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집권당 중진까지 사찰한 '비선권력의 몸통'은 누구인가

2010. 7. 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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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민간인 불법사찰을 저지른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남경필 한나라당 의원의 부인을 사찰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상 현역 의원을 사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남 의원 말고도 같은 당의 정두언·정태근 의원 등도 정부기관의 사찰을 받았다고 한다.

놀랍고 두려운 일이다. 이들은 집권당의 중진, 정권 실세, 대통령 측근이다. 그런 이들까지 사찰을 받았다면 야당이나 시민사회 등에선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이 권력의 감시와 사찰을 받았겠는가. 지금 이 순간에도 바로 우리 주변에서 사찰이 벌어지고 있을 수 있다. 이런 공포 속에선 누구도 할 말을 제대로 못하게 된다. 민주주의의 질식이다. 이번 일이 정치인 몇몇의 문제에 그칠 수 없는 이유다.

무엇보다 이런 일이 왜, 누구의 지시로 이뤄졌는지부터 묻지 않을 수 없다. 사찰 대상이 된 의원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이 정권의 숨은 권력자 구실을 하는 데 반대한 사람들이다. 남 의원 등은 2008년 총선을 앞두고 이 의원의 불출마와 2선 퇴진을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공교롭게도 남 의원과 정두언 의원에 대한 사찰은 같은 해에 벌어졌다. 더구나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이 의원 인맥으로 꼽히는 영포회나 선진국민연대 쪽 인사에게 비선 보고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남 의원 사찰 결과는 이 조직의 하명사건 담당 부서에서 챙겼다고 한다. 여러 정황상, 특정 정치세력이 공식·비공식의 사찰권력을 정치적 목적에 동원한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올 수밖에 없다. 사실이라면 추악한 권력 사유화다. 남 의원 등에 대한 사찰이 어떻게 지시되고 보고됐는지, 청와대 하명사건은 얼마나 되는지, 비선 보고의 윗선은 또 누군지 하나하나 끝까지 따져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일이 또 없었겠느냐는 의문도 당연하다. 민간인 불법사찰만 해도, 검찰에 수사의뢰된 김아무개씨 사찰 외에 수십건의 사찰 의혹이 추가로 제기됐다. 실제 한 건설회사가 전 정권과 가까운 것으로 지목돼 사찰을 받았다는 구체적 의혹까지 나왔다. 여당의 친이명박계 인사까지 사찰 대상이 된 터에 친박근혜계나 야당 인사들의 약점 잡기 시도가 없었을 것이라고 믿기도 어렵다. 이런 명백한 의혹을 모른 체 외면하려다간 더 큰 의혹과 파장을 불러오게 된다.

그러잖아도 비선조직의 조직적 증거 인멸 및 은폐 의혹이 드러난 마당이다. 검찰 말로는 공직윤리지원관실에 대한 압수수색 직전에 이 사무실의 컴퓨터 하드디스크가 정교하게 파괴됐다고 한다. 온갖 불법사찰의 지시 및 보고 경위, 사찰 결과 따위를 감추려 그랬을 것이다. 누가 이런 은폐를 지시했는지, 감춰진 또다른 비리와 불법은 얼마나 되는지 밝혀내야 한다.

검찰은 이번 일을 수사의뢰된 사안 하나 또는 이인규 지원관 등 실무자들의 일탈로 축소하려 들지 말아야 한다. 지금껏 드러난 증거만으로도 '윗선'과 '몸통'의 존재는 분명하다. 불법 사찰도 한둘에 그치지 않아 보인다. 이제는 수사를 수직적·수평적으로 전면 확대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를 회피한다면 검찰조직의 미래는 물론, 우리 사회의 존립까지 위태롭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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