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봉준호 감독과 함께하는 '설국열차' 배우 탐구생활 ②

한국아이닷컴 이정현 기자 사진 2013. 7. 30.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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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아메리카가 한국영화에 출연한다. 전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100인 중 한명이 한국 감독과 호흡한다. 크리스 에반스와 송강호가 서로 맞대면하고 한 화면 속에 틸다 스윈튼과 고아성이 존재한다. 이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는 명제가 '설국열차'를 통해 해결됐다.

2013년 한국영화 최대 기대작인 '설국열차'의 뚜껑이 열렸다. 22일 언론시사회를 통해 처음 공개된 이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독특하고 깊이 있는 세계관 뿐만 아니라 크리스 에반스, 틸다 스윈튼, 존 허트, 제이미 벨 등 출연 배우들의 호연도 인정받았다. 송강호, 고아성으로 이어지는 한국배우들의 존재감도 눈에 띈다.

이 기라성 같은 배우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은 그림을 봤을 때 감독 봉준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래의 인터뷰는 봉준호 감독과 나눈 인터뷰, 그리고 그와 잠깐씩 나눴던 대화, 그리고 미리 밝힌 내용을 기반으로 작성 됐다.

"크리스 에반스? 몸 좋은 미국 고등학생 같았다."

'설국열차'에서 크리스 에반스는 꼬리칸 사람들을 이끄는 반란의 리더 커티스를 연기했다. 전략가의 냉철함과 목숨을 걸 줄 아는 행동력을 겸비한 젊은 리더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 독재자 윌포드가 지키고 있는 엔진을 점거하고 열차를 해방하기 위해 머리칸으로 전진한다.

Q

: 사실 크리스 에반스는 '어벤져스'와 '판타스틱4' 등으로 먼저 알려졌다. '설국열차'의 어두운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기도 하다.

봉준호(이하 봉)

: 사실 나 역시 크리스 에반스에게 편견이 있었다. 얼핏 보면 치어리더랑 사귀는 미국 고등학생 같지 않나. 영화를 통해 본 것도 '캡틴 아메리카' 먼저였다. 그런데 어느날 캐스팅 디렉터가 편견이라고 하더라. 알고보면 블록버스터가 아닌 작은 영화에도 출연했고 깊은 연기도 고민하는 친구라고 했다. 크리스 에반스가 출연한 작품 중에 '펑처'라는 영화가 있다. 인디 영화인데 약에 찌든 변호사 역을 했는데 진지한 연기를 잘 하더라. '설국열차'보다는 덜하지만 수염을 기른 모습도 마음에 들었다.

Q

: 캐스팅 과정은 어땠나.

: 다른 배우들 처럼 시나리오를 보내고 미팅을 한 것이 아니라 캐스팅 오디션 장에 직접 나타났다. 미국에서 같은 에이전시로 소속돼 있는데 '살인의 추억', '마더' 등 내 전작들을 접한데다 '설국열차' 프로젝트를 전해 듣고 직접 자기 발로 찾아왔다. 송강호에 대한 질문도 자세히 하더라.

Q

: 실제로 크리스 에반스를 만나면 어떤 느낌인지 궁금하다.

: 너무 캡틴 아메리카라고 생각들 하는데 실제로 보면 속눈썹이 이만큼이나 길다. 성냥 10개 정도는 쉽게 올라갈 것 같다.(웃음) 커티스라는 캐릭터가 모든 걸 때려 부수는 근육질 히어로는 아니다. 후반부로 가서는 점점 더 외로워지고 가여운 느낌이 있다. 커티스의 그런면이 크리스 에반스에게서 찾았던 것 같다. 그 역시 커티스의 이런 면에 매력을 느낀 것 같다. 근육은 돌덩어리인데 성격은 섬세한 면이 있다.

Q

: 관심 있는 송강호와 호흡을 하니 좋아했겠다.

: 극중 서로 치고 받는 장면이 있는데 송강호 선배가 와서는 "힘들어 죽겠다"라고 툴툴대더라. 크리스 에반스는 하루도 빼먹지 않고 운동을 하는 것에 비해 송 선배는 평소에 운동을 잘 안한다.(웃음) '액션 기계'라고 표현했던 말이 생각난다.

"에드 해리스도 첫 촬영에서는 떤다."

