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부동산파동, 레임덕 시발인가

2006. 11. 19. 18:3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추석 이후 전개된 서울과 수도권 부동산 시장의 움직임은 숨가쁘다는 표현이 적절했다. 전셋값 인상-서울 외곽의 소형 아파트 가격 상승-추병직 건교부 장관의 신도시 발표 해프닝-서울과 수도권 전역 아파트값 상승-청와대 이백만 홍보수석의 발언 파문과 사퇴-11·15 부동산 시장 안정화 방안까지….

이 기간 동안 정치권도, 관가도, 언론도 온통 관심사는 부동산이었다. 식당이나 술집에서 삼삼오오 모이기만 하면 화제는 모두 아파트였다. 서민들은 뛰는 전셋값에, 날개 단 매매값에 망연자실한 채 속앓이만 했다. 집 가진 국민들도 왜 아파트값이 이렇게 뛰는지 어리둥절해 하며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다행히 정부의 11·15 부동산대책이 나온 이후 아파트값 상승세가 멈추는 분위기여서 정부나 서민들이 다소 안도감을 갖고 한숨을 돌리고 있다.

하지만 북한의 핵실험 직후부터 한달 이상 동안 계속된 부동산 파동은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그 첫 번째는 뭐니뭐니해도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깊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앞서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가 걸었던 발자취를 돌아보게 된다. 김영삼 정부는 야심찬 개혁작업의 추진으로 한때 지지도가 90%에 육박하는 초유의 인기를 구가했지만 정권 1년여를 남겨둔 1996년 말부터 레임덕에 시달려야 했고, 마지막 1년 동안은 제대로 된 국정수행을 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말만앞선 무능에 배신감-

그 원인은 김영삼 정부가 소나기 몰아치듯 추진했던 개혁에 대한 반감도 있었지만, 직접적 단초를 제공한 것은 96년 크리스마스 다음날 일어난 정부와 여당의 노동법 날치기 사태였다.

외환위기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비교적 국민적 연대감을 갖고 출범한 김대중 정부도 옷로비 사건으로 국민정서와 괴리감을 보이기 시작하다가 급기야 대통령 아들과 측근 비리로 레임덕을 초래했다.

두 정권 모두 임기 수행을 1년여 남겨둔 상황에서 레임덕이 극점에 달했다. 현직 대통령은 항상 레임덕이라는 세 글자에 강한 거부감을 보인다. 그러면서 과거 전임자들은 그랬을지 모르지만 '나만은 레임덕이라는 최면에 걸리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결과는 대통령의 의지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다.

부동산 파동 이후 조사된 여론조사 결과들을 보면 노무현 정부도 부동산 폭등과 일련의 사태 속에 지지도가 크게 하락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노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10%대 초반으로 떨어졌다는 우려 섞인 발표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수치는 사실상 현 정부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앞으로 정부가 어떤 정책 결정을 내리더라도 국민을 설득하기에 힘이 부치리라 짐작된다.

이러한 현상의 1차적 원인은 현 정부가 추진해온 각종 부동산 정책이 효과를 내지 못한 데 대한 반감이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어떤 정책 실패가 지지율 하락을 가져오는 일은 다반사다. 하지만 대개 특정계층의 지지율에 국한될 뿐, 계층과 지역을 불문하고 총체적으로 지지율에 영향을 미치는 사례는 드물기 때문이다.

-정부에 대한 국민불신 심각-

따라서 주택 보유 유무에 관계 없이, 성별이나 연령에 관계 없이 정부를 질타하는 작금의 상황은 정책 오류보다 국민감정을 건드렸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반드시 이기겠다" "하늘이 두 쪽 나도 부동산만은 확실히 잡겠다"고 말을 앞세우더니 결국 공언(空言)이 되지 않았느냐는 배신감에다 이번 부동산 파동에서 벌어졌던 추병직 건교부 장관과 이백만 청와대 홍보수석의 실언 등이 겹치면서 국민들이 정서적 반감을 갖게 된 것이 주요한 요인이다.

그래서 그 옛날 현자(賢者)들은 백성을 호랑이(虎)에 비유하여 항상 경계하라고 권력자들에게 일렀다. 백성들이란 평소에는 양(羊)처럼 순해 보이지만 한번 성이 나기만 하면 세상을 뒤엎는 무서운 힘을 가진 존재이므로 절대로 깔보아서는 안 된다고 상기시켰다.

지금 우리 국민은 양일까, 호랑이일까. 이번 사태를 보면서 전임 정권들이 겪은 레임덕 현상을 생각하게 된다. 노무현 정부는 정말 어려운 난제에 직면한 것 같다.

〈이병광/ 산업부장〉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구독신청(http://smile.khan.co.kr) -

ⓒ 경향신문 & 미디어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