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진과 김두한, 김을동과 송일국' 4대 이야기

2006. 6. 14.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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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들을 살리는 게 자신의 책임과 의무이다보니 가족에 대해선 굉장히 무심하셨어요. 그러니 가족들이 어떻게 살았겠어요?"

독립운동가 김좌진의 아내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김좌진의 아들 김두한은, 또 김두한의 아내는 어떤 결혼을 했던 것일까? 김을동이 말하는 안동 김씨 4대 이야기를 CBS 라디오 '공지영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에서 들어본다.

( 이하 방송 내용 )

▶ 진행 : 공지영 (CBS 아주 특별한 인터뷰)▶ 출연 : 배우 김을동

-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잘 지내요. 요즘 아들이 잘 나가는 바람에.

- 요즘 송일국 씨가 아주 멋지던데요.

근데 나는 우리 아들 멋있다는 사람 보면 진짜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면 나는 예쁜 남자 좋아하거든요.(웃음) 배용준 씨나 원빈 씨 같은 사람들요. 일본 사람들의 욘사마 열풍을 한국 여자들은 이해가 안된다고 하는데 전 너무 좋아해요. 그게 다 취향이겠죠. 제 아들은 남자답게 선이 있다보니까 좋아하는 분들도 많으신 것 같더라고요. 제가 그동안 장군의 손녀, 투사의 딸, 탤런트 김을동, 일국이 엄마 소리를 들어 왔는데, 일국이 엄마 소리 들을 때가 가장 뿌듯해요. 하지만 좋은 반면 엄마 마음이란 게 항상 걱정이 앞서서 혹시 실수하지 않을까 싶죠.

- 그동안 여러 일을 해오셨지만 '김을동은 천상 연기자'라는 표현이 가장 잘 맞겠죠?

이 세상 어떤 직업도 연기자만큼 매력있는 직업은 없는 것 같아요. 정말 내가 연기자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을까 생각한 적이 많았어요. 제가 일종의 사명감 때문에 뭔가 해야 할 것 같아서 정치도 하고 사업도 했는데, 그러면서도 항상 이성보다 감성이 앞섰어요. 그럴 때 내 자신이 천상 연기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정치 활동 하셨을 때 가장 힘들었던 점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순진하잖아요. 그래서 보통 때는 누구나 저에게 달려와서 반갑게 악수를 해요. 하지만 선거철엔 지지하는 당이 다르면 악수도 안 하려고 해요. 선거만 아니면 모든 사람들이 다 저같은 사람들은 좋아하죠. 왜냐면 제가 예쁘지 않고 동네 아줌마 같으니까 오해받을 일이 없잖아요. 그래서 남자들도 반갑게 인사를 해요. 근데 선거 때는 당이 다르면 모른 척 하시더라고요. 하지만 사실 저 같은 경우는 수월한 거에요. 그나마 저는 얼굴이 알려졌기 때문에 사람들이 호감을 갖고 잘 받아주는 편이었죠. 다른 후보들이 그런 점을 참 부러워했어요. 다른 후보들은 악수하고 얼굴 알리는 게 굉장히 힘들어요.

- 근데 왜 '더 이상의 정치 활동은 없다'고 하셨나요?

정말 올바른 일을 해도 당이 다르면 올바로 봐주지 않으려는 시각이 있어요. 그게 나에게만 국한된다면 참을 수 있는데, 자식에게까지 이어지잖아요.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혹시 나의 것이 잘못 전달되어서 자식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라는 우려 때문에 너무 조심스러웠어요. 사실 제 아버지도 평생 야당을 하셔서 저도 피해를 받았어요. 근데 저는 괜찮아요. 하지만 이것이 또 대물림이 된다고 생각을 하니까. 나는 아들에게 나의 아픔을 대물려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 아들은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아야 하는데, 제가 정치를 하면 다른 시각으로 아들이 비춰지지 않을까 싶었죠.

- 아버지에 대한 선입견이나 오해 중 바로잡고 싶은 것이 있다면?

아버지가 8살 때 어머니마저 돌아가시면서 다 잃으셨어요. 그때 할아버지는 만주에 계셨고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청계천 다리 밑에서 깡통밥 얻어먹으면서 자라셨어요. 아버지는 삼촌 손에 의해 딱 한번 할아버지 얼굴을 구경할 정도였죠. 문제는 사랑을 받은 사람이 사랑을 할 줄 알고, 가족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 부모가 어떤 위치라는 것도 알잖아요. 그런데 아버지는 사랑을 받아본 적도 없고, 어머니에 대한 것도 모르고, 동료들과 더불어 살았기 때문에 자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동료였던 거에요.

