "우리 둘 다 미국에서 가장 큰 에이전시 소속이라 각각 일을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고 덧붙인다. 박 감독과 봉 감독이 각각 속한 윌리엄 모리스와 CAA는 미국 양대 연예 에이전시로 평가 받는다.

-서로의 영화를 평가한다면.

박='설국열차'의 예산은 부럽진 않았다. '스토커'가 더 여유 있게 찍었을지도 모른다. 체감상 '스토커'는 한국영화로 치면 제작비 12억, 15억원 정도 영화로 각본도 단출하다. '설국열차'는 해야 할 게 많고 욕심 부리자면 끝이 없는 SF액션이다. 430억원으론 부족하다. 내가 부러웠던 건 에드 해리스, 틸다 스윈튼, 존 허트 등 출연배우들이다. 허트는 나이가 있으니까 빨리 서두르지 않으면….

봉=아직 건강하시다. 오늘내일 하진 않는다. 저번에 로스앤젤레스에 가니 한 시간 반짜리 모노드라마도 하시던데….

박=연극을 자주 한다. 그 모노드라마는 몇 년 전부터 하던 거다. 아마 대사를 다 외워 그리 힘들진 않을 것이다. 내가 예전부터 소원하던 배우가 진 해크먼인데 은퇴 발표를 했다. 얼마 전 '보니 앤 클라이드'를 딸과 같이 보는데 진 해크먼… 아 정말 미치겠더라.

봉=나도 그냥 다 주워들은 이야기지만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 중에서도 ('스토커'를 만든) 20세기폭스가 유난히 감독을 괴롭히는 노하우를 많이 가지고 있다더라. 박 감독님한테 직접 들어보니 눈물 없인 못 듣겠더라. 감독님도 1980, 90년대 충무로에서 다진 공력이 있는데…. 나는 물론 예산과 일정의 압박을 느꼈지만 영화의 내용이나 내 취향에 대해선 아무런 간섭을 받지 않았다. 박 감독님 제작사니까 (투자배급사)CJ엔터테인먼트도 내게 아무 얘기 안 했다. 박 감독님이나 김지운 감독에 비하면 나는 행복한 케이스다.

-영화 찍다 박 감독은 이가 많이 상했고, 봉 감독은 폭식으로 체중이 늘었다는 소문이 있다.

박=이에 문제가 있어서 (촬영 장소인)미국 내쉬빌에서 신경치료를 받았다. 치료는 잘 됐는데 입이 잘 안 열리더라. 처음엔 마취 때문이라 생각했다. 하루가 지나고 2주가 지나고 3주가 지나도 수저 하나를 겨우 넣을 정도 밖에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 니콜 키드먼 소개로 전문 의사를 만났는데 최고 한 달 동안 그런 경우는 있다고 했는데 한 달이 지나도 낫지 않더라. 그 동안 겨우 죽 같은 걸 입에 흘려 넣어 버텼다. 그런데 촬영이 끝나니까 거짓말처럼 입이 쫙 벌어지더라. 아마도 너무 힘들어서 그랬나 보다. 정말 장애인 되는 줄 알았다.

봉=(묵묵부답)

-할리우드 시스템이 얼마나 힘들게 했길래.

박=빨리 찍어야 한다는 게 힘들었다. 한국에서 촬영횟수 60회 이상에 찍을 걸 40회에 찍었다. 현지 스태프들 실력도 한국보다 못하니 스트레스가 심했다. 한국에선 예정을 넘어도 배우들이 영화 촬영을 마칠 때까지는 찍는다. 할리우드에선 시한을 확실히 정한다. 변호사들끼리 논의하는데 날짜 어기면 난리가 난다.

봉='괴물'의 촬영 횟수는 116회, '마더'는 90회 정도다. '설국열차'는 72회 만에 찍었다. 촬영 일정은 '플란다스의 개'보다 짧았다. 찍다 보니 정신이 멍해졌다. 한국의 촬영 현장은 정겹고 서로 옹기종기 모여 촬영분도 함께 봤는데…. 조감독도 내 편이 아니었다. 한국에선 조감독들이 로마병사처럼 감독을 위해 막 싸우는데 할리우드에선 감독을 압박한다.

박=할리우드에선 조감독이 감독 편도 아니고 제작자 편도 아닌 스케줄 편이다.

인터뷰 중 로맨스 영화 이야기가 나왔다. 봉 감독은 "나이가 덜 돼서 그런지 아직은 만들 자신이 없다"고 말했고, 박 감독은 "난 로맨스 전문 감독"이라는 의외의 주장을 내세웠다. "사랑을 다루지 않은 영화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다"는 이유에서였다. 봉 감독이 "'공동경비구역: JSA'는 일종의 게이 로맨스"라며 거들어 한바탕 웃었다. 박 감독은 한때 "출판사를 직접 차리려 했다"는 돌발 발언도 했다.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내고 싶은 마음"에서다.

-세계적인 감독의 위치에 올랐는데 자신들의 대표작을 꼽는다면.

