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문', 불편해서 열광했던 갑을 모두까기 잔혹동화 [종영①]

2015. 6. 3.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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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표재민 기자] '온갖 고난을 극복하고 상류층에 입성한 신데렐라가 행복하게 잘 살았더래요'는 없었다. 상류층의 위선 가득한 권위의식과 '그들만의 세상' 못지않은 속물근성을 드러내는 서민들의 고착화된 종속본능을 까발리며 풍자했던 '풍문으로 들었소'가 안방극장을 떠났다. 블랙 코미디를 표방하는 드라마답게 다른 드라마처럼 완벽한 행복으로 마무리지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 드라마가 지난 3개월여 동안 안방극장에 안긴 재미는 상당했다.

지난 2일 30회로 종영한 SBS 월화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는 제왕적 권력을 누리고 있는 상류층의 위선과 뒤틀린 욕망을 통렬하게 풍자하는 드라마로 출발했다. 30회 동안 방송된 이 드라마는 평일 심야드라마치고는 긴 호흡이었다. 보통 사극이 50회가량 방송되는 경우는 많아도 현대극이 30회 방송하는 경우는 드물다. 꽤나 복잡한 이야기였지만 이 드라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디서 본 듯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새로운 전개 방식으로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드라마가 줄곧 활용하는 반복되는 장치가 없었다.

'아줌마', '아내의 자격', '밀회' 등을 성공시킨 안판석 PD와 정성주 작가가 만들어내는 블랙 코미디는 지상파 드라마에서 보기 힘든 이색적인 장르라는 한계에도 안방극장의 시선을 빼앗았다. 달리 거장이 아니었다. '풍문으로 들었소'는 사실 몰입이 쉬운 드라마는 아니었다. 흥미를 자극하는 재벌들의 이야기도 아니었고, 판타지를 자극하는 멋진 남녀의 사랑을 내세운 것도 아니었다. 보면 볼수록 짜증과 답답한 감정이 솟구쳤지만, 고민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 많아 매력적이었다.

이 드라마는 로펌 대표로서 한국 사회를 뒤흔드는 한정호(유준상 분)의 끝도 없는 무한 권력을 상징하는 어두침침한 분위기가 시종일관 펼쳐졌다. 정호의 로펌 사무실은 비리의 온상이었다. 이 같은 더러운 속살을 알고 있는 소위 말하는 을들 역시 청렴하진 않았다. 상류층의 위선과 이들 주변 혹은 반대편에서 이들이 던져주는 콩고물을 받아먹으며 은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서민들의 속물 행태를 꼬집었다.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거울로 보는 듯 했다.

'풍문으로 들었소'는 마치 '모두 까기'를 하듯 성역 없이 풍자의 대상으로 삼았다. 보통 코미디 드라마가 많이 가진 자들을 도마 위에 올려놓는데 이 드라마는 대상의 구분이 없으니 좀 더 풍성하면서도 식상하지 않은 웃음 장치를 만들어냈다. 그야말로 신데렐라 판타지를 깼다. 갑을 관계를 신랄하게 담으며 동화를 비웃는 잔혹동화와 같았다.

상류층에 입성한 후 인형놀이를 하듯 적응하기 위해 애를 쓴 서봄(고아성 분)이 마지막에 자신의 존엄성을 찾기 위해 이혼 위기까지 가는 이야기가 없었더라면 이 드라마는 끝까지 누가 선인지, 누가 악인지 구분하지 못한 채 뒤엉켰을 터다. 혼란이 가중된 가운데 시작된 봄이의 반란 역시 높은 지지를 이끌진 못했다. 봄이 역시 선한 인물로만 그려지진 않았다.

이 같은 모호해서 더 재밌는 이야기에 시청자 역시 속물근성을 내비쳤다. 봄이와 을들의 반란이 오히려 불편하다는 반응이 있었다. 시청자들이 드라마에서 '재벌들이 잘 먹고 잘 사는 모습을 보며 대리만족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이 드라마에 대한 일부의 불편한 감정 토로를 보며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반란을 주동하는 봄이의 이야기 역시 마냥 정의롭게 다뤄지지 않으며 통쾌하고 짜릿한 감정 유발과 거리가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가 고착화되면서 생기는 우리 사회의 모순이 촘촘하게 담겼고 이 드라마를 받아들이는 안방극장도 그랬다.

흔히 말하는 꿈의 요소가 없었다. 뭔가 울분이 쌓이고 속시원한 구석은 없었지만, 우리 시대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다뤘기에 놓칠 수 없는 드라마였다. 모든 드라마가 쉬운 이야기를 다루고, 현실을 잠시 잊게 하는 판타지를 충족시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풍문으로 들었소'가 보여줬다. 다만 마지막 회는 을들이 똘똘 뭉쳐 정호를 무너뜨릴 가능성을 비치며 어느 정도의 드라마로서의 여지를 남겼다. 마지막 회만 판타지였다.

'풍문으로 들었소'는 10% 초반대의 그리 높지 않은 시청률에도 놀라운 화제성을 자랑했다. 요즘 방송가의 주요 목적인 온라인 화제성이 높았다. 방송 전후로 포털사이트 인기 검색어를 차지하며 드라마의 인기를 증명했다. 정성주 작가가 쓰는 흥미로우면서도 깊은 생각을 하게 하는 이야기와 안판석 감독의 블랙 코미디의 맛을 살리는 세련된 연출은 방송 내내 찬사를 받았다.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맛도 있었다. 유준상과 유호정은 상류층의 소름 끼치는 위선을 연기하면서도 마냥 미워할 수 없게 호감을 샀다. 두 사람이 보여주는 어딘지 모르게 귀여운 구석은 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분명 시원하게 욕을 해야 하는 대상인데 자신도 모르게 응원하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유준상은 이 드라마를 통해 독특한 억양 구사와 실감나는 표정 연기로 빛나는 연기 내공을 자랑했다. 유호정 역시 우아하면서도 거짓 가면을 쓰기 바쁜 최연희로 완벽하게 변신해 기존의 이미지를 깨는데 성공했다.

아이돌 가수 출신 이준은 이 드라마를 통해 한 단계 성숙한 연기를 보여줬고, 방송인 백지연은 첫 연기인데도 자연스러운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안판석 감독이 직접 캐스팅한 연극 배우들의 활약이 컸다. 허정도, 길해연, 윤복인, 서정연 등 연기파 배우들은 이 드라마에서 없어서는 안 될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한편 '풍문으로 들었소' 후속으로는 유이, 성준, 박형식, 임지연 등이 출연하는 '상류사회'가 오는 8일 오후 10시에 첫 방송된다. '상류사회'는 황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재벌 딸과 황금사다리를 오르려는 개천용 두 사람의 불평등한 계급 간 로맨스를 통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와 오포 세대 청춘들에게 희망을 전할 미스터리 청춘 멜로드라마다.

jmpyo@osen.co.kr

<사진> '풍문으로 들었소' 방송화면 캡처, S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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