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 그 징글징글한 중독성

2005. 11. 3.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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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스타뉴스 김관명 기자]

왜일까. 무엇이 사극에 빠져들게 하는가. 시작은 미미했으되 끝은 장대한 이 사극의 매력. 한번 열풍이 불면 전국이 들썩거릴 정도로 거세지는 사극의 마력은 과연 어디서 오는가.

조현재 이보영 류진 주연의 SBS 월화사극 '서동요'. 요즘 이 드라마는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백제 성왕의 수급을 되찾는 과정에서 보여준 추리극 같은 재미, 목라수(이창훈)를 인간적으로 존경하게 된 사택기루(류진)의 번뇌, 님을 향한 선화공주(이보영)의 아련한 일편단심. 무엇보다 수급을 찾는 과정에서 보여준 장(조현재)의 다재다능함과 용맹이란. 1일 17회 방송분 시청률은 16.4%(TNS집계)를 기록했다.

손창민 정보석 서지혜 김혜리 주연의 MBC 주말사극 '신돈'. 아직은 타이틀롤 신돈(손창민)의 활약이 미미한 상태이지만 이 빈자리를 커버하는 두 인물이 있다. 훗날 고려의 31대 임금이 되는 강릉대군(정보석)과 노국공주(서지혜)다. 둘의 존재감은 매우 자극적이다. 여기에 고려인이되 악녀를 자처한 한많은 기황후(김혜리)까지. 지난 30일 11회 방송분은 11%를 기록했다. 희망이 보이는 수치다.

'서동요'와 '신돈'은 현재 시청률만으로는 명성 자자한 선배 사극은 물론 '프라하의 연인' 같은 경쟁 미니시리즈에게조차 명함을 내밀 수 없다. 그러나 그 누가 이들의 미래까지 어두울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시청률로 증명된 사극의 힘

전광렬 황수정 주연의 '허준'은 2000년 6월27일 무려 64.4%라는 기록적인 시청률을 보였다. '첫사랑' '사랑이 뭐길래' '모래시계'에 이은 역대 4위의 성적(AGB닐슨 집계). 평균시청률 역시 48.9%라는 놀라운 수치를 보였다. 드라마가 방송되는 내내 전국 시청가구의 절반이 '허준'을 빼놓지 않고 봤다는 것이다.

최수종 김영철 서인석 세 주인공의 기싸움이 볼만했던 '태조왕건' 역시 2001년 5월20일 60.2%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영애의 고난극복기 '대장금'도 최고시청률 57.8%, 평균시청률 45.7%를 기록했다.

모든 사극이 이처럼 호성적을 거둔 것은 아니지만, 최소 50부작 이상인 사극이 일단 흐름을 타고 탄력을 받으면 그 폭발력은 16~24부작 미니시리즈는 비교가 안된다. 이것이 마니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시청자까지 끌어들이는 사극의 중독성이다.

사극의 폭발력..정치 경제 사회를 뒤흔든다

1997년 '용의 눈물'에서 태종 이방원 역을 연기한 유동근의 인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듯 했다. 아버지 이성계를 몰아내고 두차례 왕자의 난의 한가운데 있던 역사속 이방원은 유동근의 굵은 목소리와 신들린 연기에 현실속 이방원이 됐다. 유동근은 그해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들의 찬조연설자 섭외 1순위였다.

유동근 뿐만이 아니다. 정도전 역을 맡았던 중견탤런트 김흥기는 지략가 정도전이 학계에서 새롭게 조명되면서 대학특강에 여러번 초청됐다. 의료사극 '허준'의 전광렬, 허준의 스승 유의태 역의 이순재에게도 당시 의료벤처기업 홍보이사 제의가 끊이지 않았다. 허준도 허준이지만 자신의 몸까지 해부용으로 내건 유의태의 장엄미는 결코 잊을 수가 없다.

물론 등장인물만 화제가 된 것은 아니다. '허준'에서 역병에 효과가 있다고 소개된 매실의 수요는 방영 전에 비해 40% 이상 치솟았고, '용의 눈물'에 출연한 말 엉덩이에 'DJ' 낙인이 찍혀있어 또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여인천하'에서 경빈 박씨(도지원)의 "뭬야?"는 그해 최대의 유행어였다.

사극의 매력 1. 주연이 좀 못해도 괜찮아..우리가 있잖아

조연의 힘이야 모든 드라마에서 통용되는 것이지만 사극은 더 강하다. 워낙 출연배우가 많아 조연들이 몇초 안되는 자기 분량에 온 내공을 바치는 덕분이다. 또한 사극의 조연들 대부분은 연기인생 베테랑들. 그 배우들의 한마디에는, 표정 하나에는 넘볼 수 없는 공력이 깃들어 있다.