커티스의 최종목표이자 설국열차의 창조자인 윌포드는 에드 해리스가 연기했다. 윌포드는 기차 맨 앞의 엔진 칸을 떠나 본 적 없이 비밀에 쌓인 채 선택 받은 소수의 앞칸 승객들에게 생명의 근원으로 숭배 받는다. 하지만 억압받는 꼬리칸의 빈민들에게는 절대악이자 독재자다.

Q

: 윌포드에 에드 해리스를 캐스팅 한 것은 인상적이었다.

: 사실 윌포드 역이 캐스팅이 안되서 고민을 많이 했었다. 결국은 영화 촬영이 시작되고 나서도 공석이었다. 박찬욱 감독이 '이런 배우들은 어때?'라면서 10여명의 배우 목록을 줬는데 거기에 에드 해리스가 있더라. 그때 무릎을 탁 쳤다. 왜 에드 해리스를 생각하지 못했을까?

크랭크인 전에 한번도 만나보지 못해서 화상채팅으로 작품 콘셉트를 이야기 하려는데 에드 해리스가 컴퓨터가 안된다면서 통화로만 했다. 그때 목소리가 참 인상적이었다. 단호하고 묵직한 보이스가 참 좋았다.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했는데 실제로는 상냥하더라.

Q

: 현장에서는 어땠나.

: 첫날에는 에드 해리스도 긴장한게 느껴졌다. 그렇게 많은 작품을 소화한 분인데도 대사가 씹히시더라.(웃음) 대사처리가 안되니 자기 자신에게 화내시더라. 하지만 캐릭터를 다잡은 후에는 청산유수 같았다.

Q

: 영어로 직접 배우들에게 연기를 지시한건가?

: 항상 주위에 통역이 머물게 했다. 연출부 역시 한국어와 영어 가능한 이들이었다. 아주 간단한 지시?내가 했다.

"파격변신, 틸다 스윈튼이 먼저 제의했다."

윌포드의 오른팔이자 커티스와 꼬리칸 일행들을 직접 억압하는 인물은 열차의 총리 메이슨이다. 다수의 작품을 통해 연기력을 일찌감치 인정받은 틸다 스윈튼은 헐벗은 꼬리칸의 빈민들 앞에서 화려한 모피로 몸을 감춘 채 직접적으로 탄압한다.

Q

: 틸다 스윈튼은 어떻게 만났나?

: 2009년이다. 부산영화제 때 한국을 찾은 틸다 스윈튼이 내 팬이라고 말한게 인연이 됐다. 첫 만남은 칸 영화제 였다. 그때 언젠가 작품을 함께하자는 이야기를 했고 그게 '설국열차'로 완성됐다. 코를 들창코로 세우며 인상을 완전히 바꾼 것은 그의 제안이었다.

Q

: 틸다 스윈튼이 연기한 메이슨 캐릭터가 인상적이다.

: 틸다 스윈튼도 신나서 연기한 것 같다.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 처음에는 메이슨 캐릭터의 외형을 바꾸는 이야기, 예를 들어 틀니나 의상등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나중에는 인물의 전사(前事)에 대해서도 생각을 공유했다. 할리우드 배우 중에서는 틸다 스윈튼과 존 허트가 일찍 캐스팅 돼 이야기 나눌 기회가 많았다.

Q

: 메이슨의 전사는 무엇인가?

: 원래는 꼬리칸의 사람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쩌다 머리칸에 올라온 후 청소를 하거나 관리자에 있다가 점점 윌포드의 눈에 띄어 총리까지 오른 인물로 설정했다. 미국에 '네임 드로퍼'라는 말이 있는데 제3자의 권위로 잰체하는 인물을 말한다. 메이슨의 경우 딱 이경우다. 보통 이런 사람들이 자신의 과거에는 콤플렉스가 있지 않나. 그래서 매번 윌포드 이름을 거들먹 거리는 거고, 옷도 과시적이고.

Q

: 콘셉트는?

: 틸다 스윈튼이 자기는 스코틀랜드 사람이지만 영국의 요크셔 사투리를 해보겠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그 지역의 역사를 쭉 이야기 해줬다. 우리가 생각한 메이슨의 전사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는 뭐가 스코틀랜드 발음인지 요크셔인지 잘 모른다.(웃음) 틸다가 감이 온 것 같았다. 그때부터는 일사천리 였다.

캐릭터의 외형적인 것은 미술 감독이 공간 아이디어 때문에 보여준 사진이 있었는데 거기에 웬 아줌마가 서있었다. 그 모습이 재미있어서 메이슨을 만드는데 참고 했다. 왜 그런거 있지 않나. 기숙사 B사감 같은 안경을 쓰고 이상한 헤어스타일과 완고해 보이는 얼굴. 그것이 캐릭터 메이슨의 레퍼런스다.

