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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황금돼지

경향신문 | 입력 2006.12.24 18:16

 




신라 때 어느 고을에 금돼지가 나타나 원님의 부인을 납치해 갔다. 놀란 원님이 군졸을 풀어 산 속 동굴에서 부인을 차지하고 있는 금돼지를 물리치고 부인을 구해냈다. 이 일이 있은 열달 후 부인은 옥동자를 낳았는데 아이가 어찌나 총명하던지 열살 때 이미 사서삼경을 떼고 열세살 어린 나이에 당나라에 유학, 열여덟살 때 과거에 급제했다. 이 아이가 토황소격문계원필경으로 유명한 경주 최씨의 시조인 최치원이다.

최치원과 금돼지의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듯 우리나라에서 돼지는 상서로운 존재이다. 심한 먹성이나 더러움 때문에 욕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그건 외형적인 것일 뿐 내용상으로 보면 대단한 귀물(貴物)이다. 지금도 각종 굿거리, 고사상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웃음을 머금은 돼지 머리이지만 신라나 고구려 때도 이미 돼지를 한 해의 시작과 마지막 날 올리는 제사와 하늘과 산천의 제사 등에 제물로 바치는 등 신통력을 지닌 동물로 신성시했다. 꿈속의 돼지는 더욱 대접을 받았다. 돼지꿈은 재물, 횡재, 벼슬을 안겨주는 부와 복의 상징이다. 돼지를 끌어안거나 돼지를 우리에 몰아넣는 꿈은 모두 길몽으로 실제 돼지꿈을 꾼 후 복권에 당첨된 사례도 적지않다.

2007년 정해(丁亥)년이 600년 만에 오는 황금돼지 해라고 해서 벌써부터 난리다. 그냥 돼지도 좋은데 황금돼지니 얼마나 더 좋을까 하는 기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황금돼지는 우리뿐 아니라 중국 민속 어디에도 없다. 12간지상 돼지해는 을해, 정해, 기해, 신해, 계해의 5가지로 모두 60년 만에 한번 돌아오며 색으로 나타내면 綠(을), 赤(정), 黃(기), 白(신), 黑(계)이니 굳이 따지자면 노란색의 기해년이 황금돼지라고 볼 수 있다. 정해년은 붉은 돼지 해로 '달빛 속에 뛰어다니는 돼지'의 형상인 데다 불의 기운(丁)이 물의 기운(亥)을 누르니 좋을 게 없다.

황금돼지는 그러므로 장사꾼들이 만들어 낸 국적불명의 생산물로 부화뇌동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믿고 노력하면 운명도 바꿀 수 있는 것이니 '부자되기, 참되게 살기'의 소망을 담아 황금돼지 해를 맞이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하다.

〈이영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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