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 광장] 아이폰 백신 소동

2010. 1. 25.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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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창 고려대 법학과 교수

지난 1월21일 국내 일부 언론은 정보보호 업체인 NSHC가 안티바이러스 프로그램 개발 업체인 하우리와 공동으로 `아이폰 전용 백신 프로그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보도하였다. 그러나 이 업체가 개발하였다는 프로그램은 앱 스토어에 등록되기는 커녕, 바로 다음날 등록 신청마저 신속히 거부되었다.

아이폰 운영체제의 설계 원리를 이해한다면, `아이폰 전용 백신'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안드로이드 운영 체제와는 달리 아이폰 운영체제는 음악재생을 제외하고는 멀티태스킹(multi-tasking)을 허용하지 않는다. 하나 이상의 프로그램을 동시에 실행할 수 없도록 설계된 운용환경에서 안티바이러스 프로그램을 실행한다는 것 자체가 터무니 없을 뿐 아니라, 애플사는 자사가 직접 관리하는 앱 스토어를 통해서만 프로그램이 아이폰에 설치될 수 있도록 하고, 앱 스토어 등록 신청 과정에서 프로그램을 사전 점검하여 악성 프로그램은 애초에 등록되지 못하게 함으로써 아이폰 운용 환경의 안전을 담보하고 있다.

바이러스가 아예 침입할 수 없도록 관리되는 환경에서 안티바이러스 프로그램 설치를 운운하는 것 자체가 코메디일 뿐만 아니라, 애플사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전세계에 판매하는 아이폰 운영체제의 신뢰성 자체에 대한 근거없는 모욕이다. 만일 아이폰용 `안티바이러스' 프로그램을 애플사가 승인한다면, 그말은 곧 바이러스가 포함된 프로그램들이 앱 스토어에 마구 등록되는 사태가 이미 발생하였다고 시인하는 꼴이다. 애플사가 망하기 전에는 이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없다.

`세계 최초'에 열광하는 국내의 일부 성향을 적절히 자극하면서, 기술적으로나 논리적으로 터무니 없는 업체의 보도, 선전 자료를 검증 없이 베껴 적는 기사가 바로 다음날 등록신청이 거부되었다는 사실은 조용히 덮고 정정 보도조차 내지 않는 무책임함은 안타깝게도 국내 언론 매체의 부끄러운 현주소이다.

유사한 사태는 사실 그동안 거듭 반복되었다. 이른바 `리눅스용 안티바이러스 프로그램' 소동이 그것이다. `윈도우'가 운영체제인지 컴퓨터인지도 잘 모르는 규제당국이 전자금융거래에는 백신프로그램을 우선 설치하라는 규정을 도입하자, 국내 일부 보안업체는 `리눅스용 백신프로그램'이라는 것을 개발하였다고 발표하는 사태가 벌어졌었다. 문제의 프로그램 개발에 관여하였다는 분의 주장은 `리눅스 운영체제에서 작동하는' 안티바이러스 프로그램은 공개소스로 이미 존재하며(예를 들어 clamAV), 자신은 이것에 기반하여 제품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놀라울 뿐이다. `리눅스에서 작동하는' 안티바이러스 프로그램은 리눅스 이용자를 공격하는 바이러스 프로그램(그런 바이러스가 전파될 가능성은 애초에 희박하다)을 상대로 한 것이 아니라, 윈도우 이용자들을 공격하는 악성 프로그램을 리눅스 운영체제로 가동되는 메일서버, 파일서버가 스캔해 주는데 사용되는 프로그램들이다. 이메일을 보내고 받는 기능을 수행하는 서버들은 흔히 리눅스 운영체제로 구축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메일서버들이 이메일 수령자들에게 전달될 첨부파일을 일괄 스캔하여 악성코드가 포함된 첨부파일은 아예 이메일로 전달되지 않도록 예방하는데 사용되는 프로그램들인 것이다. 이런 프로그램을 개인 컴퓨터에 설치하겠다는 발상은 리눅스가 무엇인지, 클라이언트/서버가 무엇인지 기본 개념 부터가 없거나, 영어를 해석할 능력조차 없는 수준의 인력이나 해낼 수 있는 발상이다.

심지어 국내에서는 이른바 `리눅스용 키보드보안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실제로 배포되기까지 하는 실정이다. 그야말로 `세계 최초'일 뿐 아니라, `세계 최후'의 발상일 것이다. 리눅스 운영체제에서는 이용자의 계정 암호 없이는 컴퓨터를 아예 사용할 수 없는 것이 보통이고, 키보드 입력값을 가로채는 프로그램이 설치되려면, 계정암호 뿐 아니라, 루트(관리자) 암호까지도 이미 공격자가 입수한 사태가 벌어져야 가능한 일이다. 루트 암호가 유출되었다면 키보드보안 프로그램 따위를 설치해 둔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장례식장에서 고인에게 감기약 복용을 권하는 격이 될 뿐이다.

`세계 최초' 아이폰 백신 소동은 세계에서 철저히 고립된 국내 보안업체와 국내 기술매체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씁쓸한 에피소드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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