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탐구] 김명민, 무명생활 통해 강해진 잡초같은 인생

2009. 3. 21. 08: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JES 이동현]

배우 김명민(37)은 대기만성(大器晩成)라는 표현에 가장 어울리는 스타다. 그에게 화려한 청춘 스타의 시절은 찾을 수 없다. 20대의 김명민은 연기자였지만 철저히 무명이었다. 30대에 접어들어 이름 석자를 알리기 시작했으나 주목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다가 32세 때 KBS 1TV 대하 사극 '불멸의 이순신'을 만났다. 운명과도 같은 이 작품은 사실 김명민이 할 게 아니었다. 그러나 먼저 캐스팅된 배우들의 출연이 무산되면서 우려곡절 끝에 그가 최후의 타이틀롤이 됐다.

캐스팅 단계부터 난항을 겪었던 터라 드라마는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김명민과 영웅 이순신을 동일시하기 어렵다는 선입견들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김명민은 묵묵히 자신만의 이순신을 창조해갔다. 회를 거듭하면서 결국 주위의 우려를 깨끗이 씻고 명실상부한 역사 속 영웅으로 다시 태어났다.

촬영장에는 김명민을 "장군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심지어 100원짜리 동전의 이순신 상과 얼굴이 똑같다는 찬사까지 이어졌다. 이순신이 곧 그였고, 그가 이순신이었다.

사람들은 거기까지 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번쯤은 운이 좋을 수도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이후 보란듯이 히트작을 쏟아냈다. MBC TV '하얀거탑'과 '베토벤 바이러스'를 거치며 특급 스타의 반열에 올라섰다. 영화 '무방비도시'도 평단의 호평을 얻었다.

김명민은 학창 시절부터 연기 지망생이었다. 충암고 재학 시절 연극반에서 활동하며 연기의 꿈을 키우다가 서울예대 연극과에 진학했다. 대학 때는 학교 주최 연극에서 항상 앞장서는 모범생이었다. 그는 "수업은 그다지 열심히 듣지 않았다. 그렇지만 연극 행사는 단 한번도 빼먹지 않았다. 며칠씩 밤을 세우기도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명민은 1996년 SBS 공채 탤런트로 선발돼 본격적으로 연기자의 길에 뛰어들었다. 2년여간 단역을 전전했다. 좀처럼 부각될 기회를 잡지 못했다. 이에 그는 성실함으로 승부했다. 매일 방송국 드라마국을 찾아가 PD들에게 건강음료를 돌리며 인사했다. PD들도 그런 김명민의 착실함에 높은 점수를 줬다.

그러나 이 무렵 첫번째 시행착오를 겪었다. 매니저가 "연기자가 직접 음료나 돌리는 건 값싸게 보인다. 모든 걸 내게 맡기고 따라오라"며 중단시킨 일이었다. 김명민은 매니저의 말을 따랐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갈수록 줄어드는 연기 기회였다.

영화계를 노크하면서도 김명민은 시련을 맛봤다. 1999년 영화 '공포택시'에 주인공으로 깜짝 발탁돼 촬영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돌연 주인공이 이서진으로 교체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좌절한 일이었다.

이후 1년여 방황하던 김명민은 MBC TV 드라마 '뜨거운 것이 좋아'와 영화 '소름'을 통해 비로소 이름 석자를 알렸다. 특히 '소름'에선 광기어린 살인마 택시기사를 연기해 극찬을 받았다. 영화 흥행은 부진했지만 연기력 만큼은 확실히 인정 받았다.

그래도 좀처럼 빛은 보이지 않았다. 이후 김명민은 몇편의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했지만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았다. 스스로 큰 기대를 품고 출연한 노희경 작가의 KBS 2TV '꽃보다 아름다워'는 연기자로서 벽과 한계를 느끼게 했다. 촬영 중이던 영화 '선수가라사대'와 '스턴트맨'은 크랭크 업 직전 무산되는 아픔을 겪었다.

그 무렵 첫아들 재하가 태어났다. 더 이상 연기자로는 당당한 아버지가 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연기 활동을 완전히 접고 이민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는 "집과 자동차 등 모든 재산을 처분했다. 뉴질랜드에 집과 직장까지 다 알아봐뒀다. 그때만 해도 어떤 걸 해도 연기보다 잘 풀릴 거란 생각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때 그에게 기적 같은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불멸의 이순신'이었다. 김명민은 아직 만족하지 않는다. 그에겐 아직 숙제가 있다. 영화에서 만족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최근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에서 루게릭병 환자로 투혼을 불사르고 있다. 이제는 흔들리지 않기에 거침없이 앞으로 나갈 것이다.

이동현 기자 [kulkuri7@joongang.co.kr]

[스타탐구] 김명민, 무명생활 통해 강해진 잡초같은 인생

[스타탐구] 김명민, 끊임없이 완벽을 추구하는 욕심쟁이

[취중토크①] 이미연 "완벽주의자가 꿈꾸는 해피엔딩"

[취중토크②] 이미연 "인연 소중하다면 매니저와 싸울일 없죠"

[취중토크③] 이미연 "재혼? 이기적인 남자는 이제 사양할래요"

[취중토크④] 이미연 오프 더 레코드 "이것만은 말못해"

[취중토크⑤] 이미연 친필 퀴즈 인터뷰…F4 이름 줄줄~

콤팩트 IS일간스포츠, 재미씨가 낸 퀴즈풀고 노트북 받자!

중앙 엔터테인먼트&스포츠(JES)

- 저작권자 ⓒJES,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일간스포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