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재명]'에이전트 오렌지'의 비극

2013. 7. 13. 03:0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동아일보]

1978년 조판철 씨 부부는 첫아들을 낳았다. 기쁨도 잠시, 아들은 하루 만에 저세상으로 떠났다. 두개골이 없는 기형이었다. 2년 뒤 둘째아들도 같은 증세로 엄마 배 속에서 숨진 채 나왔다. 1989년 태어난 셋째아들은 정상이었다. 하지만 생후 31개월 만에 세균성 뇌막염으로 두 형의 뒤를 따라갔다. 조 씨는 1970년 백마부대원으로 베트남에 파병돼 22개월간 정글을 누볐다. 베트남에서 돌아온 지 5년, 이가 빠지고 온몸에 여드름 같은 게 돋았다. 그는 2005년 자신의 처절한 고통을 담은 수기집 '에이전트 오렌지'를 펴냈다.

▷에이전트 오렌지는 맹독성 제초제인 고엽제의 별칭이다. 고엽제 드럼통을 쉽게 식별하려고 오렌지색 띠를 두른 데서 나왔다. 고엽제에 들어 있는 다이옥신의 독성은 청산가리의 1만 배. 다이옥신 1g이면 2만 명을 죽일 수 있다고 한다. 미국은 베트남전 당시 1962년부터 10년간 고엽제 2000만 갤런을 살포했다. 이 중 1600만 갤런이 한국군 작전지역에 뿌려졌다. 일부 한국군은 소독약인 줄 알고 고엽제 살포 비행기를 쫓아다니기도 했다. 베트남 참전 한국군은 32만여 명이다.

▷이 '죽음의 물질'은 체내에 축적돼 각종 암과 신경계 손상을 일으킨다. 2세에게도 유전돼 '저주의 대물림'이 일어난다. 2006년 베트남 정부는 다이옥신 중독 자국민이 400만 명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1960년대 말 주한미군이 비무장지대(DMZ) 남방한계선 이남 지역에도 2만여 갤런의 고엽제를 살포한 사실이 1999년 확인되면서 한국 사회도 발칵 뒤집혔다.

▷대법원은 어제 베트남 참전군인 1만6579명이 미국 고엽제 제조사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39명을 제외한 나머지 원고에 대해 패소 결정을 내렸다. 당뇨병과 폐암 등의 질병이 고엽제 노출과 관련이 있다며 630억여 원을 배상하라는 하급심 판결을 뒤집은 것이다.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김성욱 사무총장은 "참담하다"고 했다. 고엽제전우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현재 고엽제 후유증 환자는 4만5663명, 후유증 의심 환자는 8만8288명. 고엽제의 비극은 현재진행형이다.

이재명 논설위원 egija@donga.com

[☞오늘의 동아일보][☞동아닷컴 Top기사]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