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듀 취중토크③] "설리는 달라, 예쁘고 어린 여성 취향 아닌데"

엄동진 2015. 12. 18. 11: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일간스포츠 엄동진]
기사 이미지

항상 좋을 수도, 반대로 항상 나쁠 수도 없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은 번갈아 찾아와,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한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힙합 그룹 다이나믹 듀오(개코 35·최자 35)도 데뷔 이후 빛과 그림자가 동시에 따라다녔다. 2000년 CB Mass로 데뷔해, 주목받았지만 결국 2003년 무일푼에 빚까지 얻은 상태에서 팀은 해체했다.

개코와 최자 둘만 남아 다이나믹 듀오를 결성하고는,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링마벨''고백'부터 아메바컬쳐를 설립하고 만든 '출첵''솔로'도 잘됐다. 무엇보다 대체불가 정상급 힙합 듀오로 자리를 잡았다. 신인 듀오 슈프림팀 역시 성공적으로 론칭해, 맘 편하게 군입대할 수 있었다. 제대 이후인 2013년 발표한 7집 '럭키넘버스'의 타이틀곡 '뱀'은 이들의 인생곡이 됐다.

모든게 순조로웠다. 세상의 중심에서 성공을 외칠 시기였다. 그런데 일이 터졌다.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2013년 7월 슈프림팀의 이센스가 아메바컬쳐와의 계약이 해지됐다. 이후 9월 이센스는 모두를 놀라게 한 아메바컬쳐 디스곡 'You can't control me'를 발표했고, 개코 역시 예상을 깨고 이센스 디스곡으로 맞불을 놓았다. 국내 힙합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이 뜨거웠던 이른바 '힙합 디스전'이었다.

그리고 최자는 걸그룹 f(x)의 전 멤버 설리와의 노가리집 데이트 사진 한 장으로 세상을 발칵 뒤집어놨다. 유래 없는 래퍼와 걸그룹 멤버의 사랑이었다. 한동안 가요계 사건사고는 아메바컬쳐에서만 일어나는 줄 알았다. 기자들이 오히려 "또 전화해서 미안한데."라며 말끝을 흐릴 시기였다. 사건사고가 뭔지도 모르던 아메바컬쳐는 이제 사고 대처에 스페셜리티(speciality)를 갖게 됐을 정도다.

다이나믹 듀오와의 취중토크는 오래전부터 기획했다. 그 만큼 물어볼 말이 많았다. 하지만 이들이 인터뷰에 응하기까지는 2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동안 두 사람은 좀 더 어른이 됐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진다는 사실을 배웠다. 지나간 일들에 대해 좀 더 차분하고 덤덤하게 얘기하는 법도 알았다. 연말 소속사 가수들이 총출동하는 아메바후드 공연을 앞둬, 체력보충용 한우에 맥주로 이야길 꺼냈다. 워낙 이야깃거리가 많은 팀이라 맥주병은 자연스럽게 하나둘씩 쌓여갔다.

▶공개연애? 마스크 안써서 좋아

-취중토크 공식질문입니다. 주량은 어떻게 되나요.
(최자) "둘 다 소주 서 너병씩은 마셔요. 정말 열심히 먹어야 하는 자리면, 보드카 한 병씩은 비우는 거 같아요. 취해서 사고친 적은 없고요."
(개코) "전 섞어 마시면 정말 힘들어요. 와이프가 저 추한 모습 많이 봤죠. 빨개 벗고 화장실 누워 있은적도 있었고요. 하하."

