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상률씨 불러 조사 못할 이유 뭔가
검찰의 '박연차 수사'가 속도를 내면서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돌연한 미국행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그제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이 한 전 청장에게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세무조사를 지시했고, 연루자 명단은 대통령에게 직보됐다"고 주장했다. 파장이 여권 실세에게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기획 출국'했다는 의혹에 이어 '한상률 리스트' 의혹까지 불거진 것이다. 이 의원은 고개를 저었지만 의구심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박 의원의 주장은 수사 초기 일부 언론에서 제기된 의혹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한 보수 언론은 한 전 청장이 이명박 대통령을 독대해 세무조사 결과를 직보한 뒤 수사가 시작됐기 때문에 사정 회오리가 거셀 것이라고 전망했고, 여야 거물은 물론 현직 검찰 간부들이 수사망에 들어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수사를 제대로 하려면 내부부터 손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박 의원 주장을 정치공세로만 흘려 들을 수 없는 까닭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검찰 태도다. 김경한 법무장관은 기획 출국설에 대해 "범죄 혐의를 피하기 위한 출국으로 보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한 전 청장이 선임자인 전군표 전 국세청장에게 고가의 그림을 상납했다는 의혹을 두고도 "당사자간 진술이 엇갈리고 구체적 범죄 혐의를 발견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어느 것 하나 분명하지 않고, 진술마저 엇갈린다면 진위를 따져보는 게 마땅하지 않은가. 법무장관의 말인지, 한 전 청장 변호인의 말인지 분간이 안 갈 지경이다.
검찰은 한 전 청장의 '입'을 판도라 상자쯤으로 여기는 건 아닌지 궁금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권력형 비리는 그것대로 밝혀내야 하겠지만 이번 수사의 또 다른 핵인 박 회장의 세무조사 무마 의혹을 한사코 외면하는 흐름을 보노라면 조사 회피는 한 전 청장 입막음용이라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충분하다. 정작 그는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검찰이 부르면 소환에 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실세 감싸기가 아니라면 뭐 때문에 조사를 머뭇거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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