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이공계 살리는 법

2009. 7. 1.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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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어느 대학 입학식 강연에서 이공계 진로 선택이야말로 국익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당부를 남겼다. 제조업 중심인 산업 구조를 가진 우리나라에서야 당연한 얘기지만 서비스업에 기반을 둔 미국 대통령이 이 같은 발언을 했다고 하니 사뭇 생소한 느낌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학기술은 그야말로 미래에 인류가 의존해야 할 중요한 분야며, 여기에 우수한 인력이 종사해야 함을 부정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어떤가? 첨단 과학기술 개발의 결과에 열광하는 것이 민망할 만큼 이공계열의 학문적ㆍ직업적 인기도는 반비례하고 있다.

서울대 자퇴생 중 70% 이상이 이공계열이다. 이렇게 이공계 진학자들이 중도하차하는 목적은 대부분 치ㆍ의대, 한의대, 법대로 재입학하기 위함이다. 실제로 치ㆍ의학 전문대학원 전체 재학생 중 공대 출신이 35%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가경쟁력을 이끌 핵심으로서 미래 첨단기술 개발을 강조하는 현 시대의 요구에 역행하는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원인은 무엇인가? 이는 IMF 외환위기 당시 정리 해고 대상 1순위가 되었던 연구직에 대한 이공계열의 뼈아픈 경험에서 나온 트라우마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경제 불황 때마다 불안해 하는 연구개발직 선배를 보면서 대학 후배들과 진로를 고민하는 고등학생들이 과연 이공계를 향해 비전을 가지고 미래지향적 목표를 설정할 수 있을까?

그러나 문제는 직업의 안정성만이 아니다. 불투명한 미래에도 불구하고 학업과 연구에 정진한 이공계 박사들이 졸업 후 산ㆍ학계에 근무하며 겪게 되는 처우는 다시 한 번 이들이 이공계 진학을 결심하고 미래를 다짐했던 그 시간을 후회하게 만든다.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데는 평균 4.7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그만큼 시간과 열정, 그리고 돈을 투자해 얻은 박사 학위건만 경제적 매력이 없다. 의대나 법대 등에 진학해 전문의나 변호사가 된 주변 친구들이 부러울 뿐이다. 매체에 보도된 직업별 평균 연소득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의료계와 법조계의 높은 연수입에 반해 이공계열 연소득은 한숨을 내쉬게 만든다. 물론 통계 조사의 방법과 조건에 따라 그 결과가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의사와 법조계 종사자 평균 연소득 범위는 8000만원 정도에서 3억원에 이른다.

이에 비해 이공계 박사 연봉 범위는 어떨까? 그 결과는 적게는 4000만원이며, 가장 높은 금액으로 알려진 평균 연봉은 8000만원에 그치고 있다. 의사ㆍ변호사 최저치로 가늠되는 평균 연소득이 이공계 종사자들에게는 최대치 연봉인 셈이다.

전공 선택으로 시작된 직업군 차이에 따라 이토록 경제적 보상 범위가 차이 나니 물질주의가 팽배한 현 시대에 그 누가 선뜻 이공계열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학업과 연구에 매진할 수 있겠는가.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역설해, 고등학생의 이공계열 진학률을 높였다고 해도, 입학 후 다시 의대나 법대로 진로를 바꿀 맘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공계열 살리기 노력은 허공의 메아리로 사라질 뿐이다.

이공계 인력 처우개선을 위해 당장 연봉을 획기적으로 올릴 수 없다면, 이들에게도 변호사의 성공보수에 해당하는 것을 도입해보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 획기적인 제품을 개발했을 때 회사가 얻는 수익 중 일정 부분을 참여 개발자에게 할당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또 우수한 기술자를 보유하려면 그만큼 회사에서 처우를 고민하게 하고 이를 통해 기술자 몸값을 올려주어야 한다. 국가 경쟁력에 기술 개발이 정말로 중요한 요소라면, 국가 경쟁력을 견인할 이공계 인력에게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제공하는 것만이 해결책이다.

[이건우 서울대 기계항공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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