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묻는다]허물조차 사랑할 수 있나요?

2008. 8. 14.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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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엑스파일

비판적인 사랑이 사랑입니까.

스크린 위로 커다란 'X'자가 등장하고 마크 스노의 기묘한 음악이 흘러나온 순간, 전 기자가 아니라 10여년 전의 '엑스필'(X-Philes)로 돌아갈 시간임을 알았습니다. '엑스필'은 1993~2002년 방영돼 세계적인 인기를 모은 미국 TV시리즈 '엑스파일'의 팬들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언제나 침착한 표정의 데이나 스컬리, 그 사이 수염을 텁수룩하게 기른 폭스 멀더가 등장했을 때, 그동안 영화기자로 견지했던 비판적 이성은 마비되고 말았습니다.

13일 개봉한 '엑스파일: 나는 믿고 싶다'는 TV시리즈 종영 후 6년 만에 나온 극장판입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 내에서 초자연적인 현상을 담당하던 엑스파일 부서가 해체된 후, 스컬리 요원은 FBI를 떠나 의사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멀더 역시 FBI를 떠나 시골에 은둔했습니다. 마침 FBI 요원 실종사건이 일어나고, 영매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는 가톨릭 신부가 잘린 한쪽 팔을 찾아냅니다. FBI는 스컬리를 통해 멀더의 도움을 요청하고, 멀더는 오랜만에 현장으로 나섭니다.

98년 나온 첫번째 극장판이 외계인의 존재, 정부 음모론 등을 다룬 데 비해 이번에는 지상의 초자연적 현상, 이성을 넘어선 믿음의 문제 등을 다룹니다. 스컬리는 난치병을 앓는 어린이 환자를 두고 고통스러운 치료를 계속해야 할지, 신의 섭리에 맡겨야 할지 고민합니다. '사귀느냐 마느냐'를 두고 팬들이 두 편으로 갈려 논쟁을 벌일 정도로 민감한 주제였던 멀더와 스컬리의 로맨스는 흘러간 세월이 반영된 듯 꽤 진전됐습니다. TV 시리즈를 통해 익숙했던 조연 한 명이 영화 종반부에 깜짝 등장했을 때는 반가움에 환성을 지를 뻔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당신에게 권하겠느냐고요. 쉽게 그렇게 하지는 못하겠습니다. '다크 나이트'의 흥행에 밀려 '엑스파일: 나는 믿고 싶다'의 미국내 흥행 성적은 신통치 않았습니다. 주인공들의 내적 갈등에 집중했기 때문인지 긴박감도 덜합니다. 현지에선 '맥빠진 스릴러'라는 평도 나오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전 이 영화가 나쁘다고 말할 자신도 없습니다. 10대 후반~20대를 통해 애정을 바친 드라마, 배우들을 어찌 그리 쉽게 저버리겠습니까. 팬은 비평가가 아닙니다. 모든 허물을 일단 모른 체한 뒤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이야말로 진짜 팬입니다.

젊은 엄마와 갓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아기가 서둘러 걷다 넘어져 울음을 터뜨리자 엄마는 달려가 "때찌, 때찌, 이 나쁜 땅바닥!"하며 손으로 땅바닥을 때려주더군요. 아기는 험악한 땅바닥에 맞서 무조건 자기 편을 들어준 엄마 품에 안겨 금세 울음을 그쳤습니다.

이제 와 따져보니 제가 언제, 왜 '엑스파일'의 팬이 됐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B급 SF영화 같은 분위기, 멀더와 스컬리의 기묘한 조화, 심각한 척하다가 엉뚱한 곳에서 터지는 유머. 어느 대답 하나를 대기엔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무조건적이고 불합리하며 타인의 이해를 바라지도 않는 것, 왜 좋아하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좋아하는 것. 이른바 '팬심(心)'은 그런 것입니다. 어디 팬뿐이겠습니까. 연인, 부모의 사랑도 원래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백승찬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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