Q

: 메이슨이 틀니를 빼는 장면은 갑작스럽기도 했지만 웃겼다.

: 정말 그랬나? 관객 들이 재밌어 해줬으면 하는데. 이것도 틸다 스윈튼이 먼저 제의한 장면이다. 분장용인 틀니를 빼고 진짜 이는 CG로 모두 지웠다. 처음에는 재미있겠다 싶어서 넣었는데 나중에는 여러 가지 의미를 집어 넣게 됐다. 메이슨이 고령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약간 성적인 의미도 있지 않겠냐는 말도 나와서 재미있었다.

"송강호-고아성은 '설국열차'의 리베로."

이질적인 곳, 익숙하지 않은 할리우드 배우들 틈에서 반가운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송강호와 고아성이다. 송강호는 기차의 모든 도어락과 보안 시스템을 설계한 남궁민수를 연기했다. 잠긴 문을 열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자 머리칸을 점거하려는 커티스 일행의 필수적인 존재다. '괴물'에 이어 다시 송강호의 딸이 된 고아성은 열차에서 태어나 자란 17세 소녀 요나로 분했다.

Q

: 송강호와 고아성은 어떻게 '괴물'에 이어 다시 캐스팅 했나.

: 나도 낯가리는 성격인데 할리우드 배우들 사이에서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엄청난 배우들이 현장에 바글바글 할텐데.(웃음) 외국 배우들과 촬영하다 송강호 시퀀스를 찍을 땐 나도 말의 물꼬가 트이더라. 송강호와는 처음 일하는 사이도 아니지 않나. 그렇게 후련할 수가 없었다. 내가 '아'하면 송강호가 '어'하고 알아 듣는다. 최고였다.

두 사람은 2009년 시나리오가 채 나오기 전에 미리 부탁을 했다. '설국열차' 속 한국 배우들은 일종의 리베로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한솔로 같달까. 치고 빠지고 예측하기 힘든 동선을 가진다. 양보다는 질?

Q

: 송강호와 고아성이 다른 배우들에 비해 겉도는 느낌은 있다.

: '설국열차'를 보면 알겠지만 송강호와 고아성은 은근히 다른 배우들과 동선이 겹치지 않는다. 틸다 스윈튼이 송강호에게 관심이 있었는데 붙는 신이 별로 없어서 아쉬워 하더라. 그래서 하나 넣어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했는데 어쩌나. 지금 찍어야 할 것도 산더미인데.(웃음) 나중에 무인도에 송강호와 틸다 스윈튼을 넣어놓고 표류하는 영화를 찍으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다.

Q

: 고아성의 극중 이름인 요나는 성경에 나오는 이름인가?

: 사실은 '괴물'에서 비롯된 거다. 거기서 고아성이 괴물의 뱃속에서 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어떤 분이 혹시 성경에서 따온 것이냐고 묻더라. 물론 전혀 풩?했던 것은 아니었다. 나도 나름대로 성경 공부를 했는데 왜 몰랐는지 모르겠다.(웃음) 고아성을 다시 캐스팅하면서 그 말이 떠올라 요나라는 이름을 붙였다. 고아성이 친하게 지내는 인디밴드 이름이 넥스트 요나라는 말을 듣고 재밌어 했던 기억이 있다.

Q

: 투시력이라 하나? 요나의 능력이 재미있다.

: 트레인 베이비라는 극중 용어가 있다. 지구에 빙하기가 닥친 후 설국열차 안에서 태어나 자라 한번도 땅을 밟아 보지 못한 세대다. 요나가 바로 트레인 베이비다. 땅에서 자란 세대와는 묘하게 다른 점을 줘야 겠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흔들리는 곳이었고 기차의 소음도 매우 자연스러울 것이며 사방이 막힌 공간에 익숙할 것 같았다.

본래 시각에 제한을 받으면 후각이나 청각이 발달하지 않나. 기차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은 이런 능력이 있을 것 같았다. 사실 요나는 투시력이 있기보다는 청각이 발달한 것인데 이를 표현하는 대사가 편집 과정에서 잘려나갔다. 미안하다. 다음에는 더 친절한 영화를 만들도록 하겠다. '마더' 때부터 너무 불편하게 영화는 만드는 것 같다. 하하.

한국아이닷컴 이정현 기자 seiji@hankooki.com사진=한국아이닷컴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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