동료들을 살리는 게 자신의 책임과 의무이다보니 가족에 대해선 굉장히 무심하셨어요. 그래서 아버지에 대해 원망을 많이 했어요. 아버지가 국회의원을 2번이나 지내셨는데도 대한민국에 김두한이라는 이름으로 재산권이 등재된 적이 한번도 없었어요. 그러니 가족들이 어떻게 살았겠어요.오로지 아버지께서 생각하셨던 건 '어차피 이 집안에 태어난 건 내 몫'이라는 거였죠. 어떤 좋은 조건에서의 유혹이 있어도 항상 할아버지 생각하면서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던 거에요. 저도 그렇고요. 저라고 유혹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자존심을 버리고 이익을 위해 간다면 그건 1대도 아니고 2대에 걸쳐서 무너지는 거잖아요. 그런 게 항상 버팀목이 되었어요.

- 그럼 생활은 어떻게 하셨나요?

어머니가 삯바느질을 하셨죠. 저희 어머니가 예순 넘어서 돌아가셨는데요. 30여 년을 숯내를 맡으셔서 만성 가스중독 때문에 마비가 돼서 돌아가셨어요.

- 어린 시절 얘기 좀 해주세요.

할머니가 너무 무서운 분이셨어요. 어린 마음에 '저 할머니 언제 돌아가시나' 싶을 정도로 무서운 할머니였죠. 그리고 저는 동요 배우기 전에 독립군가를 먼저 배웠어요. 할아버지 친구들이 해방된 후에 오셔서 부르는 노래가 죄다 독립군가였죠. 게다가 안동 김씨 양반집안이라고 해서 삼강오륜을 외우면서 자랐어요. 그때는 그게 그렇게 싫었는데, 그런 할머니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래도 지금 내가 할 일을 찾아서 할아버지 기념 사업회를 이끌어나가게 된 것 같아요. 우리 할머니가 얼마나 지독한 분이시냐면요.

요즘 남북한이 공동으로 안중근 의사 유해를 찾는다고 하는데, 유일하게 김좌진 장군 유해만 대한민국에 안장이 되어 있어요. 왜냐면 김좌진 장군이 해방 15년 전에 돌아가셨는데요. 해방 12년 전,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암살 당한 뒤 3년 후에 할머니가 호미 하나 들고 몰래 만주에 들어가셨어요. 밤중에 무덤을 파서 뼈를 다 골라내서 백지에 싸서 이불 보따리로 가장해서 할아버지 유해를 갖고 오신 거에요. 남편의 유해는 내 조국에 묻어야 한다면서 목숨을 내걸고 한국에 그 유해를 가져오신 분이에요.

우리나라가 해방되고 나서 50년 동안 중국과 교류가 없었기 때문에 다른 순국선열들의 유해는 어디 있는지 모르잖아요. 우리 할머니가 밤중에 무덤을 파서 뼈채 갖고 와서 남의 산소에 가매장을 했다가 해방된 후에 어머니의 선산인 충남 보령에 묻은 거죠. 그런 지독한 할머니 밑에서 자라서 저도 지금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 예전에 김좌진 장군 집안의 규모는 어느 정도였나요?

가노가 45명 있었다고 해요. 안동 김씨의 엄청난 세도가였는데, 저희 11촌 백부가 김옥균 선생이셨어요. 그러니까 항상 개화사상이 있었죠. 그래서 나라가 망했는데 무슨 가노냐고 해서 하루 아침에 불살라버렸어요. 그래서 21살에 옥고를 3년 치르고 만주로 망명을 하셨는데요. 김좌진 장군은 군인 이전에 사상가셨어요. 어디에서 뭘 하든 학교를 세우는 게 일이었어요. 그래서 지금도 흑룡강성 하이린시에 가면 김좌진 장군이 돌아가시기 전에 주둔하시면서 세운 80년 이상 된 학교가 있어요.

- 부모님은 어떻게 결혼하셨나요?

아버지가 참 희한한 분이세요. 아버지 나이에 협객이라고 하면 보통 기생들하고 가장 잘 어울리잖아요. 근데 아버지는 27살 때 아버지의 할머니에게 가서 '저는 김가 양반의 씨입니다. 양반의 씨를 지켜야 하니 매파를 놔서 결혼을 시켜 주십시오'라고 했대요. 그러니까 할머니가 얼마나 웃겼겠어요. 그때만 해도 말 안 듣는 천둥벌거숭이 손주였는데, 그런 손주가 양반의 씨를 지키겠다면서 매파를 놔서 장가를 보내주십시오 라고 했으니. 그래서 할머니가 매파를 놔서 수소문을 해서 엄마와 결혼을 시킨 거에요.

엄마는 아버지 얼굴도 못 보고 결혼을 했는데, 결혼식장에서 사람들이 '깡패 김두한'이라고 수근댔대요. 근데 엄마는 깡패가 무슨 말인지도 몰랐대요. 그럴 정도로 워낙 요조숙녀였던 거죠. 아버지는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양반가의 딸을 집에 박아놓고 어른들을 모시라고 하고서는 당신 자신은 밖으로 나가신 거에요. 어머니가 우스개소리로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않겠냐고 하실 정도로 어머니는 저 하나 키우시면서 사셨어요. 아버지는 늘 밖으로 다니시고. 그러다가 10년 만에 집에 오시면 마치 아침에 나갔다가 점심에 들어온 사람마냥 '여보, 나 왔어!'라고 하시는 거에요. 그러면 어머니는 또 '네, 어서 오십시오' 하고.