-힙합계는 항상 시끄럽죠. 표절이냐 레퍼런스냐.
(개코) "처음 들은 스타일의 곡은 없다고 생각해요. 어떤 음악도 들어본 적 없는 외계인이 만들지 않는 이상요. 무단 도용을 한다거나 대놓고 베끼는 음악은 물론 질타를 받아야죠. 근데 장르적인 느낌이나 곡의 흐름상의 유사점은 미국 시장에선 인정을 해주거든요. 그런 부분까지 잡아내는건 좀 아쉽죠."
(최자) "두 가지가 있는거 같아요. 한 가지는 영화감독들도 '이런 부분은 타란티노 느낌으로 갈거야, '새벽의 저주'인데 인간적인 느낌을 좀 더 살려서'라고 표현할 수 있잖아요. 우리도 그런게 있죠. 조용필 선배 느낌인데, 슬픔만 좀 가져가자던가요. 근데 외국에서 뜬 노래를 놓고 코드만 바꿔서 만드는건 문제가 되는거죠. 전자는 레퍼런스로 통용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이나믹듀오가 하는 랩은 늙지 않는다고 생각하나요.
(최자) "젊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나이든 사람도 있잖아요. 나이와 상관없이 공감할 수 있는 얘기를 하고 싶어요."
(개코) "물론 폼은 바뀌겠죠. 비트의 질감이나 음악의 구성·색깔은 변할거예요. 우리 아이덴티티를 그 위에 어떻게 녹여내는지가 젊다와 늙다의 구분이 될거같아요. 기본적으로 가진 노련함은 있을거고 새로운 폼에다가 노련함을 녹여 자연스러운 랩을 하고 그렇게 느껴지게 하는게 중요할 거예요. 그 노력이 없다면 우리가 하는 얘기가 어색해지겠죠."

기사 이미지

-두 사람 사이의 경쟁심은 없나요.
(개코) "자극되는 부분은 있죠. 서로 어떻게 수준을 끌어올리면서 조화롭게 할까를 15년 동안 생각해온거고요. 이런 것도 있어요. 제가 처음 치고나오는 랩이라면 살짝 자제도 해요. 그래야 2절에 최자의 랩으로 넘어갔을때 더 화려하고 흐름적으로 좋을거 같으니까요. 발란스를 생각하는 거예요."
(최자) "곡의 스타일에 따라 달라요. 한번은 온전히 좋은 곡을 만드는데 할애했다면, 다른 곡은 서로 경쟁하듯 잘해보자는 곡도 있고요. 그런 비중을 잘 맞추고 있어요."

-서로의 통장도 맡길수 있는 사이라고 생각하나요.
(개코) "통장도 맡길 수 있죠. 대신 와이프가 개입하겠죠, 하하. 근데 와이프도 뭐라 안할거 같아요. 이젠 가족이죠 뭐."
(최자) "음악 때문에 충돌이 있는건 취향 때문이에요. 서로 좋은 걸 만들기 위해 그러는 거고요. 지금까지 완벽하게 믿고 음악을 하고 있어요. 누군가 터무니없는 얘길 꺼내도 일단은 믿고 가요. 그렇게 며칠 있다가 그건 좀 아닌거 같지라고 말하면 정리가 되죠."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요.
(최자) "6집 활동할 때가 정말 재밌었어요. 우리의 음악은 알아도 얼굴은 잘 모르시니까 전국을 다니면서 맛집 찾아다니고 놀았거든요. 부산에 30분짜리 공연이 있으면 2박3일을 놀고 왔고요. 클럽도 가서 밤새 놀고요. 일과 노는 것의 구분이 좋았어요. 내일이 없는 삶이었죠."
(개코) "구속하는게 전혀 없었으니까요. 심지어 인천 행사를 가도 하루 자고 왔어요."

기사 이미지

-설리 씨와는 어떻게 지내나요.
(최자) "보통 커플처럼 재미있게 잘 만나고 있어요. 제 이상형이 예쁜 여자는 아니었어요. 어린 사람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요. 두 가지를 가진 여성에게 감정을 가져 본적이 없는데 그 친구와는 정말 잘 맞아요. 유대감이라던지 그런게 잘 맞아요. 좋게 예쁘게 잘 만나고 있어요."

-공개가 안되는게 나았을까요.
(최자) "잘 된 거 같아요. 어쩔 수 없이 숨겨야 하는 타이밍도 있더라고요. 설리의 광고라던가 그런거 때문에요. 조심조심하면서 지냈는데 그게 서로에게 너무 힘들었어요. 지금은 편해요.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고, 길거리에서 커피도 마시고요. 물론 지금도 편하게는 못하지만 그래도 데이트 할 수 있어서 좋아요. 최소한 마스크 쓰고 다니진 않아도 되잖아요. 마스크 쓰고 걷는거 정말 답답해요.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물론 좋은 추억이죠."

