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강남민심도 변하게 했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2014. 5. 24.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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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 51.4% vs 박원순 27.4%에서 사고 후 정몽준 40.8% vs 박원순 39.5%로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서 오세훈 당시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는 '천당과 지옥'을 동시에 경험했다. 선거일 직전 많은 여론조사에서 오 후보는 한명숙 민주당 후보에게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다. 개표 초반 한 후보가 앞서는 것으로 나오면서 지방선거 최대 이변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다음날 새벽 강남3구의 투표함이 열리면서 오 후보는 가까스로 당선되었다. 1년여 뒤,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도 양상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울시장의 사퇴로 이어진 무상급식 찬반투표에서 강남3구의 참여는 상대적으로 적극적이었다. 서울시 전체 투표율은 25.7%에 그쳤다. 서초구는 가장 높은 36.2%의 투표율을 기록했고, 그 다음이 강남구와 송파구 순이었다.

하지만 2010년 지방선거와 2011년 무상급식에는 분명한 온도차가 있었다. 서초와 강남의 주민투표율이 상대적으로 높기는 했지만 10명 중 7명 가까이는 참여하지 않았다. 송파구는 30.6%의 투표율로 개표 가능한 33.3%에 미치지 못했다. 2012년 대선에서도 송파구를 중심으로 기존 선입견(강남3구 하면 으레 보수정당 또는 보수후보에게 몰표를 줄 것이라는 생각)에 대한 '강남 대반란'의 전조가 감지됐다. 서초구, 강남구, 송파구 전체적으로는 박근혜 후보가 문재인 후보를 앞섰다. 그러나 송파구의 풍납동, 성내동 등과 서초구의 양재2동 등에서 문 후보가 박 후보를 앞섰다. 2011년 10월,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는 강남3구의 더 많은 동네에서 민주당의 박원순 후보가 한나라당의 나경원 후보를 앞섰다. 송파구는 단연 '강남 대반란'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투표일이 얼마 남지 않은 지방선거에서도 강남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리서치앤리서치의 2월 24일 조사(서울시민 700명. 유무선RDD조사.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7%P. 응답률 17.3%)에서 박원순 후보의 강남4구(강동구 포함) 지지율은 27.4%에 그쳤다. 정몽준 후보는 51.4%로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벌어져 있었다. 그러나 세월호 사고 이후 5월 13일 조사(서울시민 700명. 유무선RDD조사.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7%P. 응답률 11.5%)에서는 정 후보가 40.8%, 박 후보가 39.5%로 거의 차이가 없었다. 새누리당 후보가 훨씬 우세할 것이란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가 2012년 12월 18일 서울 강남역 앞에서 열린 유세에서 지지와 투표 참여를 호소하고 있다./강윤중 기자

지방선거 앞두고 나타나는 변화

강남3구 유권자들의 변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러한 변화는 왜 발생한 것일까. 세월호 사고는 어떤 영향을 끼친 것일까. 도시 모습이 갖춰지면서 유입 인구의 특성, 과거 정치적 환경에 대한 지역주민의 반응, 거주민의 원래 출신지역, 직업 분포, 선거 때의 정책과 지역 관련성 등 다양한 원인을 들 수 있다. 우선 강남3구 유권자들은 국가 정체성(국가운영이념)과 생활경제에 있어서는 보수적이다. 강남3구에 거주 가능하다는 것은 적어도 중산층 이상의 경제력을 요구한다. 상대적으로 비싼 거주비용, 다른 어떤 곳보다도 열성적인 사교육 등은 웬만한 경제력으론 감당하기 힘들다. 정부의 부동산정책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이기도 하다. 교육문제에 있어서도 매우 보수적이다. 지난 교육감 보궐선거에서 문용린 후보에게 60%를 훨씬 웃도는 몰표가 나온 곳이 강남3구다. 대통령의 대북정책과 한·미관계를 중심으로 한 외교·안보에 대해서도 다른 곳에 비해 더 우호적이다. 대선과 총선에서는 국가 전반의 이념적 정체성과 경제정책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강남3구의 보수 지향적 호응도가 매우 높다. 지역의 이해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매우 보수적인 태도를 보인다. 결과적으로 강남3구는 국가 이념과 실물경제에 있어 보수적인 곳이다. 2012년 11월 서울시민 15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월드리서치. 전화면접조사.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2.5%)에서 보수층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서초구(58.3%)였다. 강남권이 전반적으로 보수 비율이 높았지만 변화를 엿볼 수 있다. 강남구는 36.7%, 송파구는 35%로 보수 비율이 도봉, 금천, 구로, 강서, 강동구보다 낮았다. '강남 대반란'이 이해되는 대목이다.

강남3구 유권자들을 설명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요소는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는 진보적이라는 것이다.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투표율이 높긴 했지만 절대적인 관심이나 참여율은 매우 저조했다. 무상급식이라는 정치적 이슈의 성격 때문이었다. 강남3구는 다른 지역에 비해 고소득·고학력 유권자가 많다. 실물경제에 있어서는 보수적일지라도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는 보다 공공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소위 '강남좌파'라고 일컫는 현상이다. 다른 이슈가 아닌 서울시민 다수가 찬성하는 급식문제에 대해 대중적 공공선을 더 고려한 것이다. 한때 한국의 지식세계를 강타했던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응답하는 형식이다. 2011년 한국일보는 강남3구에 거주하는 10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었다. 경제적으로 부유하면서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는 진보적인 사고를 하는 이유를 물었다. '공공선 추구는 인간의 당연한 윤리', '승자독식이 득세하는 현실에 대한 거부감', '보수정권 및 사회보수화에 대한 실망감' 순으로 답이 돌아왔다. 세월호 사고에 대한 강남3구의 반응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5월 13일 조사(리서치앤리서치)에서 '세월호 사고가 지지후보를 선택하는 데 영향을 미쳤는지' 물어본 결과 강남4구(강동구 포함) 응답자들의 36.2%는 영향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원, 성북, 강북, 동대문구 등의 지역보다는 낮았지만 그 외 다른 지역보다는 더 크게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되었다.(그림) 게다가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42.4%는 야당을 지지하게 되었다고 응답했다. 여당을 지지하게 되었다는 응답은 23.7%에 불과했다.

'강남 대반란'은 시작된 것인가

한 지역의 특성을 몇 가지 분석도구로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국 정치에서 차지하는 강남3구에 대한 관심만큼이나 그 변화의 방향이 흥미롭다. 실물경제에 있어 보수적이지만 정치 사안에 대해서는 공공성을 드러내는 강남3구. 2014년 지방선거에서 강남3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선거가 가장 정치적인 행위이며 그 결과물이라고 한다면 공공선 추구의 정치적인 요인이 더 강력하게 작동될 것이다. 끝은 알 수 없지만 '강남 대반란'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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