박=글쎄. 'JSA'를 만들기 전부터 기획했던 영화라 그런지 '박쥐'가 내 개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 같다. 내 능력의 한계치까지 발휘된 영화인듯하다. 내가 만든 영화들은 내게 중요하면서도 부끄럽기도 하다.

봉=나는 뭐 다 쪽 팔린다. 문제의 모양새가 변할 뿐이지 매 작품마다 문제가 많다. 내 목표는 15편 정도 영화를 찍고 죽는 거다. 그렇게 되면 '설국열차'는 초기작에 해당한다. 초기작이라는 핑계로 쪽 팔림은 면할 수 있지 않을까. 스웨덴의 거장 잉마르 베르히만은 1983년 '파니와 알렉산더'를 찍고 은퇴했다. 훌륭한 영화 남기고 그렇게 떠나는 모습이 멋있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시드니 루멧도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라는 파워풀한 영화로 인생을 마무리했다. 앞으로 10편을 더 찍어야 하는데 내 정신력과 체력으로 가능할지 모르겠다. 나나 박감독님이나 1년에 1초도 운동하지 않는 스타일인데 10편 더 찍고 싶은 소원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왜 굳이 15편인가. '설국열차'를 초기작으로 넣으려는 의도 때문인가.

봉=그렇다. 지금까지 5편 했으니 5편씩 초기 중기 말기로 나눌 수 있다. 솔직히 감독들이 말하지 않아서 그렇지 심정은 비슷하다. 시나리오 쓰다 문제가 생기면 콘티나 스토리보드로 해결할 수 있겠지라고 미룬다. 콘티로도 해결 안되면 현장에서 보완될 것이라고 넘긴다. 그러다 배우가 메워 줄거라 믿는다. 아수라장 촬영장에선 편집으로 해결하길 기대한다. 편집할 땐 음악이 문제를 덮어주길 바란다. 그러다 결국 시사회를 하고 다음 영화는 잘 찍어야지 한다. 그걸 감독들은 반복한다.

박=시사회 가선 그런 생각을 한다. 관객이 알아서 완성해 줄 거야. 또 한 단계가 있다. 관객이 안 알아주면 역사가 발견해 줄거야라고. 감독들이 그렇다(웃음).

-한국 영화계에 빼어난 완성도와 함께 상업성도 갖춘 신진 감독들이 이제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가 있다.

봉=나홍진('추격자'와 '황해') 있지 않나, 공포의 나홍진. 영화 정말 잘 만드는 나홍진!

박=조성희('늑대소년')와 최동훈('도둑들')도 있고 윤종빈('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도 있다. 이경미('미쓰 홍당무') 감독도 곧 새 작품 내놓을 것이다. (류)승완이는 우리 세대로 쳐주는 건가? (나이도 젊은 데 너무 일찍 데뷔해) 억울하겠다.

-윷?전부터 서로 가깝게 지냈는데 라이벌 감정은 혹시 없나.

봉=내 라이벌은 김태용('만추') 감독이다. 나이로나 짬밥으로 보나. 박 감독님은 나보다 훨씬 위 세대다. 1992년에 데뷔하셨고 1980년대 이미 충무로에서 조감독을 했다. 김지운 박찬욱 두 분이 라이벌이고 나는 민규동 ('내 아내의 모든 것') 김태용 감독 세대다. 박 감독님과는 선후배 감독으로서 항상 술 같이 마시며 제작자 흉도 보고 그런 사이다. 그래서 이번 영화로 제작자 감독 사이가 되니 어색하기도 했다. 그래도 제작자라니 감독으로서 별 이유 없이 덤비고 말을 듣지 않으려는 게 있었다. 괜한 일로 속도 썩였는데 예전처럼 감독과 감독 사이가 더 좋다고 생각한다.

-어떤 식으로 반항했나.

봉=괜히 엄살 좀 부렸다. '감독님 뭐가 안 돼요! 뭐가 모자라요! 뭐가 없어요!' 이런 식으로.

박='설국열차' 촬영 마지막 주에 체코 현장을 찾았는데 봉준호는 없고 반투명한 봉준호 유령만 있더라. 말도 느리고 작은데 몸은 약간 떠다니는 것 같은 모양새라 너무 안쓰러웠다.

봉=그때 열차 엔진세트 옆에서 (양 팔이 축 늘어진 포즈를 취하며)이런 자세로 멍하니 있었다. 한마디로 맛이 갔었다(웃음).

박=우리 라이벌은 '개그콘서트'나 컴퓨터 게임 등 국민들의 다른 여가다. 한국영화끼리는 라이벌이 아닌 것 같다. 좋은 영화 만들면 한국영화 시장은 더 커질 것이다.

봉=우리 최대 라이벌은 게임 아닐까? 아니면 스포츠? 아웃도어 활동? 일요일에 지하철 타면 40, 50대 아저씨들이 똑 같은 등산복 입고 있는 모습 보면 정말 무섭다. 저 양반들이 다 영화관 안 가고 어디 가냐는 생각에.

박=예배당도 우리 라이벌이다(웃음).

고경석기자 kave@hk.co.kr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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