-설리씨는 왜 최자 오빠가 좋다고 하나요.
(개코) "특별한 이유가 없는거 같아서 더 좋아보여요."
(최자) "이유를 물어본 적도 없어요. 그냥 좋아하는 거 같아요. 저도 그냥 인간으로서 같이 있으면 좋고요."

-가정을 갖고는 많이 변했죠.
(최자) "개코가 이젠 공연 끝나면 빨리 집부터 들어가자고 하죠."
(개코) "이젠 잃을 것이 많아졌으니까요. 굳이 뭔가를 포기하면서까지 놀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있죠. 대신 남자들에게는 혼자 있는 시간이 중요하잖아요. 가끔 일찍 나와서 작업실에 혼자 앉아있어요. 그 시간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 시간을 확보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와이프가 음악하는 걸 오래 봤서, 이제는 이해해주고요."

-결혼은 언제쯤 하고 싶나요.
(최자) "아기들을 보고 있으면 참 좋아요. 특히 개코 아이들은 너무 귀여워요. 제 자식이 있다면 얼마나 귀여울까요. 그런 생각이 들긴 해요."
(개코) "둘째는 딸인데 너무 제 얼굴이 많이 있어요."

기사 이미지

▶퇴물 꼰대, 열받지 않으면 부처님

-이제 좀 어려운 얘길 해볼게요. 다이나믹 듀오에게 슈프림팀은 어떤 의미인가요.
(개코) "처음으로 우리 것이 아닌 앨범을 제작했죠. 그래서 그 친구들에 대한 애정이 있죠. 음악적으로도 잘해서 이 친구들은 크게 되겠다라는 생각도 있었고, 우리도 배울점이 있겠다 싶었고요. 물론 아직도 그 친구들 음악에 대한 애정이 있어요. 계속 같이 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라는 생각도 들고요. 실력은 여전히 믿어 의심치 않는 친구들이에요. 예전처럼 연락을 하거나 그러진 않아도 음악적으로는 기대를 하고 있어요. 우리가 좋았었던 것들, 나빴었던 것들을 알려줘서 지름길을 놔주고 싶었는데, 그게 모든 아티스트들에게 대입할 수 있는건 아니란걸 알았어요."
(최자)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죠. 감정이 상했던 시간도 있지만, 지금은 좋은 음악을 계속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당시 아메바컬쳐가 기획사로서 갑질을 했다는 오해가 억울하지는 않았나요.
(최자) "우린 원래 기사가 나가도 댓글이 없었어요. 무플 방지 위원회가 안쓰러워서 출동해야 했고, 댓글이 올라와도 엄마가 올렸네라고 놀리는게 당연한 그런 상황이었거든요. 근데 디스 상황 이후 너무 관심이 커진 거예요. 거기에 강자와 약자식의 대립구도 같이 돼 버린거죠.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하면서 당황스러웠죠. 우리가 왜 갑과 을일까. 실질적인 채무관계같은게 전혀 없는 사이였는데요."
(개코) "기사가 나기 전까지도, 프로젝트 얘기를 했고, 그 친구가 한 번 찾아오기도 했었고요. 이런 저런 얘기하다가 좋은 방향으로 얘기도 잘됐는데, 디스곡이 나온거예요."

-그 상황에서 꼭 맞디스를 해야 했을까요.
(개코) "전 그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어요. 그 친구는 랩이라는 도구로는 장인의 경지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도 단순하게 생각했어요. 뭔가 한번은 받아야 하지 않겠냐고요. 래퍼의 마음으로 했어요. 미국에 가기 전날이었는데 그냥 가사 써서 올린 거죠. 저도 미쳐있었던 거 같아요. 친한 동생이니까 화도 났고 정말 이해도 되지 않았고,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데 우리가 만든 그림자는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억울했죠."
(최자) "분쟁이 있을 수 있죠. 근데 이게 공론화가 돼 우리가 이런 욕을 먹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관심을 받다보면 그림자도 생긴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갑자기 손가락질 받으니 울컥하기도 했고요. 데뷔 이후 약한 빛을 받고 있다가 7집이 잘 되면서 정말 밝은 빛이 온 타이밍에 바로 그림자가 진거죠. 그걸 받아들이는 게 익숙하지 않았고 힘들었어요."