- 김을동 씨는 언제부터 연기를 하셨나요?

중학교 2학년 때 우연히 여성국극을 봤어요. 근사하고 멋있더라고요. 그래서 삯바느질 하는 엄마한테 참고서 산다고 거짓말 하면서 공연을 보러 다녔어요. 엄마는 댓돌 위에 딸 신발 나란히 있는 걸 보는 게 소원이었대요. 그럴 정도로 제가 워낙 철딱서니 없는 딸이었죠. 늘 공연을 보고, 주말이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는 공연을 죄다 봤죠. 그렇게 많이 보다 보니 나중엔 '저 배우가 저렇게 대사 하는 걸 보니 오늘은 컨디션이 안 좋구나' 할 정도가 됐죠. 완전히 광이었어요.

그래서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연극반에 들어갔는데, 전 사흘 만에 주인공이 됐어요. 다른 친구들은 발음도 시원찮은데, 전 그동안 공연 쫓아다니면서 바친 돈이 얼마겠어요 . 그래서 연극반에 들어간 지 사흘 만에 춘향전의 방자 역을 맡았죠. 근데 그때 분장해주러 온 선생님을 먼훗날 제가 연극할 때 다시 만나게 됐어요. 그 분이 절 기억하시면서 "고등학교 때 방자를 했던 김을동 아니냐, 그 때 참 기가 막히게 잘 했는데 왜 티비를 안하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제 인물 가지고 어떻게 티비를 하겠습니까"라고 말했죠. 그때는 장미희 씨, 정윤희 씨 같은 분이 인기 있었거든요. 근데 그 분이 방송국에 절 추천해 주셨어요. 그때 처음으로 티비를 했죠. 결국 고등학교 때 방자를 한 것 때문에 데뷔를 하게 된 거에요.

- 집에서는 반대하지 않았나요?

아버지도 밤낮 우미관에서 구경을 하셨대요. 아버지가 국회의원 하셨을 때도 어디서 김좌진 장군 드라마를 한다면서 소품이 필요하다고 하면 총을 한 트럭 싣고 오시고. 그럴 정도로 아버지가 연극에 대해 환상이 있었어요. 그래서 반대를 안 하셨어요.

- 남편과는 어떻게 만나셨나요?

제가 정치외교학과를 나왔는데요. 국회의원 중에 김옥선 의원이라고 계신데 그분 다음으로 10년 만에 여자가 처음 들어간 거였어요. 그때는 김을동 최고의 끗발을 날리던 시기였죠. 제가 홍일점이었거든요. 등퇴교 할 때도 보디가드가 있을 정도로 괜찮았죠. 그러다가 제가 1학년 때 웅변대회를 나가서 총장상을 받았어요. 그리고나서 2학년이 됐는데 남편이 저에게 오더니 "작년에 웅변대회에서 상을 타지 않았느냐, 내가 이번에 나가는데 좀 도와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처음 만나게 됐죠.

- 아버님께 인사하러 갔을 때 어떠셨나요?

보통 아버님들에겐 결혼조건이란 게 있잖아요. 우리 아버지는 결혼조건은 딱 두 가지였어요. 일제시대 때 순사의 아들은 안된다, 그리고 고리대금업자 아들 안된다. 이거 뿐이에요. 순사한테 하도 맞아서, 그리고 고리대금업자한테 돈 없어서 얼마나 당했던지. 그 외에 학벌이나 나이나 인물 같은 건 전혀 보지 않으셨어요. 그러고보면 우리 아버지가 현명해요. 당신이 내세울 게 뭐가 있었겠어요. 그러니까 딱 두 가지 내세우고 끝이에요. 남편이 저희 아버지를 처음 만나던 날, 아버지가 1분 동안 가만히 쳐다보는 거에요. 그러니 남편은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그러다가 아버지가 대뜸 "이봐, 여자는 말이야, 사흘에 한번씩 쥐어 패"라고 말하고는 끝이었어요. 맘에 들었다는 거죠. 그게 끝이에요. 그러고는 요즘 세태가 어떻다느니 요즘 정치는 어떻다느니 하는 말씀만 하시더라고요. 정말 희한한 양반이죠.

- 앞으로의 계획은?

전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살고 있어요. 아들이 이렇게 사랑을 받는 것, 제가 이런 가문에 태어나서 당당하게 살고 있는 것에 감사해요. 또 그 당당함을 저희 후손들에게 대물림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내 자신이 당당하고 비굴하지 않게 살아야 해요. 그리고 우리 가족 전체가 건강한 것. 그게 저의 소망이에요. 정신과 육체가 건강하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 진행 : 공지영

▶ CBS 아주 특별한 인터뷰 (월~토 오후 4시 5분~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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