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장난전화의 비극/최광숙 논설위원

서울신문

[서울신문]2008년 세라 페일린 미국 공화당 부통령 후보는 대선 기간 중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캐나다 개그맨의 장난전화였다. 그는 통화 도중 노골적으로 성적 농담을 하는 등 장난전화임을 여러 차례 알렸으나 페일린은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사르코지와의 통화에 들뜬 페일린은 "당신의 아름다운 부인과 함께 일해보고 싶다."는 등 묻지도 않은 말을 늘어놓기도 했다. 이 일로 페일린은 온 국민의 웃음거리가 됐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도 지난 9월 유엔총회 한 토론회 도중 캐나다 총리를 사칭하는 캐나다 개그맨의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반 총장은 개그맨이 "유엔총회에 참석하려는데 '크레이지 글루'(초강력 접착제)로 머리를 빗느라 바쁘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장난전화임을 알아채고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미 공화당 일리애나 로스레티넌 연방 하원의원은 2008년 말 거꾸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인의 전화를 장난인 줄 알고 두 차례나 끊어 화제가 됐다. 오바마의 전화에 "흉내를 잘 낸다."며 끊었고, 이어 람 이매뉴얼 백악관 비서실장 내정자가 전화를 걸어 "대통령 당선자의 전화를 끊다니 믿을 수 없다."고 하자 그때에도 "장난전화를 걸어줘 영광"이라며 끊었다.

지난해 말 남양주의 한 노인요양원을 방문했던 김문수 경기도지사도 암 환자 이송체계 등을 문의하기 위해 119로 전화를 했다가 '수모'를 당했다. 남양주 소방서 근무자들은 김 지사의 전화를 장난전화로 오인해 전화를 두 차례나 끊은 것이다. 이 때문에 이들의 문책 여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최근 장난전화에 속아 영국 왕세손비의 진료기록을 유출한 영국의 한 간호사가 숨졌다. 자살로 추정되는데, 장난전화를 건 호주 방송사에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사안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목소리를 흉내 내 간호사를 속인 방송 진행자들은 "세상에서 가장 쉽게 성공한 장난전화"라며 떠벌렸다고 한다.

이번 일은 언론의 취재윤리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한다. 혹 장난전화를 건 이들은 '웃자고 한 일'이라고 할지 몰라도 소중한 목숨까지 앗아간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요즘 우리나라를 비롯해 외국에서 사이버상에서의 '거짓말'을 엄히 다스리는 추세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소년들은 장난으로 개구리에게 돌질을 한다 하더라도 개구리는 장난으로 죽는 것이 아니라 참말로 죽는 것이다."는 플루타르크 영웅전에 나오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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