기사 이미지

-2013년의 디스전이 다듀의 음악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있을까요.
(개코) "있죠. 상처도 받았고 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죠. 이건 평생을 따라다니겠죠."
(최자) "우리가 파는게 문화고, 그걸 파는 주체의 이미지는 중요할 수밖에 없죠. 그 이미지가 타격을 많이 입었죠. 우리에 대해 오해하는 모두를 만나서 풀수 있는 문제는 아니니까요. 답답한 상태로 1년이 지나갔고, 이것도 인생의 일부구나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림자하고 싸울수는 없으니까 그냥 받아들이는게 가장 건강하다고 생각하게 됐죠. 이번 앨범이 나오기까지 2년 반이 걸렸는데 휴식하면서 힐링하는데 1년 반이 필요했어요. 그래도 음악을 하는게 행복했어요. 마음에 응어리진 것도 풀리더라고요."

-디스전 이후 '퇴물'이나 '꼰대'라는 표현이 따르기도 해요.
(개코·최자)"열받지 않으면 부처님이겠죠. 그래도 내가 아니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해요. 그런 얘기에 내가 더 힘들어하면 정말 그렇게 되는거 같거든요. 근데 오기도 생겨요. 15년동안 음악하면서 매너리즘을 느꼈어요. 한 400곡 정도를 작업했으니까요. 개인적으로 창작욕이 더 생긴거 같아요. 0에서부터 다시 시작하자라는 생각이 들었고, 잃을까봐 겁내는 인생을 살지는 말자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렇게 힘들게 나온 8집의 성적엔 만족하나요.
(개코) "중박 정도가 아닐까 싶어요. 우리에게는 의미있는 앨범이죠. 오랜만에 냈고요. 좀 더 심플하고 겨울에 듣기 좋은 앨범을 내고 싶었어요. 이 앨범에서 좀더 마음에 있는 얘기를 했다고 생각해요."

-올해는 힙합으로 시작해 힙합으로 끝난 해죠.
(개코) "맞아요. 미디어의 영향이 컸죠. 여기에 프라이머리 같이 힙합 대중화에 첫 단추를 끼운 사람들이 여기까지 대중들을 잘 끌고 왔다고 생각해요. 근데 우린 이렇게 왁자지껄 시끄러운게 오래가진 않을꺼라고 생각해요. 사실 힙합 유행은 과거에도 있었고 그건 또 지나갈 수도 있는 거고요. 지금 이상황이 지속될거라는 확신은 서지 않아요."

-'쇼미더머니'의 역할이 컸다는건 부인할 수 없죠.
(최자) "저흰 그 프로그램의 성향과 잘 맞지 않는거 같아요. 물론 '쇼미'에 출연하는 래퍼들의 선택은 존중하죠. 미디어의 파급력은 엄청나잖아요. 예능으로도 자극적이고 재미있는 쇼라고 생각해요. 우리도 즐겨보고요. 근데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안맞는 옷이라고 얘기했어요, 우리는 듀오잖아요. 경쟁보다는 둘의 조화를 찾는 팀이고요. 전투적인 가사보다는 실생활에 밀착된 가사를 즐겨 쓰고요. 공부할 때도 등수가 낮았어요. 근데 이런 말 하는 게 조심스럽네요. 이렇게 말하고 나중에 할지도 모르니까요. 하하."

