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봉준호 감독과 함께하는 '설국열차' 영화 탐구생활 ①

한국아이닷컴 이정현 기자 사진 2013. 7. 30. 07:3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길리엄 역을 맡은 배우 존 허트가 '설국열차'는 큰 논란을 불러 일으킬 것이라 했다. 실제로도 그런 것 같다. 사실 논란이 없어도 이상했을 것 같다. 흥행을 예상하긴 힘들다. 마냥 싱거운 영화도 아니고 격려해주는 분들이 있으니까. 부끄럽지 않게 내 소신껏 찍었다."

2013년 최대 기대작 '설국열차' 개봉이 임박했다. 22일 언론시사회를 통해 처음 공개된 이 영화는 공개된 이후 더 많은 흥밋거리를 제공하며 뜨거운 감자가 됐다. 봉준호 감독이 4년간의 고민이 담긴 '설국열차'는 복잡하면서도 단순하고, 심오하면서도 통쾌하다. 알면 알수록 더 깊어지는 '설국열차' 세계의 이정표를 세워봤다.

아래의 인터뷰는 봉준호 감독과 나눈 인터뷰, 그리고 그와 잠깐씩 나눴던 대화, 그리고 미리 밝힌 내용으로 작성 됐다.

Q

: '설국열차'의 출발점은 어디인가?

봉준호(이하 봉)

: 9년 전 홍대 앞 만화가게에서 '설국열차'라는 프랑스 만화를 만났다. 까만색 표지가 눈에 띄더라. 가만히 서서 만화를 다 읽었다. 기차라는 움직이는 쇳덩어리 안에서 바글거리는 사람들이라는 콘셉트가 좋더라. 이야기만 들어도 멋지지 않나?

흑백으로 펼쳐진 그림 속에 구질구질한 군상들과 창밖의 눈, 그리고 따뜻하면서 움직이는 실내가 겹쳐질 때 묘한 분위기가 있다. 안쪽은 거칠고 야만적이며 서로 싸우고 뒤엉켜 있는 뜨거운 이미지, 밖은 하얗게 얼어 붙어 있는 이미지의 이질감이 와닿았다.

Q

: 전작인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등은 알게 모르게 우리 사회의 단면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창조했다.

: '설국열차'는 첫 SF영화다. 독특하고 추상적인 것은 SF영화의 매력이다. 추상적인 시공간으로 들어가 그 안의 인물들을 담았다. 게다가 설국열차는 무한정 달리는 기차이지 않나. 그렇다 보니 더 독특해 진다. 개인적으로는 큰 도전이었다. 이전 영화들은 한국의 좌표에서 출발했다. 인간의 보편적인 엄마는 어떤 존재일까(마더), 왜 아무도 이 가족을 도와주지 않는가(괴물). 하지만 이번 영화는 반대로 생각했다. 한국에서 좌표를 찾기보다는 SF를 통해 좀 더 본질적인 주제에 다가갔다.

Q

: '설국열차'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나, 라는 질문을 하고 싶다.

: '설국열차'는 기차 자체가 시스템인 곳이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발버둥 치고 있다. 밖으로 나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이 기차라는 시스템에서 벗어나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할까를 놓고 주인공들이 고민한다. 커티스(크리스 에반스)나 남궁민수(송강호), 윌포드(에드 해리스) 등은 각자의 방식으로 해답을 찾는다.

누구든 한계치에 도달하면 반드시 탈출하려고 하는 것 같다. 어쩌면 단순한 진리인데 SF영화는 단수화되고 극단적으로 표현할 수 있지 않나. 어쩌면 이건 핑계 같다. 실은 좁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액션 혈투극을 그리고 싶었다. 가진 자와 못가진자의 싸움을 그린 영화는 매우 많다. '스팔타커스'나 최근의 '헝거게임', 그리고 개봉을 앞둔 '앨리시움'도 마찬가지다. '설국열차'는 매우 상식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Q

: 봉준호 감독의 필모그래피와 비교 했을 때 '낯설다'라고 느끼는 관객이 있다.

: 맞는 말이다. 송강호와 고아성을 빼면 정말 낯설다. 나 역시 할리우드 배우들 사이에 있는게 어색할 정도였으니.(웃음) 전작에서는 '살인의 추억' 속 살인 사건이 '마더'의 살인 사건과 겹쳐진다거나 하는 나름의 장치들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많이 없어졌다. 촬영할 때는 외로웠지만 새로운 도전이었다. 낯선 봉준호를 즐기는 것도 괜찮지 않나?

Q

: 봉준호 감독 작품치고는 짧은 기간에 빠르게 촬영됐다.