'허준'에서 핵폭탄급 폭소를 전한 임현식을 그 누가 잊을 수 있을까. 또한 '용의 눈물'에서 서슬퍼런 그러나 결국 쓸쓸히 퇴장하고 만 이성계 역의 고 김무생의 카리스마는? 이방원의 킹메이커였던 이숙번(선동혁)의 그 선굵은 연기 또한 지금도 눈에 생생하다.

그렇다고 조연들 기세에 주연이 밀릴까. '태조왕건'의 최수종 김영철 서인석은 난형난제라 할 만큼 저마다의 카리스마를 뿜어냈다. 외눈 궁예의 사내다움과 분노, 왕건의 부드러운 포용력, 견훤의 난세를 헤쳐가는 처세력. 처음에는 궁예의 독무대였으나 결국 세 인물은 한치의 양보도 없이 연기대결을 펼쳤다.

그러면 '신돈'과 '서동요'는? 사실 신돈 역의 손창민은 아직 뭔가 강렬한 흡인력을 보여주지 못한다. 그러나 강릉대군(정보석)과 노국공주(서지혜), 기황후(김혜리)가 있다. 훗날 만주땅을 다시 가져올 공민왕의 웅지를 숨긴 강릉대군의 슬픔과 야망, 이국 고려인을 사랑하게된 노국공주의 명민함과 서슬퍼런 군기잡기, 그리고 한많은 고려 공녀의 삶에서 악녀 근성만 남은 기황후까지. '신돈'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숨은 잠룡이다.

'서동요' 역시 우려했던 서동 역의 조현재의 연기가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이 시대 사표로 삼을 만한 목라수 역의 이창훈, 좌충우돌 부여선 역의 김영호 등 '서동요'의 조연진 역시 탄탄하다. 하늘재의 웃음보따리 임현식의 애드리브를 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사극의 매력 2. 어, 국사시간에 배운 건데..

'태정태세문단세..' 역사는 국사시간에만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조선왕조 오백년'의 '설중매' 편에서 한명회(정진)가 "이 손 안에 있소이다"라고 수양대군에게 자신만만한 계략을 펼쳐보일 때, 역사는 살아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또한 이방원(유동근)이 아버지 이성계(고 김무생)를 제압하고, 개국공신 정도전(김흥기)이 이방원파에 의해 기습적으로 살해될 때 역사는 진한 비린내를 풍기며 화면 밖으로 뛰쳐나왔다.

'신돈'과 '서동요' 역시 마찬가지. 원나라 왕의 제1황후인 기황후가 고려인이라는 역사적 사실은, 짙은 화장을 한 김혜리의 극중 고백으로 너무나 당연한 일이 됐다. 공민왕의 아내가 고려인이 아닌 몽골족이었다는 사실도, 사내 같은 노국공주의 눈물로 그 생생함을 더했다.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정을 통해두고, 맛동 도련님을 밤에 몰래 안고간다'. 4구체 향가로만 알고 있던 선화공주와 서동의 징한 사랑. 백제 위덕왕과 신라 진평왕 시절을 배경으로 한 이 두 사람의 사랑은 배우 조현재와 이보영의 대화와 행동거지로 비로소 '현실'이 됐다. 또한 성왕의 수급 문제로 전장에서 만나서도 서로 예를 다하는 백제와 신라의 감동적인 모습. TV사극이 선사하는 또다른 재미다.

사극의 매력 3. 역시 결론은 연기 잘하는 배우들, 글 잘 쓰는 작가의 힘!

'용의 눈물' '설중매' '한명회' '왕과 비' '장녹수' '조광조' '대장금' '서궁' '장희빈' '상도' '태양인 이제마' '해신' '불멸의 이순신'..사극이 옛 사실과 인간군상을 그리기에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 음모와 계략, 웅비와 도전, 질투와 시기, 한과 사랑..이 모든 것을 담은 드라마는 진정 사극 뿐이다.

그러나 이같은 원초적 장점을 가진 사극도 연기 잘하는 배우가 없다면, 그리고 글 잘 쓰는 작가가 없었다면?

최수종 김영철 서인석 이영애 양미경 강수연 전인화 유동근 김혜수 전광렬..이들 중 누구 하나 연기 못한다고 비판할 시청자가 어디 있을까. 사극은 트렌디에서 자유롭기에 얼굴로만 승부하려는 젊은 스타를 애써 찾지 않아도 된다. 이것이 사극이 갖는 최대 장점이다. 눈빛 하나로 치고 올라오는 개국공신 세력을 제압했던, 그래서 시청자 가슴까지 서늘케 했던 유동근은 역시 사극에서 더욱 빛났다.

원숙한 인생관을 가진 작가들의 몫도 빼놓을 수 없다. '왕과 비' '신돈'의 정하연, '용의 눈물' '태조 왕건'의 이환경, '대장금' '서동요'의 김영현, '상도' '허준'의 최완규. 인생을 망라해서 조목조목 보여주려는 사극이기에 이들 작가의 혜안과 글솜씨는 감각으로만, 멋진 대사로만 승부하려는 요즘 일부 작가와는 분명 다른 깊은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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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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