-힙합 대세 상황에서 주인공 스포트라이트는 빗겨 갔어요.
(개코) "내가 세상에서 랩을 제일 잘할거야라고 랩을 하면 음악이 안들리고 랩만 들려요. 우리가 보여줘야 할 타이밍이 있으면 거기서 잘하고 싶어요. 지금 힙합이 붐이라고 나도 나가서 보여줘야 돼라는 마음은 없어요. 물론 경쟁심은 있죠. 지금도 랩 잘하고 싶고요. 새로운 방법도 공부하고 있고요. 하지만 인기나 스포트라이트 때문에 조급함을 느끼면서 랩을 하진 않았을 거예요. 지금은 그들의('쇼미더머니' 출연자) 시간인거 같아요. 그들이 누릴 시간인거죠. 팔로알토 형도 10년 가까이 꾸준히 잘해왔고요. 그런 분들이 조명을 받을 때인거죠. 누리고 돈도 많이 벌었으면 좋겠어요."

기사 이미지
▶최자란 이름, 엄마가 창피해해요

-아주 옛날이야기를 해볼게요. 전설의 힙합듀오의 첫 인상은 각각 어땠나요.
(개코) "초등학교 6학년 때 만났어요. 최자가 우리 반에서 키가 제일 컸어요. 전 작은 편이었고요. 그래서 친구가 될지는 몰랐죠. 키 큰 그룹, 작은 그룹 나뉘잖아요. 근데 전 굉장히 활동적인 타입이었거든요. 운동도 좋아하고 춤도 추고, 근데 최자는 손으로 뭘 만들고 그런걸 좋아하는 타입이었어요. 터미네이터 프라모델 같은걸 만들어와서 시선을 끄는걸 좋아했어요. 뭔가 얼리어답터처럼요. 그래서 '이거 뭐야 얘' 그러면서 제가 먼저 다가갔어요. '덕'력이 있어보이는 아이였죠."
(최자) "전 사춘기가 일찍 와서 내성적이었어요. 개코는 그 당시에 학교에서 인기가 제일 많았고요. 날라리였죠. 춤을 되게 잘 췄어요. 반대항으로 장기자랑하면 혼자 나가서 1등하고 그랬죠. 지금은 머리가 많이 빠졌지만 원래 되게 귀여웠어요. 뭔가 미소년은 아니지만요. 취향상으로는 친해지기 힘들었는데 음악으로 엮였어요. MC해머 같은 미국 래퍼들의 음악에 빠진거예요."
(개코) "중학생이 되면서는 미국에서도 제대로 된 힙합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둘이 돈 모아서 힙합 음반도 사고, 돌려듣고 그랬죠. 완전 힙합 '개'마니아였어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외국곡을 외워서 축제 때 공연하고 그랬어요. 완전 스타였죠. '얘네 완전 흑인 같아'라는 말도 들었고요. 축제에서 노래하고 내려오면 영어 선생님한테 엄청 맞았어요. 선생님이 '내가 영어담당인데 그걸 못 알아들을꺼 같아'라면서요. 왜 영어 랩에 '머더 퍼x''비X'같은 욕이 많이 들어가잖아요. 하하."

기사 이미지

-갑자기 궁금하네요. 이름은 왜 언제부터 그렇게 지은건가요.
(최자) "전 후회하죠. 근데 이게 중학교 때부터 제 별명이었거든요. 개코도 그때부터 별명이고요.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썼죠. 근데 어느 시점부터는 이름을 가지고 너무 많은 얘기들이 나오고 그래서 기분이 나쁠 때도 있죠. 후회 아닌 후회를 좀 하죠. 사실 어머니가 제일 창피해 하고요. 하하."
(개코) "중학교 때 친구가 '넌 코가 사자 코 같아, 아냐 개코같아'라고 해서 개코가 됐어요. 그게 별로 싫지 않았어요. 심지어 그 땐 선생님들도 최자(본명 최재호)야 개코(본명 김윤성)야 불렀으니까요. 근데 아주 먼 미래는 보지 못한거죠. 이제 자식들이 크고 있는데 아빠가 개코니까 그게 좀 창피하죠."
(최자) "'너네 아빠 이름이 최자야? 왜?' 이런 부분이 제가 안고 가야 할 짐인거죠."

