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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박재희] 너 자신을 알라

국민일보 | 입력 2006.12.13 17:57

 




입시생 부모가 되고보니 갑갑한 게 많다. 가장 갑갑한 것은 당락을 가른다는 논술 문제다. 학교에서 가르친 적 없고 학원에서 배운 적 없는 게 논술이다. 고등학교 삼년 동안 아침 여섯 시에 나갔다가 밤 열한 시에 들어온 아이다. 게을러서가 아니라 학과공부도 벅차서 교과서 외의 책을 잡을 새가 없었을 것이다. 휴일에 모처럼 집에서 쉬는 아이에게 컴퓨터를 끄라고 할 수는 없었다.

작가랍시고 논술 자료를 뒤지다보니 어안이 벙벙하다. 제시문에 나오는 이름과 지문들 때문이다. 공자 맹자에서 앨빈 토플러까지 동서고금 사상가,철학자,경제학자,물리학자가 총망라된 듯하다. 문학을 빼면 거의가 모르는 이름이다. 그나마 지문을 이해하는 게 다행이지만 부자간 토론에 끼어들 수준은 전혀 아니다.

아주 오래 전에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인상 깊게 읽었다. 내가 국부론의 한 구절을 얘기하니까 남편과 아이가 깜짝 놀란다. 그럴 리가 없다는 표정인데,사실 나도 읽고 싶어서 찾아 읽은 게 아니라 우연히 읽게 된 것이다.

내가 아는 사장님은 노조 때문에 회사가 망할까봐 전전긍긍이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생각나는 것은 역지사지(易地思之)다. 양보하고,배려해주는 데도 상습적으로 요구하는 노동자들을 골치 아파하는 사용자에게 애덤 스미스는 말한다.

"요구하는 대로 계속 주세요. 모두가 같아질 때까지."

맹자의 측은지심(惻隱之心)이 느껴지는 말이다. 또한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이라도 본성에는 분명 연민과 동정이 존재한다. 타인의 비참을 목격하면서 행복을 누리지는 못한다."

경제적 쓰나미에서 재기하지 못하는 이웃들은 나의 비굴함과 연약함을 깨닫게 한다. 난민촌으로 가는 천원짜리 전화도 망설이는 무력한 글쟁이에게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너 자신을 알라."

감정적 쓰나미에서 재기하기는 더 어렵다.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사람들이 받는 상처는 정신질환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따듯한 말 한 마디를 망설이는 소심한 글쟁이에게 예수께서는 말씀하신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

박재희 < 소설가·무형문화재(가야금산조 이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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