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의지 있어? 문재인 역량 있어?

한겨레

[한겨레][토요판] 커버스토리 경제민주화 적임자는 누구인가

경제민주화 하면 박근혜와 문재인 후보에게 따라붙는 물음표가 있다. 새누리당의 박 후보에게는 '과거 세력이 진짜 할 의지는 있는 거야?', 민주통합당의 문 후보에게는 '실패했던 사람이 이번엔 잘할 수 있을까?'란 의구심이다. 양쪽 다 100% 믿음을 주지 못했다. 박은 지난 대선 때까지만 해도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우자)를 내세울 만큼 친재벌 이미지가 강하다. 문은, 재벌개혁을 내세웠다가 결국 재벌에 '포섭'됐다는 평가까지 받는 참여정부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박 후보, 이슈 선점했지만
초심 흔들리면서 후퇴
문 후보, 정책으로 승부수
참여정부 실책에 발목
경제개혁연대 등 평가
"박, 사실 신뢰하기 어려워
문, 인적 역량 등 의문
상대적으론 문 후보가 낫다"


진보적 의제, 역설적으로 보수에 유리

박은 이런 한계를 김종인 박사(그는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란 공식 직함보다 주변에서 통상 박사로 불린다)를 내세웠고, 문은 자기반성을 통해서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박은 시대정신으로 떠오른 경제민주화 이슈에서 단순 '방어'에 그친 게 아니라 '공격'으로 점수를 크게 땄다. 김 박사를 영입한 박 후보는 총선 전 당의 정강정책에 진보진영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경제민주화를 새겨넣었다. 경제민주화 이슈의 선점은 박이 지휘한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다수당의 자리를 다시 꿰차는 데 지대하게 공헌했다. 진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지난달 16일 기자회견에서 "(김 박사가) 너무나 많은 일을 하셨다. 본인이 (당에) 기여한 바가 크다"고 말했다. '과거'와 '친재벌', '분배보다 성장 중시' 이미지가 강했던 박 후보는 경제민주화 장사로 한 클릭 왼쪽으로 이동하면서 대선 경쟁력이 한층 커졌다. 김 박사가 그 일등공신이었다. 박 후보가 총선 뒤 김 박사에게 다시 '러브콜'을 보내, 정책을 총괄하는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란 중책을 맡긴 것도 이 때문이다.

문은 과거의 실패에 대한 반성에서 진정성을 샀다. 그는 "참여정부는 재벌개혁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재벌공화국의 폐해가 심화됐다.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고, 역량이 부족했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정책도 박보다 더욱 선명하면서도 구체적인 것들을 내놨다. 실효성 논란은 차치하고라도 재벌개혁의 상징어가 된 출자총액제한제의 부활과 재벌이 가장 불편해하는 기존 순환출자 해소를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래도 진보적 의제인 경제민주화는 역설적으로 보수에 유리한 이슈였다. 문 후보는 경쟁자보다 더 열심히 경제민주화를 외쳤지만, 잘해야 본전인 게임이었다. 정치적 유불리로만 치면 경제민주화와 대선의 상관관계는 사실 박 후보에게 달렸다. 그가 변화를 따라가면 점수를 얻는 반면에 크게 뒤처지거나 역주행해야 문 후보가 점수를 얻는 구조다. 김 박사를 앞세운 박 후보의 선방으로 경제개혁과 동의어가 되다시피 한 경제민주화에서 야당과 여당, 진보와 보수, 박근혜와 문재인의 차이가 거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구도는 박 후보의 '후퇴'와 안철수 후보의 '사퇴'로 금이 갔다. 박 후보는 지난달 16일 경제민주화 공약을 발표하면서, '김종인표 경제민주화'에서 몇발짝 '후퇴'했다. 김 박사가 추진했던 기존 순환출자의 의결권 제한과 대규모기업집단법 제정, 중요 경제범죄에 대한 국민참여재판 도입 방안 등 주요 내용이 빠졌다. 강석훈 새누리당 의원이 기자회견장에서 "다른 후보의 경제민주화는 정치적 의미의 경제민주화, 우리는 실질적인 박근혜식 경제민주화"라고 강조했지만, '앙꼬 없는 찐빵'이란 인색한 평가마저 내부에서 흘러나왔다. 이는 정수장학회 논란, 인혁당 사건 등과 겹치면서 다시 한번 '과거'에 갇힌 박근혜를 연상시켰다.