-아메바컬쳐의 탄생 이야길 해볼게요.
(개코) "일단 CB Mass로 4년 동안 앨범을 3장 발표했어요. 근데 회사가 망했다고 해서 새 회사를 만들려고 자본금도 빌리고 하는 과정에서 세 멤버간의 다툼이 심해졌죠. 근데 회사가 망한게 아니라 합병이 된거라는 거예요. 계약 기간이 남아있어서 다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인데 빌린 돈도 있고, 우리끼리는 감정도 다 상해있고 그랬죠. 결국은 빚쟁이가 됐어요. 통장에 잔고도 없었고, 셋이 빚을 나눴어요. 부모에게 손을 빌리고 군대나 갈까 했었죠. 너무 힘드니까요. 근데 구원의 손길이 다가왔는데 갑엔터였어요. 우리 빚도 청산해줬고 '와서 음악만 하면된다'고 했거든요. 당시에 브라운아이즈가 소속돼 있었는데 방송도 잘 안하고 뮤직비디오만 예쁘게 찍어서 홍보하는 방식이 참 재미있게 느껴졌어요. 거기서 '링마벨''고백'을 발표하고 우리 스타일을 봐주던 경민 누나(고경민 대표)와 독립을 하게 됐죠."

-그게 아메바컬쳐가 된 거군요.
(최자) "갑엔터와는 계약이 해지될 때 굉장히 편했어요. 사장님이 '너네로 손해본 것도 없고 번것도 없으니 새로운걸 해보고 싶다면 응원해 줄께'라고 하셨거든요. 그리고 다섯이서 시작을 한 거예요. 경민이 누나, 규상이 형, 영렬 씨에 우리 둘까지요. 지금처럼 번화하지 않았던 가로수길에 월세 70만원을 주고 14평짜리 방을 구했고요. 그 안에 테이블하고 녹음실까지 놓았죠. 그 안에서 세 사람은 사무일을 보고 우린 녹음하고 그랬어요. 3년 정도 있었는데 '출첵''솔로' 같은 곡들이 여기에서 나왔죠. 슈프림팀의 미니앨범도 여기서 나왔고요."

-다섯이서 힘들지 않았나요.
(개코) "'출첵'이 나오기 전까진 수입이 없었어요. 직원 월급도 못주는 상황이라 '우리 한달만 다 같이 쉴까' 그랬거든요. 그 때 도망갈 생각을 다들 한 번씩은 했었을 거예요. 그래도 덩치를 작게 시작해서 버틸수 있었죠. 그 이후에 홍대 삼거리 포차 쪽에 2~3년 있었고 지금은 망원역 쪽으로 회사를 옮겼어요. 지금 회사엔 녹음실도 따로있고 직원도 19명이나 되죠. 아티스트까지 서른명이니 6배가 된거네요."

-아메바컬쳐 노력의 결실은 자이언티가 맺은거 같아요.
(개코) "기분 좋죠. 가까이서 보면 이 친구도 이젠 빛과 그림자가 있어요. 일이 많아서 좋지만, 힘들어하는 것도 보이고요. 워낙 재능이 있고 대중이 그걸 알아줬고 선택한 그런 시대가 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은 자이언티죠. 별다른 조언은 없고, 물 많이 마셔 이런 얘기해줘요. 하하."
(최자) "성공하면 변할 수 밖에 없어요. 그래도 자이언티는 이해되는 선에서 변하고 있어요. 아직도 그 이상한 특별함을 가지고 있고요."

엄동진·황미현 기자
사진=박세완 기자

[다듀 취중토크①] "나도 내 이름 후회, 엄마가 제일 창피해해"[다듀 취중토크②] "슈프림팀, 실력은 여전히 의심치 않아"[다듀 취중토크③] "설리는 달라, 예쁘고 어린 여성 취향 아닌데"

'초미니' 아이유, 의도치 않은 노출사고 '치마 사이로...'

성인 女배우의 위엄 '일반인은 꿈도 못 꿀 사이즈'

‘탈의실 성관계女’, 또 다른 영상 유출 ‘충격’

공공장소서 옷 벗겨달라는 女 등장에…‘경악’

소녀 비키니 모델 '벌써 다 여물었구나...'

Copyright © 일간스포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