: 2개월하고도 4주를 체코에 있었다. 3개월이라하면 섭섭하다. 좋게 말하면 합리적으로 촬영했고 나쁘게 말하면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톱니바퀴처럼 굴러가는 조직(할리우드 시스템)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더라. 할리우드 전문 조감독의 현장 컨트롤 안에 촘촘하게 촬영했다.

'마더' 때는 찍은 장면을 보면서 김혜자 선생님과 이야기도 하고 그랬는데 이번에는 반대였다. 사전 준비작업에 공을 많이 들였다.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설국열차'를 완성하기 힘들 었을 것이다. 나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고 열심히 했다. 겉보기에 게을러 보여도 일할 때는 열심히 한다.(웃음)

Q

: 대부분의 장면을 체코 세트장에서 찍었다.

: 열차 4량 정도가 연결되어 있는 장면을 찍어야 했는데 그만큼 크기가 되는 곳은 많지 않다. 최고 100미터에 이르는 길이를 가진 체코의 바란도프 스튜디오가 '설국열차'에 딱 맞았다. 또 실감나는 기차의 느낌을 주기 위해 상하 좌우 자유롭게 구동시키는 초대형 짐벌을 직접 설계, 제작했다.

그런데 대부분 세트 촬영이다 보니 이게 고역이더라. 스태프들은 마치 탄광 갱도에 끌려가는 광부처?촬영장에 모여들었다. 배우들만 얼굴에 검댕을 묻히고 다닌건 아니었다.(웃음)

비슷한 시기 박찬욱 감독, 류승완 감독도 타지에서 영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내가 프라하의 쓰러져 가는 유령 같은 목조 건물 숙소에서 지낸다며 툴툴댔었는데, 서로 "내가 더 힘들다"며 징징거렸던 것이 기억난다. 귀국한 뒤 한자리에서 만났는데 다들 몰골이 장난 아니더라.

Q

: 박찬욱과 함께 작업하는 봉준호는 어땠나.

: 박찬욱 감독은 제작자이기 이전에 선배 감독으로서 수다를 함께 떨어주는 분이다. 감독으로서 내 생각이나 느낌을 이해해 주시는 편이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감독으로서 편하게 있게 해주려하는게 느껴진다. 정작 본인은 '스토커' 작업 때 폭스 서치라이트에게 온갖 학대를 당했다고 들었는데 내가 미안하더라.(웃음)

오히려 촬영현장에는 거의 오지 못했다. 에드 해리스가 좀 늦게 첫 촬영이 시작됐는데 그때 처음 왔다. '설국열차'와 박찬욱 감독이 직접 연출한 '스토커' 촬영이 겹친게 컸다. 영화 내용에 관여하기 보다는 캐스팅에 대한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는 것에 그쳤다.

Q

: 꼬리칸 사람들의 식량인 단백질 블록은 한국의 양갱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나?

: 꼭 그렇지는 않다. 극중 공개되는 원재료와 최대한 비슷한 느낌을 단백질 블록에 주고 싶었다. 그래서 미술팀에 의뢰를 했더니 미역과 설탕을 섞어서 만들었다. 양갱과는 다른 맛이 났다. 제이미 벨은 단백질 블록을 도저히 삼키질 못해서 연출부 막내가 졸졸 따라다니며 뱉어내는 단백질 블록을 양동이에 담아내곤 했다. 틸다 스윈튼은 생각보다 잘 먹었던 기억이다.

극중 남궁민수와 요나가 집착하는 마약성분이 든 크로놀은 '설국열차' 원작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Q

: 영화가 '혁명'을 다뤘다는 이야기가 있다. 최근 '월가를 점령하라'(아큐파이 운동)도 그렇고.

: 사실 어느 시대가 그런 사건이나 운동은 있다. '설국열차'도 비슷한 이야기를 다뤘지만 매우 보편적인 이야기이다. 그렇게 때문에 심플하고 명쾌하지 않나. 각 칸의 등장 인물마다 켜켜히 여러 스토리를 상상했지만 그걸 파헤치고 싶지는 않았다.

'설국열차'는 직진하는 영화다. 이런저런 상징을 고민하기 보다는 단순하고 통쾌한 느낌으로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다만 장르가 SF 영화이기 때문에 사회나 지금 세계에 대한 추상화된 해석이 들어갔다. 그런 면에서 좀 익숙한 장면들을 접할 수도 있다. 영화를 연출하는 입장에서는 언제 또 400억이라는 거금을 들여 상상 속의 세계를 펼쳐보겠나. 하하.

한국아이닷컴 이정현 기자 seiji@hankooki.com사진=한국아이닷컴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 인터넷한국일보(www.hankooki.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