문은 자연스럽게 반사이익을 얻었다. 경제민주화를 놓고 보수당의 대선 후보와 차별성도 커졌다. 문 후보는 박근혜식 경제민주화를 '짝퉁'이라고 얘기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박 후보의 경제민주화 후퇴는 사퇴한 안 후보 지지자들의 상당수가 보수성이 강화된 박 후보 쪽으로 이동할 수 없는 이유를 하나 추가했다. 거기에다 대통령 직속 재벌개혁위원회 설치를 비롯한 안철수표 경제민주화 공약과 인물을 수용해, 문재인표 경제민주화의 상품성을 높일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그렇다면 박과 문의 경제민주화론은 얼마나 다른 걸까? 재벌개혁에 앞장서온 경제개혁연대는 11월23일 발표한 '대통령 후보 3인의 경제분야 정책 비교분석' 보고서에서 박근혜표 경제민주화에 대해 "근본적인 제도 개혁보다는 단기 문제 해결 중심, 현재 패러다임 유지"라고 평가했다. 이에 견줘 문 후보의 공약은 후한 점수를 받았다. 보고서는 "경제의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구조적 접근, 양극화 해소를 위한 경제력 집중 억제와 행위 규제를 동시에 제시"했다고 분석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양쪽에 다 인색하다. "문 후보의 안이 더 전향적이긴 하지만, 두 후보의 안 모두 구체성과 명확성이 떨어진다. 특히 지주회사와 비지주회사 간 규제의 비대칭성 문제를 놓치고 있다."

'무엇을'보다 '어떻게'를 봐야

실제 누가 집권하면 경제민주화를 더 잘 이행할 수 있을까? 안종범 새누리당 의원은 "박 후보는 한번 얘기한 것은 예외 없이 지켰다. 민주당은 겉으로 센 것만 상징적으로 골라서 냈다"고 말했다. 문 후보의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이정우 경북대 교수는 "문 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보다 재벌개혁 의지가 강하다. 줄푸세 정당은 죽었다 깨어나도 경제민주화를 못한다"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외부의 평가는 사뭇 갈린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박 후보가 불안하다. 요즘 경제성장론에 자꾸 기울어가고 있는 것이나 줄푸세를 여전히 못 버리고 있는 참모들의 특성을 생각해본다면 박 후보의 경제민주화 공약은 사실 신뢰하기 어렵다. 문 후보도 부족하지만 정책수단은 얼기설기 체계를 갖춰놨다. 후보를 둘러싼 친노그룹이 철저하게 반성하고 있는지, 인적 역량은 얼마나 되는지 의문스럽긴 하지만, 종합해서 볼 때 문 후보가 상대적으로 낫다"고 말했다. 서복경 서강대 교수는 누가 어떤 절차를 밟아 경제민주화를 하느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홧'(what·무엇을)이 아닌 '하우'(how·어떻게)를 봐야 한다. 박과 문 후보가 그동안 경제민주화를 잘 해나갈 수 있을지 신뢰를 주지 못했다. 그나마 문 후보는 레토릭(수사) 수준인지 모르겠으나 잘못했다고 과오를 인정하고, 집권 초반 강력하게 개혁 드라이브(추진)를 걸겠다고 '하우'를 말한다. 하지만 부자감세에 적극적이었던 박 후보는 줄푸세 과정에 대해서 평가하지 않고 있다. 경제민주화를 한다고 김종인씨를 데려왔다가 버린 것을 보더라도, '하우'에서 신뢰를 할 수 없게 만든다."

류이근 기자ryuyigeun@hani.co.kr

Copyrights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 18대 대통령 선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